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무지 Feb 09. 2024

원할 때만 산책하는 아지

이렇게 끝내긴 아쉬워서

강아지는 하루에 한 번 이상 산책을 시켜줘야 한다.

그래서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내가 매일 산책을 시켜줄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묻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산책이라는 조건 앞에 확인해보아야 할 사항은 총 3가지였다.

내 자취방이든, 부모님 댁이든 산책할 수 있는 곳이 집 근처에 있는가?

나는 강아지를 산책할 시간이 있는가?

나는 귀찮아도 강아지를 위해 신발을 신고 나갈 의지가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yes였다.

그러나 나는 내 답변만 생각했다.

아지의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 아지는 산책을 갈 때, 자기가 산책에 가고 싶은 시간이 있다.

여름은 아침 9시만 되어도 날이 더워져서 이른 시간에 산책을 해야 하는데,

아지는 땅바닥에 들러붙어서는 좀처럼 아침에 움직일 줄 몰랐다.

'아지야 산책 가자~'라고 말하면, 아지는 침대, 의자, 식탁 밑으로 숨기 바빴다.

그래서 자취방에 있을 때는 나 혼자 산책을 다녀오기도 했고

엄마 또한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우리 두 모녀는 아지 얘기만 하면 공감대가 형성되어 짝짜꿍 박수를 치곤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겨울은 날이 많이 추울 경우, 아지에게 옷을 입히고 산책을 간다.

그런데 아지는 옷 입는 것을 혐오한다.

옷을 꺼내는 순간, 또 침대와 의자 그리고 식탁 밑으로 숨는다.

그럴 때마다 나와 엄마는 간식으로 유인하지만 어찌나 잽싸던지,

간식만 쏙 먹고 다시 침대 밑으로 쏙 들어가 숨어 버리는 게 부지기수다.


아지는 우리 가족의 손바닥 안에 있다.

먹이로 유인하지만 결국 산책하러 데리고 나가기 때문이다.

잠시만, 아지가 우리 손바닥 안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보면 아지는 간식도 먹고 산책도 가니까... 일석이조였다!

문득 이 자식이 우리보다 똑똑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지야 너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신나게 산책 갈 거면서, 매번 가기 싫은 척 튕기더라?'

라고 말했는데 이제는

'아지야 너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현명한 강아지구나?'라고 해야겠다.

가기 싫은 온갖 티는 다 내놓고 산책할 때 두 귀가 팔랑거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마치 친구 만나러 가는 건 귀찮은데 막상 만나면 세상에서 제일 재밌게 노는 사람 같다.  


아지가 숨기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침대다.

식탁 밑이나 의자 밑은 우리가 다리라도 낚아채서 쭉- 잡아끌 수 있지만, 침대는 그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똑똑한 아지는 그걸 너무나도 잘 파악한 나머지, 우리 가족이 귀찮게 하거나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침대 밑으로 숨어버린다.


그런데 아지는 '안녕! 엄마 간다!'라는 말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다.

아마 저 말을 들으면 나와 헤어진다는 걸 알아서인지,

어떤 순간이든 저 말 앞에서 아지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본인의 의지도, 본인의 줏대도, 본인의 고집도.

자신이 사랑하는 엄마 앞에 본인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산책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실컷 냄새를 맡고도 그 자리에 머물러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때가 있다.

그러면 백전백승으로 아지를 이길 수 있는 무기처럼 '안녕! 엄마 간다!'라는 말을 꺼내는데,

그 말을 들은 아지는 로봇의 버튼을 누른 듯 바로 고개를 틀어 내게로 쏜살같이 달려온다.

'나와 헤어지는 게 자신의 산책을 포기할 만큼 싫구나.'라는 걸 확인할 때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멈출 줄 모른다. 그리곤 '더 잘해줘야지. 더 예뻐해 줘야지. 더 사랑해 줘야지.'라고 다짐한다.


매우 이른 시간, 굉장히 추운 겨울, 무더운 여름이 아니고서는

아지는 여느 강아지처럼 산책 가는 걸 사랑한다.


내가 나갈 채비를 할 때면, 본인이 산책에 가는 줄 알고 현관문 앞에 쪼르르 먼저 가서 서있다.

그런데 나의 외출 목적이 산책이 아닐 경우, 아지가 저런 모습을 보이면 얼마나 마음이 쓰이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밖에 나갈 때, 아지한테 꼭 이야기한다.

'아지야, 엄마 잠시 밖에 나갔다 올 거야. 집 잘 지키고 있을 수 있지?'

'아지야, 산책 갈 건데 같이 갈래?'

아지는 두 문장의 차이를 잘 이해한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내가 산책 갈 거라고 말하고 나갈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기 시작하면, 아지는 그 잠깐을 못 기다리기 때문이다.

늘 낑낑대거나 짖거나 발을 동동 구르며 빨리 나가자는 신호를 보내니까.


이는 나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다.

아지가 엄마네 집에 있을 때는 또 다른 룰이 있다.

엄마는 아지가 혼자 집에 있을 때 바깥 소음에 혹여나 짖을까 봐, 그리고 외로울까 봐 늘 잔잔한 노래를 틀고 나간다.

아지는 이제 엄마가 그 노래를 틀면, 엄마가 조금 오래 외출한다는 걸 아는 눈치다.

가만히 자기가 있을 자리를 잡고는 빨리 오라는 우울한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엄마가 아지와 함께 산책할 때 늘 매는 작은 파란색 가방이 있다.

그걸 매면, 또 아지는 귀신같이 자기가 산책에 간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공중제비 10바퀴를 돈다.


모든 강아지가 다 이럴까?

우리 아지만 외출에 있어서 유난히 독특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 새끼가 특출 나다고 생각하는 부모 마음이랑 똑같은 거겠지?

다들 각자의 집안에 따라 비슷한 모습일 텐데 말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우리 아지가 독특한 강아지였으면 싶은 마음은 부모라서 어쩔 수 없나 보다.

산책 전 이야기만으로도 이렇게 이야기가 쏟아지는데,

문밖을 나서면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새삼 궁금하다.

이전 20화 아지를 만난 후 180도 달라진 엄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