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걷는 다는 게, 어쩐지 낭비같기도 했으니까.”
언제부터였을까.
서울의 일부 구역이 산책 금지 구역으로 하나 둘 지정되기 시작하더니 이젠 서울 전체가 산책이 금지됐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법까지 통과됐다.
사람들의 불필요한 이동을 줄이고,
효율적인 에너지 소비를 위해서
무의미한 사색과 감정 소모를 막기 위해서
범죄 예방 -천천히 걷는 것이 범죄를 유발 한다나 뭐래나- 따위의 이유들이 있었지만 딱히 귀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나는 딱히 산책을 하지 않았기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이유 없이 걷는 다는 게, 어쩐지 낭비같기도 했으니까.
출퇴근 길, 장을 보러가는 길 같은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걷는 것이 허용됐다.
잠깐이라도 노래를 들으며, 생각을 하며 길 위에서 걸음을 낭비할라치면 불법 산책 감시 드론이 나타나 딱지를 땠다.
한강엔 뛰는 사람, 앉아서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만이 남았다. 사람들은 산책대신,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경보를 선택하기도했다. 소모임에는 경보 메이트를 구하는 게시글들이 많아졌다.
자주 걷던 길은 어쩐지 한산해졌다.
산책을 즐기던 이들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나는 평소에 산책을 전혀 즐기는 타입도 아니었는데
산책이 금지가 되니 어쩐지 밖을 하염없이 걷고 싶어졌다.
생각하고, 숨 쉬고, 아무 의미도 없이 저녁 밤 거리를
해질녘의 노을 깔린 길을, 대낮의 해사한 길 위를 걷고 싶었다. 걷는 것이, 걸어야만 살아 있는 증거가 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날 밤, 모자와 마스크를 챙겨 밖으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목적이 없는, 목적지가 없는 순수한 산책이었다.
조금 걷지도 않았을 때, 드론이 나타났다.
-산책 금지법 위반입니다. 당장 멈춰서세요. 아니면 뛰세요. 쓸모없는 산책은 위법입니다.
나는 드론을 무시하고 걸었다.
당장 멈추거나, 뛰라니.
나는 걷고 싶다고!
-얼굴 인식을 위해 마스크를 벗어주십시오. 산책 금지법 위반입니다.
나는 드론을 피해 숨거나 뛰지 않았다.
그저 걸을 뿐이었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느린 도망자같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