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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Oct 06. 2022

가난에 대한 단상(feat. 작은 아씨들)

《작은 아씨들》은 가난하지만 우애 있게 자란 세 자매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유하고 유력한 가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맞서는 이야기다.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 '가난'과 '부유'라는 개념이 핵심적인 대비 요인이다. 현재 12부작 드라마의 1/3인 4화까지 봤지만, '가난'과 '부유'의 대비는 극명하다. 인물, 배경, 관계, 물질 등 극 중의 모든 상태는 '가난'하거나 '부유'하다. 조연이라도 예외는 없고, 중간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가난'은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함. 또는 그런 상태를 뜻한다. 대비되는 '부유'의 사전적 정의는 재물이 넉넉함을 뜻한다. 재밌는 사실은 '가난'이란 명사가 '가난하다'라는 동사가 되면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여 몸과 마음이 괴로운 상태에 있다.'로 정의되지만, '부유'라는 명사는 '부유하다'라고 동사가 되어도 '생활이 여유가 있을 만큼 돈이 많다.'로 정의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하나는 '가난'이라는 개념이 동사가 되면 감정이 함께 정의되지만, '부유'라는 개념은 동사가 되어도 감정과 무관하게 정의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가난하다'가 가지는 사회 인식 때문이 아닐까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난'은 물질의 부족뿐 아니라 감정과 같은 비물질의 부족 또한 동반한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고 생각한다. '가난'과 '부유'는 개념 적으로는 상하 관계가 아니지만, 인식적으로는 상하 관계다.


'가난하다'와 '부유하다'라는 상황만을 나타내는 동사여야 한다. '부유한 존재'라도 괴로울 수 있고, '가난한 존재'라도 행복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가난'과 '부유'라는 개념에 감정을 분리하도록 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인식 전환은 행동 전환을 필히 동반하는데, '가난'과 '부정적 관념'을 분리한다면 그들의 강점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가난한 존재'들이 느끼는 감정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상대와의 관계를 연결한다. 부의 불평등이 나날이 심해지는 현시대에 '가난'과 '부정적 관념' 분리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다른 한 가지는 괴로운 상태, 즉 일종의 병리적 상황으로 묘사된다는 것이다. 극 중에서 '가난한 존재'인 작은 아씨들은 사회관계가 부족하거나(극 중 오인주), 술에 의존하여 삶을 살거나(극 중 오인경), 참된 사랑을 알지 못하고 '가난'한 상황을 벗어나려(극 중 오인혜) 한다. 다시 말해 '가난한 존재'들은 온전치 못한 상황에 처해 있기에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벗어나야 하는 상황으로 묘사된다. '가난'이라는 상황은 벗어나야 하는 절대적 악의 상황인가?


사람마다 가지는 도덕률이 다르지만, '가난하다'는 것은 선 또는 악으로 구분할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난'과 '부유'를 나누는 기준은 오로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질적 충족 상태여야 한다. 사람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물질적 충족 상태는 다를 수 있다. 나는 아이폰과 아이패드, 에어팟, 애플워치 등이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질적 충족 상태지만, 우리 아버지는 네 가지 중 그 무엇 하나 필요치 않는다. 나는 부유하고, 우리 아버지는 가난한 상태일까?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 충족의 상태다.

너네 집은 다 진짜야.
너네 언니들도 널 진짜 사랑하는 것 같고.


따라서 '가난'과 '부유'를 단순히 내가 가진 돈으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삶에서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절대적 권력과 물질적 풍요를 모두 가졌지만, 극 중 박효린(부유)은 극 중 오인혜(가난)의 삶을 부러워한다. 부러움의 이유는 물질의 금전적 가치보다 필요에 따른 가치다. 필요에 따른 가치는 사는 것이 아니라, 부여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가난'과 '부유'는 돈으로 치환될 수 없으며, '가난'은 벗어나야만 하는 상태가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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