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을 잃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캐묻기

by 김재용

아버지가 새 차로 중형 세단을 사려고 하셨고, 견적을 받아왔는데 계약조건이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바로 계약하려고 하셨지만, 나는 뜯어말렸다. 내가 조금 알아보겠다고 했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물어보고,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전달했다. 아버지는 하루라도 빨리 사려고 하셨고, 계약하겠다며 자동차 딜러와 약속을 잡았다.

딜러는 오늘 땡잡았네 :(


나는 계약 조건이나 상황이 좋지 않다면 굳이 여기서 계약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약속한 시간에 딜러와 협상을 시작했고, 만족할 만큼의 조건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처음 받은 조건보다는 좋아졌지만, 그럼에도 한참 부족한 수준의 서비스를 약속받았다. 새 차가 급하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딜러와 비교하고 계약하더라도 출고 시간 차이가 많이 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아버지는 바로 딜러와 계약을 했다.

계약 조건 협상은 전형적인 파이 게임이었다. 우리가 조금 더 파이를 가져오면, 상대는 잃을 수밖에 없다. 반대도 마찬가지. 자유경제 사회에서 협상의 조건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정보는 상대가 많이 가졌지만, 결정권은 우리가 가졌다. 충분히 유리한 협상을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러지 못했다. 내가 확실하게 알고, 준비해 갔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아버지를 설득할 시간이 부족했던 걸까? 파이를 더 가져오고자 했던 것은 내 이기심일 뿐이었을까?


다른 딜러와도 연락을 하고 있었기에 비교해 보고 좋은 조건에서 계약할 수 있음이 확실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남 좋은 일만 하고 우리가 손해 보는 것만 같아 속상했다. 물론 내 차를 사는 것이 아니기에 아버지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할 수밖에 없어, 주도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사람 좋은 웃음을 하며 나왔지만, 속으로는 전혀 웃지 못했다.


계약하고 나오자마자 아버지에게 속상함을 쏟아냈다. 이기심은 계속된 후회와 욕망을 부추겼다. 그러다 아버지가 중형 세단을 사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가 떠올랐다. 처음 들었던 생각은 '아버지가 좋은 차를 타고 행복하시면 좋겠다.'였다. 목적을 잊고 있었다. 아버지의 행복함. 아버지는 계약조건이 중요하지 않았다. 계약 조건에 따라 속상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아버지에게 행복함을 가져다줄 새 차가 내가 하는 푸념으로 인해 속상함을 가져다줄 수 있다. 현재 아버지가 속상해지는 만큼 조건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목적을 깨닫고는 더 이상 속상함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앞으로 필요한 것이나 새 차를 타고 어디를 가실지 여쭤봤다. 계약이 끝났으니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새 차를 통해 아버지가 속상함이 아닌 행복함을 느끼도록 옆에서 돕는 것이다.


때로는 목적을 잃고 그릇된 욕망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릇된 욕망은 우리를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하며, 나아가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아쉽게도 목적을 잃지 않는 방법 같은 것은 없다. 대신 목적을 잃더라도 금방 다시 찾는 방법은 되묻는 것이다. 자기 점검을 통해 목적한 바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반복하다 보면 최단거리는 아닐지 몰라도 목적지에 정확하게 도착할 수 있다. 나는 아버지의 행복을 위해 계속된 자기 점검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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