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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 Feb 15. 2024

겨울 한라산 등반 기록

2024년 2월 7일 한라산에 다녀왔다.


실은 두 번째 한라산이다.


첫 등반은 2019년 1월 영실코스 - 윗새오름 - 남벽분기점으로 왕복 7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1월이었지만 날이 포근했고, 특히 윗새오름-남벽분기점을 오르는 길이 한적하고 아름다워 참 좋은 기억으로 남은 하루였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한라산에 왔으나 백록담을 마주하지 못하고 뒷벽(남벽)만 보았던 것이다. “언젠가 백록담을 두 눈으로 보리라” 다짐하며 하산했다 ㅎㅎ

2019년 1월 내가 찍은 사진


그리고 4년 만에 백록담을 두 눈으로 보았다.


이번 코스는 성판악이었다.


영실코스와 달리 성판악은 사전 예약이 필수이다. 시간대 별로 통제인원이 있는데 나는 5:00-8:00 시간대로 예약했고 등반 한 달 전쯤 예약하니 수월하게 예약할 수 있었다.


성판악 - 진달래밭 대피소

나의 원래 계획은 성판악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하는 것이었다. 하산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겨울철 기준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오후 12시에 입산을 통제하고, 백록담에서도 오후 13시 30분까지 하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내 기준으로는 성판악부터 진달래밭대피소까지 3시간 소요된다고 했지만 내가 대한민국 평균치에 미치치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여유롭게 7시 출발로 계획했다. 더욱이 중간중간 휴식도 취하고 백록담에서 인증샷도 남기려면 1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인생살이가 늘 그렇듯 준비가 길어져, 성판악에 도착하니 7시 50분이었다 후후. 좀 늦은 출발이었지만 다행히 나는 대한민국 평균이었는지, 10시 40분쯤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했다.


성판악이 관음사대비 길지만 완만해서 등반하기에는 좋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길 자체가 가파르다는 느낌은 진달래대피소 근처 30분 정도였고, 그 외에는 완만한 길이 이어졌다.


다만 정말 길었다.


진달래 대피소에 다다르면 ‘이 정도면 다른 산은 정상인데, 여기서 1시간 30분을 더 올라야 한다니’ 암담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럴 때는 뭘 좀 먹고 쉬어야 한다. 나는 한 20분 정도 쉬면서 김밥 반 줄과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사람이 참 단순한 게 그렇게 힘들었다가도, 작은 휴식에 어느새 힘이 나고 정상을 기대하게 된다. 만약 12시에 임박해서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해서 제대로 쉬지 못했다면 정상까지 못 갔을 것 같다. 그러니 꼭 진달래 밭 대피소에서 잠시 휴식하는 시간까지 고려하여 등반 계획을 세우길 추천한다.



진달래밭 대피소 - 백록담

1시간 30분이 꼬박 소요되었다.


짧은 휴식으로 힘을 내기는 했지만, 벌써 3시간 넘게 산을 오르고 있기 때문에 금방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중간중간 초콜릿을 먹어가며, 사과도 먹어가며 부지런히 힘을 내야 한다.


40분쯤 오르다 보면 봉긋한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고지가 보인다”보다는 “아직도 저렇게 멀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멀리.. 정상이 보인다. 그래도 의욕적으로 사진을 한 컷 남겼다.

퐛팅


이 지점을 지나면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힘드니까. 속으로 ”하나, 둘, 셋…. “하며 100까지 숫자를 반복하기를 여러 번, 문득 다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며 오르나 궁금해졌다. 앞서 걷던 어머님께 ”어머님 무슨 생각하세요? “ 물었다.


“생각은 무슨. 그냥 숫자 세고 있어.”


세상에나, 소름 돋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다. 우하하 웃음이 났다. 생각도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어머님에 통찰력에 큰 깨달음을 얻으며, 다음에 생각이 너무 많이 힘이 들때는 몸을 힘들게 해야 겠다는 다짐을 하며 마지막 힘을 내었다.


정상을 앞둔 마지막 고비

정상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는 위와 같은 절경이 펼쳐진다. 이 순간은 숫자를 셀 필요도 없다. 이제 곧 정상이라는 생각에 바쁘게 발이 움직인다. 그렇게 10분여를 걷다 보면 드디어 백록담이 보인다.


백록담

성판악에서 출발할 때는 날이 흐린 것 같아 걱정했는데 백록담이 맑고 깨끗하게 보여서 참 다행이었다.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남기고 싶었지만 인증샷을 위한 줄이 너무 길어서 족히 30분은 넘게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표지석 인증샷은 포기했지만 백록담 앞에서 한 장 남기고,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했다. 정상은 바람이 거세고 사람도 많아서 오래 머무르기에는 체력 소모가 많아, 빠르게 사진과 영상통화를 마치고 하산을 시작했다.



알고 보니 고행의 시작이었던 하산 기록은 다음 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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