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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 Jan 12. 2021

퇴사에 대한 예의

신입사원, 뜻밖의 퇴사를 목격하다

일복이 많은 것 같기는 하다. 좋게 말하면 노력하는 만큼 성취하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운이 지지리도 없는거다. 불길한 느낌이 엄습한 것은 회사에서 사용하는 온라인 캘린더가 눈에 띄게 길어지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물론 입사 첫주부터 야근을 하긴 했지만 타의라기 보다는 하루빨리 적응하고 싶은 자의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점점 내 야근은 자의가 아닌 타의가 되어갔다.


입사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았는데 두 명의 팀원이 퇴사한 것은 결코 좋은 징조는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전임자를 포함해 총 세 명의 퇴사를 지켜본 셈이다. 전임자의 퇴사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그녀는 책임감이 강했고 유쾌한 사람이었고, 이렇게 짧게 얽혀있지 않다면 언젠가는 친하게 지내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차피 헤어질 인연인 것을. 크게 괘념치 않았다.


갑작스러운 팀장님의 퇴사에는 살짝 동요했다. 다름 아닌 나를 1차 면접에서 통과시킨 분이 아니던가. 얼핏 귀동냥으로 들었던 팀장님의 최애 브랜드에서 퇴사선물을 사며 마음이 착잡해졌다. 우리 팀의 단골 삼겹살집에서의 회식에서 쿨하다 못해 냉랭하기까지하던 팀장님의 외침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어디 한 번 잘해봐!!!" 그녀는 그래도 막내인 나에게 마지막까지 따뜻한 말 한 번 건네지 않았다. 술에 취해 혀가 꼬인 목소리로 내가 고기를 못굽는다며 푸념하는 팀장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상하게 정말 마지막까지 그녀답다고 생각했다.


한 달도 안되어 팀의 2인자 과장님의 퇴사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남진의 노래 '둥지'속의 가사 중 한 소절처럼, 이게 현실인가 꿈인가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난 어느새 그녀의 퇴사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닌 곧 세상에 나올 생명을 품고 회사 건물을 떠나는 그녀를 보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전임자를 제외하고, 두 분을 떠나보내며 가장 공들였던 것은 바로 선물이었다. 글쎄, 나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챙기는 살가운 성격은 아니다. 다들 여성스러워보이고 섬세해보인다고 말하지만 사실 아무도 보지 않으면 발가락으로 리모콘을 누르고 방정리도 날잡아서 한다. 그럼에도 그녀들의 퇴사에 공들였던 이유는 그녀들의 뒷모습에서 내 과거가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햇병아리 신입과 베테랑 팀장의 퇴사가 어찌 같으랴. 하지만 3개월짜리 인턴이든, 억 소리나는 연봉을 받던 임원이든 퇴사라는 과정은 제법 외로운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 여름 받았던 극진한 대접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다. 잠시 머무르다 떠날 계약직에게 꽃다발과 선물을 바리바리 안겨줬던 상사들. 비록 회사 건물을 나서며 나는 조금 울었지만 그 꽃다발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팀장님의 퇴사는 갑작스러워 준비하지 못했지만, 과장님의 퇴사에는 가장 예뻐보이는 꽃다발 하나를 주문했다. 적어도 꽃다발과 함께라면 그녀의 퇴근길은 외롭지는 않을 것임을 알기에.


과장님의 미래가 행복하길 바라며 주문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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