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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Feb 05. 2024

제가 대신 32배 더해서 아플게요

이렇게 끝내긴 아쉬워서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말 들어봤니?

나와 산책을 하던 어느 날,

너는 딱 저 속담에 해당되는 일을 벌였어.


분명 나와 길을 잘 걷고 있었는데 말이야.

갑자기 네 발에서 피가 나는 거야.


나는 네가 깨진 유리라도 밟은 줄 알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어.

산책 도중에 너를 둘러업고 발을 자세히 살폈는데

발바닥이 다친 건지 발톱이 다친 건지

도통 털 때문에 분간이 되질 않더라고.


우선 놀란 마음을 네게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어.

내가 놀라면 너도 함께 놀라서

그 발을 들고 어디론가 도망갈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이상했던 게 있어.

아지 네가 잘 알다시피

너는 작은 거에도 잘 아파하잖아.

그뿐인가, 엄살은 누구보다 자신 있는 편이지.


예를 들어,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가면

아직 주사 맞지도 않았는데

너는 아파서 깨갱 소리를 내곤 했지.


만약 네가 엄청나게 큰 강아지를 만나면

그 강아지가 네게 다가가기만 해도

물어 뜯긴 듯이 앓는 소리를 내곤 했어.


그런데 지금은 피를 흘리고 있으면서도

전혀 아픈 기색을 내비치지 않는 거야.

낑낑거리거나 발을 절뚝거린다거나 말이야.


병원을 바로 가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래도 아프진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병원에서는 네가 산책을 하면서 발톱이 꺾였다고 하더라고.

우선 꺾인 부분은 잘라냈고

다시 발톱이 자라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어.


기간은 2주가량 필요한데

그때까지 네 발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어야 하는 거야.

혹시라도 네가 건드릴 수도 있으니까.


산책은 해도 되지만 뛰어서는 안 되고

어디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일도 최대한 금지시키라고 했어.


심지어 발톱이 긴 것도 아니었어.

발톱을 깎은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었으니까.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걸었길래 발톱이 꺾였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사람도 문 열다가 손 찧는 마당에, 너라고 안 할까 싶더라.

발에 붕대를 해서 뒤뚱뒤뚱 걷는 네가 귀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집에 데려와서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파서 나는 엉엉 울기 시작했어.


"왜 똑바로 걷지도 못해 이 바보야!!!!"

"발톱 꺾이는 게 얼마나 아픈데!!!"

"엄살도 심한 애가 티도 안 내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지!!!"

"엄마가 발견 못했으면 어떻게 했을 뻔했어!!! 도중에 집에 안 왔으면!!!"

이렇게 큰 소리로 울면서 화를 냈어.


아지는 '이 엄마가 갑자기 왜 이래'라는 표정으로 토끼눈을 뜨고 쳐다봤고

나는 다시 혼자 너에게 얘기하기 시작했지.


"얼마나 아팠을꼬 우리 아지가..."

"아지야 아프면 어떡해... 건강한 게 최고라고 엄마가 그랬잖아..."

"어디 더 다른 곳 다친 곳은 없어? 봐봐"

 

내가 오열하듯 울고 있는 걸 남이 보면

네가 죽을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고 있는 줄 알았을 거야.

그런데 어느 누가 자기 자식이 아픈데 마음이 멀쩡할 수 있겠어.


그 순간 나는 아빠가 생각났어.

아빠는 나랑 언니가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할 때면 약 먹었냐고 쫓아다니면서 확인하거든.

기침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 콜록- 소리를 낼 때 아빠가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나.

"아이씨! 기침 좀 하지 마! 기침할 때마다 아빠 마음이 찢어져!"


우리 아빠는 표현도 제대로 못하는 바보거든,

그래서인지 저 말 한마디가 내게는 엄청 큰 사랑 표현으로 다가왔었나 봐.

뇌리에 박혀서 감기에 걸릴 때마다 생각나는 거 보면 말이야.

그리고 네가 아파서 눈물 흘리는 내 모습을 보니 아빠의 마음이 백번이고 이해가 됐어.


그러고 보면 너는 참 잘도 아파.

그만 좀 아프면 좋겠는데, 잔병치레하는 거까지 엄마를 꼭 닮아야겠니?

이제 우리 건강관리 잘하자!

겨울이어도 밖에 열심히 산책 나가서 체력관리 제대로 하는 거야!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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