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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Feb 02. 2024

유기견이냐 물어도 할 말 없는 강아지

이렇게 끝내긴 아쉬워서

내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 우리 아지.

내가 보기에는 365일 예쁜 얼굴일 테지만,

남의 눈에는 유기견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너.


내 사진첩에 수많은 사진이 있지만,

다른 비숑들처럼 가지런히 털이 정리되어 있는 사진은 거의 없어.

거의 없다는 그 사진마저도 네가 미용한 날 찍은 사진이지.


네가 엄살이 심하다는 건 너도 인정해야 할 거야.

어릴 때부터 빗을 가져다만 대어도 소리를 지르던 너였으니까.


네가 아프다고 소리를 내는데 내가 어떻게 계속 빗질을 할 수가 있겠어.

그날로 나는 예쁜 비숑을 포기해야만 했지.


나도 그렇고 우리 가족들도 그렇고,

네가 어떤 모습을 하든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워.


그런데 어디 데리고 갈 때는 민망한 게 사실이야.

마치 우리가 네가 어떤 모습이든 관리하지 않는 것 같잖아.

털은 잔뜩 꼬여서는, 옆에 다가가면 냄새날 것 같은 저 지저분함.


그래서 같은 비숑을 만나도 말끔한 모습이면

나는 괜히 한마디 던져.

'어머~ 너는 털 빗는 걸 참 잘 참는구나!

얘는 빗질 시작만 하면 소리를 질러서 못 빗는데!'


그리고 똑같이 빗질이 안된 상태면

나는 동질감을 느끼며 또 다른 말을 던지지.

'너도 빗질하는 거 싫어하는구나?

그래도 예쁘고 귀여워! 행복하면 됐지. 그렇지?'


내 태도가 웃긴 건, 아지 네가 미용한 날이야.

그날은 미용한 게 아까워서라도 산책을 오래 하든, 꼭 어디를 다녀와.


생각해 보니 사람이랑 똑같네.

사람도 헤어숍 다녀오면 완벽하게 세팅된 머리가 아까워서 약속 잡잖아.

그리고 미용실에서는 꼭 질문을 하지.

'오늘 약속 있으세요?'


아무튼 네가 미용하고 돌아다니는 날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대폭 받지.

그러다 같은 비숑 견주가 '얘는 어쩜 이렇게 털을 예쁘게 관리해요?'라고 물으면

나는 멋쩍은 듯 '오늘 미용한 날이에요~ 얘도 잘 못해요~'라고 할 법도 한데,

아니! 나는 절대 그렇게 얘기하지 않지.

당연한 일이라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침묵을 유지해.

그래도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니까 괜찮지?


미용하기 전 / 미용한 후

이렇게 빗질이라도 안 할 거면, 미용이라도 자주 시켜줘야 하잖아.

그런데 미용 비용이 얼마나 비싼지 아니?

비숑은 가위컷을 해야 예쁜데 거기에 엉킹비까지 추가되면 10만 원은 기본이야.


그래서 미용을 다녀올 때마다 나는 너를 내 앞에 앉혀놓고 '빗질 조약'을 맺지.

'엄마 돈 없어서, 너 이렇게 미용 매번 못 시켜.

그러니까 이제는 나랑 빗질 잘하기로 약속해.

너도 이제 어른이잖아! 인정하지?

우리 '빗질 조약'을 맺는 거야. 손!'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영문도 모르는 너는

중얼거리는 나를 쳐다보며 갸우뚱거리다가,

끝내 '손'이라는 말만 알아듣고 내게 작디작은 그 '손'을 내밀지.


'그래! 우리 지금 조약을 맺은 거야! 알았어?'

라는 내 모습을 보니, 꼭 을사조약을 맺는 일본과 조선의 모습 같네.

이 슬픈 역사를 내가 악용하고 있다니, 나는 정말 못된 엄마야.


그래도 나는 네가 한사코 싫다고 하면 절대 빗질을 강요하지 않았어.

나는 너의 작은 신음에도 귀 기울이는 엄마니까.


이제 마음먹고 미용을 하려고 하면, 꼭 예약이 밀려 있더라?

그래서 결국 나는 가위를 들고 네 털을 자른 적이 있어.


작은 몸에서 어찌나 저 많은 털이 나오는지...

너를 복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니까?


그런데 내가 빗질을 잘못해서 네 몸을 모르고 살짝 가위로 잘라버린 거야.

다시 생각해도 너무 아프고 미안해.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절대 네 몸을 자르지 않았어.

혹시라도 내가 보지 못한 곳에 또 네 살이 있을까 봐.



그러다가 최근에는 엄마가 아빠랑 가위로 너의 털을 잘랐는데,

세상에...

나는 강아지가 아니라 집에 요다가 있는 줄 알았잖아.


미용비가 10만 원이나 드는 이유를 단번에 알아차리고 말았어.

그리고 조약이고 뭐고 그냥 미용을 보내는 게 최선이겠다는 결론까지 금세 도출할 수 있었지.

네 덕에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할 이유가 또 생겨버린 거야.


너가 못생겨도 괜찮아.

우리 가족은 아무리 네가 요다처럼 변해도

널 아낌없이 그리고 변함없이 사랑해.

그 사실을 늘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랑하는 우리 아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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