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은 예뻤고, 최악이었다.”
오늘 부장한테 제대로 깨졌다.
근데 그게 또 딱 부장스러운 방식이었다.
회의실 사람들 앞에서 내가 한 실수보다 두 배는 크게 부풀려서 혼냈다.
딱 봐도 본인 체면 지키려고,
내가 관리 안 하는 상사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그 특유의 자아방어용 호통.
담배를 피우러 1층으로 내려왔다.
나라도 내 체면을 좀 챙겨야 하니까.
근데 하필이면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부장이 서 있었다. 이 회사는 큰데, 우연은 왜 이렇게 작게 다니는지.
마침 그때 첫눈이 내렸다.
첫눈은 예뻤고, 최악이었다.
왜 내가 하필 첫눈을 같이 맞는 사람이 부장인가.
부장은 그걸 보며 한마디 했다.
-아, 이 흰 쓰레기.
첫눈을 쓰레기라고 부르는 인간과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최대한 담배만 빨리 태우고 도망치려고 했는데
부장이 갑자기 말했다.
-커피나 한 잔 하지? 얘기 좀 하자.
아. 시작이구나.
아까는 좀 과했지? 같은 변명과 합리화의 시간.
어쩔 수 없이 부장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첫눈 오는 길을, 같이.
걷는데 부장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아까 내가 뭐라고 좀 했지? 근데 너도 알잖아.
다른 애들 앞이라… 내가 좀 세게 말할 수밖에 없었어.
아하.
내 실수는 맞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를
본인 입으로 시인하시겠다?
-근데 너도 오늘 보고서… 솔직히 좀 나쁘긴 했어.
사실 맞는 말이었다.
내가 대충 하긴 했다.
열받지만… 인정은 됐다.
카페에 도착하자 부장이 주머니를 뒤적였다.
-아, 나 카드 안 가져왔네.
그 순간 다시 피어오르는 짜증, 억울함, 회사라는 시스템에 대한 분노. 그 모든 감정이 첫눈 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제가 살게요.
부장은 미소를 지었다.
첫눈은 더 굵어졌다.
아까보다 훨씬, 쓰레기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