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알기는 하지만, 그 관계 속에서 항상 내가 우선이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해야 하는 것. 이성과의 연애에서 그 주인공은 항상 나였다. 나는 어디서나 사랑받았고, 내게 다가오려는 사람이 많았다. 하루는 믿고 따르는 선배가 내게 "너는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구나?"라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선배의 직언은 정확했다.
나는 선물을 할 때, 상대방이 가지는 사소한 필요에 집중한다. 그 필요를 기억하고 있다, 내 시간과 정성으로 바꿔 선물한다. 상대는 선물을 받고는 내게서 사랑을 확인하며 행복해했다. 다시 보면 '나는 섬세한 사람이며, 사랑을 주는 사람이라는 관념'을 선물한 게 아닐까 싶다. 진정으로 상대가 행복해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내 목적을 이루는데 부수적인 결과랄까?
나는 10cm와 윤딴딴 등의 가사 내용을 좋아하는데, 남자의 찌질함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찌질한 데다 이기적이고, 심지어 그렇다는 사실조차 몰랐었다. '찌질한 나'를 제대로 바라보는 데 삼십 년이 걸렸다.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의 행복을 위해 더 나아가 그 사람이 목적이도록 사랑해야겠다 다짐한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지금에도, 이기적인 내 모습이 나오지 않으리라 확신하지 못한다.
엄마, 아빠 같은 사람이랑은 절대 결혼 안 할 거야 :(
결혼하고 보면 엄마, 아빠와 비슷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사람은 대개 사랑을 부모로부터 배우는데, 난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듯하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우리 아버지는 등이 넓은 사람은 아니지만, 마음만은 그 누구보다 넓은 사람임을 확신한다. 넓은 마음에서 넘쳐 흘러나오는 사랑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물론 아버지가 나에게, 내가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 없지만 그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그 사람이 가고 싶어 하는 곳, 그 사람이 보고 싶어 하는 것, 그 사람이 하고 싶어 하는 것, 그 사람이 항상 우선이 되도록 하는 것. 되새기고 노력해서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주었던 사랑을 그와 내 아이에게 가르쳐 주고 싶다. 사랑하는 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