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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Nov 14. 2022

영화 <그 남자, 좋은 간호사>에 좋은 간호사는 없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에이미'는 심장병을 앓고 있지만, 집중치료실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병으로 육체적, 정신적 한계에 다다른 그녀는 공감력 높은 간호사 '찰리'와 함께 일하게 된다. 둘은 병동에서 일하며 끈끈한 우정을 키웠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환자의 연이은 죽음으로 수사가 시작되고 '찰리'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자, '에이미'는 자신의 목숨과 딸들의 안전을 걸고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 2022. NETFLIX. All right reserved.

사실 기반의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은 유사한 상황에 직면한다. '에이미'는 심장병을 갖고 있었지만 건강보험 자격과 유급휴가를 위해 병원에 질병을 숨기고, '찰리'는 9개 병원을 근무하면서 29명의 환자들을 살인했던 것을 숨긴다. 엔딩에서 볼 수 있듯이, '좋은 간호사'로 평가되는 기준은 두 주인공이 상대의 비밀을 처리했던 방식에서 나뉘었다. 단지 그뿐이어야 할까?


'찰리'는 '에이미'가 심장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비밀을 지켜주고 앞으로 건강보험 자격을 획득하는 기간까지 도와주겠다고 했다. 반면 '에이미'는 '찰리'가 연쇄 살인마 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형사들을 도와 '찰리'의 범죄를 조사하는 데 협력하며 사실을 시인하여 진술을 이끌어 낸다.

ⓒ 2022. NETFLIX. All right reserved.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를 돌아봐야 한다. 첫째는 '에이미가 좋은 간호사였을까?'를 돌아봐야 한다. '에이미'는 건강보험 자격 획득, 즉 개인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간호사였다. 평소라면 '에이미'는 병원의 규칙에 어긋날지라도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의료 서비스뿐 아니라 심리 서비스 케어를 환자에게 제공하지만, 그녀는 심근 경증으로 인한 호흡곤란 등의 증세를 보인다. 이는 위급한 상황에서 즉각 대응할 수 없는 컨디션으로 근무했기에 환자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 환자에게 CPR(심폐소생술) 도중 에이미는 제대로 의료 행위를 다하지 못한다. '에이미'는 의학적 지식과 경험을 충분히 가진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졌기에 더더욱 환자의 목숨을 담보 삼아 개인의 이익을 편취해서는 안된다.


둘째는 '찰리의 범죄가 단순히 개인만의 문제였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찰리'는 9개의 병원을 옮겨가면서 29명의 환자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실제 피해자 수는 약 4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파크필드 병원이 그랬듯이, 경찰 조사 과정에서 '찰리'의 이전 근무 병원들은 사건의 정황을 숨기기에 급급하다. 이전 병원에서 함께 일했던 간호사들은 공공연하게 '찰리'의 살인 관련 정황들을 의심하고 있었으며, 이전 병원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를 해고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전 병원에서 좋은 근무평가를 토대로 채용했다는 장면을 통해 연쇄 살인사건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연쇄 살인사건은 이를 묵인했던 다양한 조직과 개인의 문제와 상황이 겹겹이 쌓여 참사로 귀결되었다.

ⓒ 2022. NETFLIX. All right reserved.

셋째는 '관계 중심적 삶'에 대한 돌아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관계 중심적 삶이 기저에 깔려있다.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대표되는 관계 중심의 우리 사회에서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연쇄 살인을 막을 수 있을까? 친밀감을 갖는 존재의 비밀이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면서도 이를 묵인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가령 횡단보도를 빨간불에 건너면 안 된다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다. 하지만 친한 친구가 무단횡단을 했고 친구를 피하기 위해 방향을 바꿔 사고가 나서 운전자가 죽었을 때, 내가 경찰에 가서 사실의 목격자로서 진실되게 증언할 수 있을까? 심지어 블랙박스도 CCTV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면, 진실된 증언할 가능성이 낮을 것이다. 특히 관계 중심의 우리 사회에서는. '찰리'는 동료인 '에이미'를 위해 비밀을 지켰고, '에이미'는 '찰리'의 범죄 사실을 인정하게 했다. 우리 사회의 개인은 '에이미'와 같을 수 있을까?

ⓒ 2022. NETFLIX. All right reserved.

이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사실 기반의 영화는 우리 사회와 개인에게 각자가 가지는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개인이 직업윤리의식을 위반하고, 개인뿐 아니라 조직이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고, 관계 중심적 삶으로 구성된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졌다. 나 또한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항상 '에이미'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찰리'처럼 행동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서 더욱 이 영화는 앞으로 살아갈 삶과 우리 사회에 대한 값진 준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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