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삶은 없다

by 김재용

'살롱'의 어원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가 프랑스로 전달되면서 17세기에 꽃을 피웠다고 알려졌다. '살롱'은 예절과 말솜씨를 세련되게 하고자 했던 프랑스 왕 앙리 4세가 궁정에서 처음 시작했는데, 궁정에서 귀족에게 전달된 이 살롱 문화는 사랑, 정치이념, 명예, 야심 등의 인간 본성에 관한 문제들을 화젯거리로 즐겨 삼았다고 한다.


미용실은 영어로 '헤어 살롱'이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면서 디자이너 선생님과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대화를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머리는 깔끔히 정리되고 한 달 뒤에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문을 나선다. 이제는 그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의 대화를 즐기러 가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디자이너 선생님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디자이너 선생님은 '나이가 들어가며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 '내가 사는 삶이 올바른 것인지 모르겠다.'라며 고민을 이야기하셨다. 요즘 들어서 점점 더 삶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셨다는데, 문득 '올바른 삶이라는 것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문화는 조언, 충고라는 이름 아래 타인의 삶을 직접 터치한다. 그것도 아주 깊숙하게. 자존감이 높은 사람에게는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깊은 칼날처럼 시릴 수 있다.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조언이라는 칼을 찌르고는 도움을 준 것 마냥 으쓱해지기 쉽다. 온라인에서의 악성 댓글은 사회문제로 인식되지만, 오프라인에서 주고받는 조언과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치부되기 쉽다.


올바른 삶은 없다. 당연히 항상 정답인 것 또한 없다. 만약 절대 진리가 있다면 "세상에 항상 옳은 것은 없다." 정도일까? 우리 삶과 사회가 보다 온전히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관심을 공감과 사랑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학구열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데, 수학이나 영어, 역사 등도 물론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가장 필요한 것은 나의 삶을 돌아보고, 나만의 삶을 살아가는 기준점을 갖도록 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 철학과, 타인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공감과 사랑의 언어로 가득 채우는 방법을 나누는 공동체 교육이지 않을까 싶다.


디자이너 선생님은 타인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려는 사람이고, 타인의 이야기를 열심히 경청하려는 사람이고, 스스로를 성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올바른 삶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충분히 내 기준에서는 누구보다 멋진 삶을 살고 계시다는 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헤어 살롱'에서 인간 본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살롱'의 단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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