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 기록에 이어 하산 기록도 남겨둔다.
하산 역시 등반과 동일하게 성판악코스를 택했다.
하산이라는 기쁨과 진달래밭대피소에서 먹을 라면 생각에 기분 좋게 내려올 수 있었다. 힘겹게 올랐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내려오는 길은 쉽게 느껴졌다. ‘역시 올라가는 게 어렵지 내려오는 건 쉽구나!’ 생각했다. 실제로도 등반 기준 1시간 30분 걸린 거리는 1시간 만에 내려오기도 했고!
하지만 결국 성판악까지 모두 내려오고 알게 된 것은 이때 너무 무리했다는 것이다. 잘 내려오는 게 중요했던 거였은데 그것을 간과하고 막 내려오고 있던 거였다. 설산을 휙휙 내려오며 무릎에 하중이 심해졌고 중반 이후 엄청난 무릎통증이 시작되었다..
한라산은 왕복 9시간이 걸리는 긴 산행길임을 잊으면 안 된다. 첫째도 체력 분배, 둘째도 체력 분배. 긴 시간 끝까지 마무리하기 위해 무리하지 않는 게 좋다.
머릿속이 라면 생각으로 가득 찰 때쯤, 배고파 쓰러지겠다 싶어 질 때쯤 진달래밭대피소에 도착한다. 대략 13시 45분쯤 되었던 거 같다.
아침에 무거운 보온병을 챙기며 “이거 너무 무거운 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라면국물을 마시면 ”라면 안 가져왔으면 큰일 났을 뻔했구나 “ 깨달았다. 따뜻하고 국물에 온몸이 녹는 것은 물론, 거의 99%의 등산객이 라면을 챙겨 와서 대피소 안에 라면 냄새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참을 수 없는 냄새가 라면 냄새 아니던가.
보온병과 물의 무게 때문에 잠시라도 라면을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등반할 때는 통제 시간이 있어서(진달래밭대피소에서 12시 이후 입산통제, 백록담에서 13시 30분까지 하산) 마음 한편 불안함이 계속 있었다. 그래서 길게 휴식을 취하지는 못했는데, 하산길 라면을 먹으며 가장 오래, 마음 편히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반전은 진달래밭대피소부터 성판악까지 아직 3시간 넘게 더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산길은 참 한적하고 아름다웠다. 일반적인 산들과 달리 입산 통제시간이 이르기 때문에, 이 시간대(14시 이후)에는 모두 하산하는 사람들이라 올라오는 사람과 마주할 일도 없고, 하산하는 사람도 크게 몰리지 않아 조용한 산속 내내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만이 ASMR처럼 들려왔다.
문제는 딱 한 가지 나의 무릎의 상태였다. 처음에는 뻐근한 정도였는데, 발을 내딛을 때마다 통증이 커졌다. 찌릿찌릿해서 무릎을 구부리기 힘들 정도에 이르니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뒷사람들이 나를 앞질러 갈 때마다 걱정과 두려움이 더 커져갔다. 어머님이 그럴 필요 없다고 격려해 주셨지만 무릎의 상태가 점점 아파오며 왈칵 눈물이 나려고 했다.
순간 머릿속에 “울면 해결되냐?”라는 질문이 스쳐갔다. 해결이 되겠는가. 우느라 더 지치기만 하지 ㅎㅎ 그래서 체념했다. 올라갈 때 숫자 세기를 반복했듯, 어떻게 하면 무릎이 덜 아프게 발을 디딜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이렇게 해도 방법은 없어서 10분 걷고 5분 쉬 고를 반복하며 아주 천천히 내려왔다. 다행히(?) 왼쪽 무릎만 심하게 아프고 오른쪽은 견딜만해서 최대한 오른쪽 무릎을 많이 사용하려고 애썼다.
내가 포기할까 봐 몽생이와 어머님은 옆에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근데 사실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ㅋㅋㅋㅋ 벌써 7시간 가까이 산행 중인데 너무 아깝지 않은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간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죽밥정신으로 무사히 하산했다.
아침 7시 50분 등반 시작하여, 오후 5시 30분에 등산을 완료했으니 9시간 30분 넘게 걸렸다. 내 인생 가장 오랜 시간 걸은 기록이다. 평지도 아닌 산을.
나의 체력의 한계를 마주하기도, 그럼에도 해내는 나의 의지를 발견하기도 한 2024년 2월 한라산. 언젠가 한 번 더 오르기 위해서 꾸준한 운동과 득근을 다짐해 본다.
장비는 많을수록 좋다. 모자, 장갑, 등산화, 아이젠, 등산 폴대는 필수이다. 나 역시 이렇게까지 챙겨야 하나 했는데 이 중 하나라도 없었으면 엄청나게 고생했을 것 같다. 무릎보호대까지 추가했으면 완벽했을 텐데! 실제로 무릎보호대하고 오신 분들도 많았다.
간식도 두둑이 챙겨가면 좋다. 나는 1인기준 사과 1개, abc초콜릿 8개, 물 1병, 김밥 1.5줄, 컵라면 1개, 커피 한 잔을 챙겼다. 오르고 내리며 적절하게 먹기에 딱 알맞았다. 물이 부족하진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그렇진 않았다.
등산 출발 시간은 7시 30분 - 8시 사이가 딱 좋다! 등산과 하산 모두 적절하게 한산하고, 백록담까지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다. 특히 좋았던 것은 하산길에 마주 오는 사람(올라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중간중간 좁은 길들이 있어 마주 오는 사람이 있다면 꽤나 힘들었을 것 같다.
올라가는 것만큼 내려오는 것도 힘들다. 그리고 길다. 체력 안배를 잘해야 끝까지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다.
ps. 물리치료
하산 이후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무릎상태에 결국 다음날 정형외과에 갔다 ㅎㅎ “아유 한라산 정상까지 다녀왔어요? 대단해요. “라는 의사 선생님의 칭찬과 함께 다행히 큰 이상은 없고 연골에 자극이 많이 가서 그러니 물리치료 받고 약만 잘 먹으면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물리치료 이후 훨씬 가뿐해져서 마음이 많이 놓였다.
하산 이후 무릎이 아프면 꼭 병원에 가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