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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Feb 22. 2024

저는 아메리카노를 먹는 어른이 못 됩니다.

음식편

지난 글은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작성했습니다.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지난 글에서 남긴 '커피'에 관한 떡밥을 회수하고 가려합니다.



저는 단 음식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아메리카노의 쓴 맛을 성인이 되어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1인이었습니다.

'우엑! 도대체 이걸 왜 먹는 거지?'라는 생각이 늘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주문하고 맛있게 먹으니까, 한 번씩 재도전을 했었죠.

결국 따라오는 것은 '아... 다른 거 먹을 걸...'이라는 후회뿐이었지만요.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하죠?

10번, 20번 저 실수를 반복해도 제 입맛에 아메리카노는 절대 길들여질 수 없는 음료였습니다.



제가 늘 선택한 음료는 초코와 휘핑크림이 가득 들어간 프라페 혹은 민트 음료였습니다.

늘 1등은 민트초코였고 2등이 초코음료였죠.

생각해 보면 맨날 파스타, 짜장면, 햄버거, 피자 같은 인스턴트식품이랑 단 음식들만 골라 먹었는데, 

어쩜 그렇게 살이 하나도 안 쪘는지 신기할 노릇입니다.

입맛은 그대 로고 살은 붙기 시작해서 이제는 먹는 음식을 바꾸지 않는 이상 살이 안 빠지는데 말이죠.

이게 바로 나잇살인가 했는데, 제 업보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대학교 3학년 때였나? 4학년 때 한 친구가 바닐라라떼를 먹어보라고 추천했습니다.

"야 그런 거 먹지 말고 바닐라라떼 먹어봐. 진짜 맛있어 이거."

"잉? 그거 커피잖아! 나 커피 못 먹어!"

"아냐, 이거 단 맛이라서 너도 좋아할 거야 분명히. 먹어봐 진짜 한 번만."



그래서 저는 그 친구를 믿고 바닐라라떼를 먹었는데,

'와! 커피에도 이런 맛이!'하고 신세계를 마주한 것마냥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야!! 이거 뭐야?!! 맛 미쳤는데?!! 이 맛있는 걸 너만 먹고 있었다고?!!"

"거봐!! 내가 나 믿으라고 했잖아!! 이제 그거 먹어. 이상한 거 먹지 말고ㅋㅋㅋ"

그 이후로 민트, 초코 음료는 쳐다도 보지 않았고 무조건 바닐라라떼만 먹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닐라라떼도 매장마다 맛이 다 다르다는 것 알고 계신가요?

지날 글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우유의 맛도 구분하는 사람인데 시럽 맛이라고 구분을 못 할까요.

저는 구별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제 입맛에 맞는 바닐라라떼를 찾아 나서기 시작합니다.



구분 방법은 '바닐라 파우더'를 사용하냐, '바닐라 시럽'을 사용하냐입니다.

제가 먹는 바닐라 라떼는 '파우더'를 사용한 것이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를 방문할 때는 바닐라 라떼에 시럽이 들어가는지 물어보고, 

시럽이 들어간다고 하면 초코 음료를 주문해서 먹었습니다.

물론 프랜차이즈 카페는 이미 한 번씩 먹어보고 구별을 다 했고요.

참고로 파우더랑 시럽 둘 다 쓴다고 하는 곳은 호불호가 갈립니다.

어느 곳은 파우더 비율이 조금 더 많아서 괜찮고, 어느 곳은 시럽 비율이 더 많아서 별로인 곳이 있거든요.



이 타이밍에 파우더를 사용하는 곳 중에서 맛있는 프랜차이즈를 말씀드려 보자면, 

이디야 커피, 할리스 커피, 빽다방, 커피앳웍스라고 하고 싶네요.

제 입맛이 워낙 까다롭기 때문에 바닐라라떼가 아닌 다른 음료는 먹어볼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오빠가 저를 위해 비싼 음료를 사 왔다며 먹어보라고 하는 겁니다.

"바닐라 라떼야?"

"아니야. 근데 여기서 잘 나가는 메뉴래. 엄청 맛있다고 그랬어."

"그래...? 사다준 건 고마운데... 내 입맛에 안 맞으면 어떡하지?"

"일단 먹어봐."



일단 먹었죠.

웬걸. 이건 또 뭔데 이렇게 맛있는 거죠?

저는 감동의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음료의 정체는 바로 컴포즈 커피에서 판매하는 '아인슈페너 라떼'입니다.

자칫 실수해서 '아인슈페너'를 구매할 수도 있는데 절대 안 됩니다.

'아인슈페너'는 아메리카노를 베이스로 만드는 거고 '아인슈페너 라떼'는 우유 베이스니까요.

맛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컴포즈 커피 말고 다른 매장 이용 시에도 '아인슈페너'를 파는 곳이 있다면, 

반드시 '라떼인가요?'라고 질문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바닐라라떼는 또 쳐다도 보지 않게 되었고,

이전의 민트와 초코 음료처럼 제게 버려진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마시는 것'을 잘 못합니다.

그래서 음료를 먹으면 하루종일 먹습니다.

하지만 어떤 음료든 얼음이 녹으면 희석되어서 맛이 변질되잖아요.

특히 아인슈페너에 들어가는 크림은 생크림이 아니라서 고체 형태로 유지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더 맛없게 변질되기 때문에 저는 반 정도만 먹고 버릴 때가 많습니다.



예민한 건 제 입맛뿐만이 아닌데요.

제 위는 빈 속에 커피를 마시면 난리가 납니다.

아메리카노를 빈속에 마시면 쓰리고, 시럽 같은 게 첨가된 라떼를 빈속에 마시면 울렁거려요.

마치 누가 위의 겉 부분에 끈적한 막을 씌워놓은 것마냥 하루종일 불편한 느낌입니다.

특히 바나프레소의 크리미라떼가 그래요. 아주 가지가지죠?

갖가지 울렁거림을 겪었던 저는 이제 아인슈페너와 그 외 달달한 커피를 그리 선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제가 먹는 커피는 드디어! 아메리카노가 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럼 이번엔 또 도대체 뭔데~' 싶으시겠지만 조금만 더 읽어보세요.



제가 바디프로필을 찍은 적이 있습니다.

바디프로필에 관해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식단을 정말 끔찍하게 극단적으로 먹어야 해요.

그러니 당연히 단당류인 제가 먹는 음료들은 싹 다 금지였죠.

그때 저는 아메리카노를 먹었고, 제가 싫어하는 과일인 바나나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면서 냠냠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어느 날은 PT선생님이 너무 스트레스받으면 하루정도는 라떼를 먹어도 된다고 하셨고, 

저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먹어본 적도 없는 '라떼'를 사서 먹었죠.



처음 먹어본 그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고소하면서도, 커피맛이 싹 느껴지면서도, 울렁거리지도 않고, 시럽이 없어서 칼로리는 낮은 이 음료!

"이게 이제 내 인생 음료다."라고 정했죠.

물론 바디프로필이 끝나고 폭식증이 오면서 라떼가 아닌 단당류 음료를 다시 입에 댔지만 말이에요.



폭식증이 끝나고 지금도 식이조절을 잘 못하기는 합니다만,

지금은 10번 커피 마시면 9번은 라떼를 선택합니다.

라떼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리고 아메리카노는 먹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고요.

하지만 혹시 알까요?

제가 또 바디프로필을 찍게 된다면,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될지.

저는 언제쯤 어른들이 좋아하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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