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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 Feb 12. 2020

늦여름밤의 꿈

그와 함께한 6개월

  때는 바야흐로 8월 말이었다. 첫 휴가를 받았지만 여행을 갈 수 있는 주머니 사정이 되지 않았던 나는 울적해했다. 평소 나를 마치 자신이 부화시킨 달걀처럼 살뜰히 챙기는 친구가 전시회를 보여줬던 탓에 기분은 좀 나아졌던 터였다.


  심심하고 무료했다. 한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며칠 동안 간혹 전화해 안부를 나눴던 그가 생각났다. 사실 처음부터 그를 만날 생각은 없었다. 2016년에 멈춰진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과 티키타카 안되는 재미없는 전화통화에 뻔한 미래가 보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 외로웠다. 그리고 요즘은 그때의 내가 외로움에 사무치고 있었던 것이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그때 내가 행복했었더라면 나는 그를 영영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요즘도 그 친구를 보면 그를 처음 만났던 늦여름의 그때가 떠오른다. 그가 색깔별로 사입던 교복같던 일명 냉장고 티셔츠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의 신발인 꼼데 척테일러. 그에게 늘 풍겼던 달콤하지만 무겁지 않은 향기가 생각난다.


  어쩌면 여름 내내 걸었던 서울숲과 성수동, 익선동과 뚝섬유원지, 연남동과 한밤의 반포를 난 영영 잊지 못할지도 모른다.


  최근 그와의 만남을 그만할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무엇보다 마음이 건강하고 따뜻한 그가 더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나보다 더 예쁘고 마음에 생채기가 없는 여성과 미래를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사랑하니까 헤어진다는 말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면 눈치 빠른 이별은 상대에 대한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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