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세 회사원의 역류성 식도염 투병일지
이 글에 어떤 제목을 붙일까 고민하다
문득 온 국민이 다 아는 시의 첫 구절이 떠올랐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中
이 문장을 조금 변형하면 지금 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의 위는 갔습니다. 완전히 (맛이) 가 버렸습니다.
31세 회사원, 위(?)의 침묵 中
내 위가 언제부터 맛이 가 버렸는지 나는 정확히 모른다. 언제부터였을까.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 목에 이물감이 느껴지며 잔잔한 헛기침을 시작한 작년 말부터? 매일 아침, 빈 속에 아아메를 들이부으며 위에 굿모닝인사를 하던 재작년부터? 도대체 어디서 부터 잘못됐을까.
하여튼 간에 내가 역류성식도염을 공식적으로 진단받은 것은 올해 3월 건강검진을 통해서였다. "가벼운 역류성 식도염 소견이 있네요." 수면 위내시경을 마치고 개운하게 일어나니 간호사가 내게 말을 건넸다. '가벼운'이라는 형용사에 꽂히기도 했고, 그때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병이니 알아서 잘 낫겠다 싶었다.
건강검진 이후로도 나는 반성 없이 위를 혹사시켰다. 아침의 시작은 무조건 얼음을 넣은 차가운 아메리카노, 아니면 제로콜라였다. 하루에 두 세잔은 기본이었다. 그렇게 음료를 들이부으니 점심이 되면 배가 고플 리 없었다. 자연스럽게 음식은 저녁에 한 끼 정도를 먹게 됐다. 퇴근시간이 되면 몸에 힘에 들어가지 않아 배달 어플을 켰다. 저녁을 허겁지겁 먹고는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위를 매일 고문한 수준이었다.
재택근무를 시작하며 활동량도 현저히 줄었으니 내 불쌍한 장기는 어리석은 주인때문에 늘 쭈구러져 있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병원을 찾은것은 물만 마셔도 이물감이 들기 시작하던 올해 여름부터였다. 아침 저녁 처방받은 약을 먹으니 병세가 눈에 띄게 나아졌다. 삶의 원동력이었던 커피와 제로콜라도 과감히 끊었다.
밀가루 음식만은 끊을 수 없어 면과 빵을 가까이하던게 화근이었을까. 처방받던 약을 먹어도 이물감은 더 심해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이대로만 생활하면 장수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침의 시작은 위에 좋다는 양배추즙 1팩으로 시작한다. 점심은 꼭 쌀밥으로, 고춧가루가 들어간 반찬은 피한다. 저녁은 최대한 가볍게 샐러드를 먹는다. 역류성 식도염 환자들의 마지막 보루라는 매스틱 검을 직구로 구입해 도착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위기를 잘 넘겨 낼 수 있을까?
여기서 당연하지만 항상 잊곤 하는 내 좌우명을 언급하고 이 글을 마무리한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를 만들고,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를 만든다."
나는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