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편지_성균관대 은행나무

“그냥 나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연습 같은 거예요.”

by 전초록


선배,
나는 요즘 선배에게 말을 걸기 전마다
괜히 한 번 마음을 고쳐 잡아요.
단순한 인사도 이상하게 신경이 쓰여서
숨을 한 번 정리하고 나서야 대답하죠.


선배와 걷는 길에서는
항상 내가 반 발짝 뒤에 서 있는 기분이에요.
선배가 앞서가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거리를 두는 것 같아요.


가까워지면
내 마음이 들킬까 봐.


선배가 웃으면
그 순간이 오래 남아서
혼자 있을 때도 자꾸 떠올라요.


그때마다 나는
그냥 후배로선 충분하다고
억지로 스스로를 달래곤 해요.


요즘은
이 마음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점점 헷갈려요.


선배에 대한 동경인지,
친밀함인지,
그걸 넘어서는 어디쯤인지.


이 감정을 다들 겪는 건지 
아니면 나만 조금 다른 자리에 서 있는 건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요.


정의하려 하면 더 복잡해지고
복잡해질수록 더 숨기게 돼요.


어제 선배가 아무렇지 않게
나중에 여자친구 생기면 이런 데 또 오자고 말했을 때,
그 말이 왜 그렇게

아프게 남았던 걸까요.


아마도
전 여자도, 친구도 될 일이 없으니까요.


어딘가에 서 있는 이 마음은
이름 붙이지 않는 게
오히려 편할 때가 있어요.


이 편지는
선배에게 답을 듣기 위한 것도 아니고
내 마음을 증명하려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나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연습 같은 거예요.

선배는 몰라도 괜찮아요.


나는 이 마음을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당분간은 충분할 것 같아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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