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by 김재용

일상 속에서 행복을 마주할 때가 있다. 비염으로 고생하다 코를 세정하고 누웠는데 양쪽 코로 다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을 때, 아침에 샤워를 하는데 창문으로 스며든 햇살이 물줄기와 만나 무지갯빛으로 춤을 출 때, 함께 사는 강아지가 밥을 싹 다 먹고 내게 와 밥 더 달라고 꼬리 흔들며 앉아 있을 때. 예상치 못한 곳에서 행복을 마주한 그때, 감출 수 없는 미소가 흘러나오고 카메라 필터를 씌운 것 마냥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그 순간이 잠시의 찰나일지도 모르지만, 그 행복을 몇 번 되새김질하면서 하루를 즐겁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행복을 마주하는 것은 단순히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생일이나 기념일에 받는 큰 선물보다도 타인이 나를 생각해서 쓴 작은 손 편지가, 오다가 주웠다는 자그마한 불량식품이 깊은 여운을 남기면서 생각에 잠기게 할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왜 사는 걸까?


많은 사람에게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물어볼 때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위해서라고 답한다. 내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해서, 돈 벌기 위해서, 맛있는 걸 잔뜩 먹기 위해서라고 답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계속된 자기 캐물음의 과정을 거치면 행복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테면 돈을 벌어 무엇을 할 거냐 물으면, 갖고 싶은 걸 산다든지 쾌적한 거주 환경에서 사는 것을 원할 수 있다. 원하는 물건을 사려고 하는 이유나 좋은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다시 캐묻는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행복이라는 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는 일반화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의 이유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답이 행복으로 귀결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보다 중요한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나 또한 행복이라는 것에 정의를 하지 못한다. 단순히 웃음이 난다거나, 기분이 좋은 느낌, 쾌락에 가득 찬 상태 등과 같이 추상적인 것으로는 행복을 정의할 수 없다.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지만,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어떻게 찾는지, 언제 찾을 수 있는지 모른다. 우리 곁에서 멀지 않지만 예상하지 못한 곳에, 상황에, 공간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 마치 행복은 잠과 같은 듯하다. 왜 자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잠을 자야만 한다. 그렇다. 우리는 행복해야만 한다. 그런 존재다.


행복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행복이 내게로 다가왔을 때 제대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문득 마주한 행복에 대충 기뻐하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없다. 미래의 행복보다 현재 다가온 행복을 즐기는 경험이 반복된 사람만이 미래의 행복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행복한 순간을 마주하면 주변 친구들과 함께 나누기.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행복을 만끽하기. 미친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순간의 행복에 음악이나 막춤 추며 행복 더하기. 행복한 순간을 곱씹으며 되새기기. 이처럼 행복을 즐기다 보면 존재의 이유인 행복한 사람이 되어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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