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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Oct 10. 2022

신념에 대한 단상(feat. 작은 아씨들)

굳건한 신념에 대하여

《작은 아씨들》은 가난하지만 우애 있게 자란 세 자매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유하고 유력한 가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맞서는 이야기다. 드라마에는 핵심적인 대립구조들이 세 가지 나온다. '가난'과 '부유', '사랑하는 방식', 마지막은 '각자가 가지는 정의로운 신념'에 관한 대립이다.


가난한 주제에 희망차 보이는 게,
가슴에 와닿았어.


극 중에서 '부유한 존재'들의 신념은 사회의 이익이라기보다는 개인 또는 그 소속 집단(정란회)만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들의 행위들은 사회에 기여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익추구를 위한 방법으로써 활용한다. 이를테면 박재상 재단을 설립하여 재능 있는 아이들을 지원하지만, 알고 보면 정치자금을 만들어내기 위한 돈세탁과 비자금 조성 등이 목적이다. 가난한 주인공에게 물질적 지원과 속마음을 내비쳐 감정을 나누지만, 개인의 쾌락을 위한 연극의 일부분으로써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내가 만약 작은 아씨들이라면?

반면 오인경(둘째)의 굳건한 신념은 내게 드라마가 인상 깊은 이유였다. 이 인물의 행위를 보면서 '나는 과연 같은 상황에서 인물과 같이 행위할 수 있었을까?'를 고민했다. 당연히 특별한 위협이 없는 상황이라면 백이면 백 같은 행위를 선택하겠지만, 내게 출처가 불분명한 20억 원이 생긴다면? 내가 또는 가까운 지인이 납치를 당해 살해 위협을 받는다면? 내가 가진 약점이 공개되어 모든 사람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상황이라면? 자칫하면 삶 자체가 송두리 째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서 '오인경'과 같은 행위를 할 수 있을까.


'오인경'은 어떻게 위기 속에서도 '신념'을 지킬 수 있었을까? '신념(信念)'에서 '념(念)'은 생각이라는 뜻을 가진다. 즉, '신념'은 '생각에 대한 믿음'이다. 생각은 개인의 영역이기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내 생각이 사회 통념과 같다거나 사회 전반의 이익으로 치환될 수 있는지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그리고 그 판단을 어떻게 옳다고 믿을 수 있을까?


'신념'의 옳고 그름은 개인이 판단하기보다 사회가 정의하는 것이 맞는 듯하다. 아무리 부유하고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회에서 벗어난 개인은 존재할 수 없다.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연결되어 사회 문화와 공동체적 가치를 만든다. 합의된 문화와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삶이 개인에게는 '신념'이 되어야 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응당해야 하는 일이다. 나아가 생명 존중과 보편적 복지 증진 등 사회 구성원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신념(사회 합의)'을 바꿔나가는 일 또한 필수 불가결하다.


그릇된 '신념'은 나뿐 아니라 타자를 무너뜨리고, 사회 합의를 파괴하는 힘을 가진다. 따라서 개인은 각자가 가지는 '신념'을 사회 합의와 대조하여 꾸준히 점검하고, 차이점을 발견한다면 공론화 등과 같은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사회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물이 고이면 썩듯, '신념' 또한 절대 진리는 될 수 없다.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회 합의는 바뀔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굳건한 신념'은 개인이 사회 합의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에 대해 스스로 돌아보고, 내가 가진 '신념'이 사회의 합의와 일치하는지에 대해 확인하는 과정 속에서 내 '신념'이 옳은지, 그릇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과정이 반복되면 자연스레 '신념'이 굳건해 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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