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기관 담당자와 미팅을 했다. 실무 처리하는 과정에 조언을 받고자 갔었던 자리에서, 무례함을 마주했다. 이전에 한 번 만났었고, 지인들과도 함께 아는 분의 무례함이라 더욱 당황스러웠다. 마음을 다스리고 상황을 비즈니스로 가져가기 위한 나의 노력이 무안하게도 내 대답은 중요치 않은 듯했다. 계속된 공격적인 언행과 무례함.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왜 저한테 계속해서 짜증 난다는 식으로 말씀하십니까?
말을 하자마자 돌아온 대답,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니 몇 살인데? 내랑 함 해보자는 거가?". 무례한 사람과 상황에 나도 무례하게 대하고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분이 풀리지 않아 서로 씩씩거리는 도중 다른 분이 상황을 중재하셨고,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금 가라앉지 않는 화를 속으로 눌렀다. 중재자의 이야기가 끝나고, 자리에 함께 계시는 다른 분들을 생각해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님에도 사과했다.
아무리 그렇게 짜증처럼 느껴졌어도,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
사과는 돌아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돌아오는 훈계. 내가 만만해 보이냐는 둥, 나이 많은 사람에게 그렇게 대하면 안 된다는 둥. 결국 자신의 나이와 권위에 복종해 주길 바랐을테고, 내가 해야 될 대답은 수긍과 사과였을 뿐이었다. 그분의 성향이 원래 그렇다는 것은 알고 있었음에도 화가 났다. 나도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았지만, 재차 사과를 하고 필요했던 업무의 조언을 받았다.
집에 가는 길 내내, 집에 돌아와서도 며칠간은 계속해서 그 일이 생각나며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다 인스타그램에서 마주한 사진 한 장이 나를 위로했다. 계속되는 무례함에 화를 못 참고 반격했고, 그분의 무례에 대해서 설명하려 했다. 무례가 그 사람을 표현했고, 그런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냉정하게 보면 현재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성장의 발판으로 삶는 것뿐이다. 반면교사로 삼고 나는 저렇게 되지 않겠다는 다짐, 유사한 상황에 마주하게 되더라도 유연하게 무례함을 넘길 수 있는 실천 양식을 배우기, 삶의 순간순간에 나의 삶을 돌아보며 정체성과 자존감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기. 그렇게 상대의 무례함을 내 단단함으로 치환하는 것을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