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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Feb 07. 2024

아지를 만난 후 180도 달라진 엄마

이렇게 끝내긴 아쉬워서

'야! 얘 좀 어떻게 해봐! 자꾸 나한테 오잖아!'

엄마는 내가 처음 아지를 데려왔을 때,

아지가 엄마 곁으로 가기만 해도 끔찍이 싫어했다.


'엄마가 싫어하면 그거 아지도 다 알아!'

'강아지가 그걸 어떻게 알아!'

엄마와 티격태격하면서도 빨리 아지를 향한 마음이 열리기를 바랐다.

그리고 속으로는 엄마에게 어김없이 걸어가는 아지에게 잘한다며 수없이 칭찬했다.

작고 귀여운 강아지가 자꾸 애교를 부리는데 어떤 강자가 그걸 무시할 수 있을까.


엄마가 강아지를 키우기 싫어한 이유는 나중에 맞이할 이별이 두려워서다.

하지만 아지와 나는 합심하여 기어코 엄마의 마음을 열고야 말았다.

그것도 아주 활짝.


나는 7년 가까이 자취를 하고 있다.

자취를 하면 부모님이 혹여 걱정할까 전화를 자주 하게 되는데,

따로 살며 겹치는 일이 없으니 무슨 말을 하겠나.


'무지야, 너 밥 먹었니?'

'어, 회사에서 주는 거 먹었지 뭐.'

'혼자 산다고 밥 대충 먹으면 안 돼. 잘 챙겨 먹어야지. 엄마가 반찬 좀 보내줄까?'

'아니, 그거 줘봤자 안 먹고 다 버려. 괜한 낭비야 보내지 마.'


7년 동안 똑같이 반복되는 대화였다.

그러나 아지가 엄마네 집에서 살게 된 후로는 우리의 대화는 바뀌었다.


'무지야, 엄마가 오늘 아지랑 데리고 산책을 나갔거든?'

'어,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었는데?'

'아니 쁘꾸엄마가 아지 이거 먹으면 좋다고 하는데, 이것 좀 사봐.'

'엄마! 엄마는 딸이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이런 걸 물어봐야지. 아지 얘기만 하고 있어!'

'야! 언제는 물어보지 말라며! 그래서 뭐 먹었는데?'

'그냥 회사 밥 먹었어. 뭔데 그게. 그분이 사라고 하는 건 꼭 그렇게 따라 사더라 엄마는.'


한 동네에 20년 가까이 살면서, 엄마는 늘 같은 곳을 산책한다.

늘 적적하게 혼자 돌아다니다가 아지와 함께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아지 덕분에 동네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내가 일주일에서 이주일가량 집에 방문하지 못했다가 가면, 아지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살이 뒤룩뒤룩 쪄서는 강아지가 아닌 돼지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엄마! 애가 왜 이렇게 무거워! 대체 얼마나 먹인 거야?!'

'무슨 소리야! 얘 얼마 먹지도 않았어! 이거 다 털이야!'

'거짓말이야! 이게 어떻게 다 털일 수가 있어! 들면 이렇게 무거운데!'


집에서 엄마가 아지한테 하는 행동을 보아하니, 살이 찐 게 확실했다.

하루종일 아지한테 무언가를 먹이고 있었다.

행동은 먹이고 있지만, 말로는 먹이는 게 없다니...

언행불일치도 이런 언행불일치가 없었다.


내가 스케줄이 여유로워져서 가끔 자취방에 데리고 왔다가 본가에 데려간 적이 있었다.

그러면 엄마는 애가 살이 빠져서 죽기 직전이라며 호들갑을 떨고는 했다.

'혹시 엄마가 너 집에서 굶겼니?'

'아지야, 그 집이 좋아 여기가 좋아? 밥 많이 주는 내가 좋지?'


그리고는 내가 자취방으로 데려갈 때마다 애 굶기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한다.

'아이고, 아지야 그 집에 가면 맛있는 것도 못 먹고 쫄쫄 굶어야 할 텐데 어떡하니?'

'뭐라고? 그냥 가지 말고 여기에 있겠다고? 그래! 엄마랑 같이 있자!'


그렇게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지에게 손을 흔든다.

딸한테는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따져 물으면,

그제야 '밥 잘 챙겨 먹어!', '집 조심히 가고 도착하면 연락하고.'라는 말을 내놓는 우리 엄마.


당연히 엄마 눈에 자기 자식 밖에 안 보이겠지만, 아지를 아껴주는 마음이 얼마나 고맙고 행복하던지.

나도 아지의 엄마라, 이렇게 조금이라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 본다.


내가 엄마집에서 방에 혼자 있을 때면, 아지와 엄마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소리 말이다.


'아지야, 너는 어떻게 이렇게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니?'

'아지야, 너 엄청 귀엽다! 왜 그렇게 하고 있는 거야?'

'아지야, 엄마 왜 쳐다봐? 까까 달라고? 아잇! 없는데~ 한번 찾아볼까?'

'아지야, 너네 엄마 너 산책은 시켜주니? 산책해야 건강하고 다리도 튼튼한데!'


방에서 조용히 듣다가 나는 한소리를 내놓는다.

'어휴! 엄마 시끄러워! 혼자서 뭐라고 얘기하는 거야!'

'나 아지랑 대화하고 있는 거야! 혼자 얘기하는 거 아니야!'

말은 시끄럽다고 했지만 방에서 실실 새어나가는 웃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엄마는 잘 모르겠지만, 아지가 엄마를 만나기 전까지 엄마는 화가 많았다.

틈새를 공략하듯 작은 틈만 보이면 화를 내곤 했는데

아마 엄마는 일과 집안일을 모두 해야 해서 예민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강아지를 쓰다듬으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아지로 인해 행복감을 많이 되찾은 듯 보였다.

여전히 지금도 아지만 생각하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 같은 엄마.


나중에 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내 슬픔을 주체하지 못할까 걱정이 되지만,

때로는 나보다 엄마의 슬픔이 멎지 않을까 걱정된다.

우리 가족 모두 아지를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그만큼 우리의 슬픔은 한없이 깊을 것이기에.

아마 이번 겨울 멈출 줄 모르고 내리던 눈처럼 슬픔에 잠겨있지 않을까.


나중에라도 너를 생생히 기억하기 위해 펜을 잡은 나.

이 글을 보는 사람은 적을지라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네가 내 마음속에서 지워질 때까지 수백 번, 수천번도 읽힐 테니까.

어쩌면 가장 오래 읽혀지는 책이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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