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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Apr 04. 2023

위스키 오픈런, 굳이 해야 됩니까?

일종의 하지 않겠다는 자기 다짐입니다.

달리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참여하는 달리기 행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오픈런’이다. 구찌나 샤넬 등과 같은 명품이나 각종 브랜드에서 출시한 한정판 제품들을 사기 위해 사람들은 새벽부터 줄을 선다. ‘오픈런’은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서 구매한다는 뜻인데, 오픈런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경쟁률이 치솟았다. 이제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 줄 서 있거나 구매 대행하는 아르바이트까지 생겨났다. 꼭두새벽부터 기다리는 것은 흔한 풍경이 돼버렸고, 심지어 행사 전날 밤부터 캠핑용 제품을 이용해 선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는 명품이나 한정판 제품뿐 아니라 위스키도 오픈런을 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집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제 집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되어야 했고, 요리사가 집집마다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배달 음식점이 잘될 수밖에 없다. 더불어 파인 다이닝의 필수품인 좋은 술을 찾는 사람도 함께 늘었다. 수입 맥주가 다채로운 향과 독특한 맛으로 인기가 많은 것처럼, 가볍게 한 잔 마시기 좋은 위스키 또한 오크 통 특유의 향과 복합적인 맛이 매력적이다. 위스키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입문용으로 소문난 맥켈란 12년 쉐리 캐스크, 발베니 12년 더블우드 등과 같은 몇몇 제품들은 입고됨과 동시에 그곳에서 사라지는 마술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 Guillermo Latorre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SNS나 유튜브 등에서 맛있다고 소문은 자자하지만, 재고가 없어서 구매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해당 제품에 대한 소유 욕망이 더욱 커진다. 마셔보지 못한 사람들의 소유 욕망이 모여서 더욱 유명세를 낳는다. 마트와 수입사에서는 유명세를 활용하여 오픈런에 참여하라며 대놓고 광고를 했고, 입문용 위스키를 오픈런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새벽부터 술 한 병을 사기 위해서 마트 앞에서 적게는 3시간 많게는 5시간 넘게 기다리며 오픈런을 한다. 오픈런 행사에 적게는 1병만 입고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그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다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러나 위스키의 오픈런은 다른 백화점 명품관이나 브랜드의 한정판 제품과는 다른 차별점이 있는 듯하다. 명품이나 브랜드 한정판 제품은 최초 판매 가격과 리셀 가격의 간극이 매우 크다. 많게는 판매가에 몇 배가 되는 가격을 지불해야지만, 원하는 제품을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화제가 되는 위스키 오픈런에서는 판매가의 가격이 시중 리큐르 샵에서 구입할 수 있는 가격과 몇 배씩이나 차이 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조금 저렴할 뿐이다. 심지어 오픈런하는 위스키들은 한정판이 아니다.

ⓒ Dylan de Jonge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또한 대체품이 많다는 것도 위스키 오픈런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입문자용 위스키가 오픈런 대상인 경우가 많은데, 입문자용 위스키는 유사한 종류와 가격대의 제품들이 많다. 물론 품귀 현상을 보이는 제품의 맛과 향이 완벽히 똑같지는 않겠지만, 적당한 가격과 맛을 타협한다면 오픈런하지 않고도 충분히 위스키를 즐길 수 있다. 물론 나도 맥켈란과 발베니는 마셔보지 못했다. 무척이나 궁금하긴 하다. 오픈런까지 해서 사야 되나 싶다가도, 충분히 욕망하는 이유 또한 납득이 간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과 타인들의 소유 열망이 내 속에서 뒤섞여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 아닌가 싶다.


나는 몇 시간씩이나 줄을 서서 구매하고 싶지 않다. 줄을 서서 멍하니 있지는 않겠지만, 기다리며 웹툰이나 유튜브를 보더라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내 시간이 허비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위스키에 입문한 지 두 달 만에 여덟 병의 위스키를 샀지만, 한 번도 오픈런에 참여한 적은 없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연히 마트에 갔고, 때마침 오픈런하는 날이었고, 줄도 없는 데다 가격도 적당하다면 구매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줄을 서는 시간은 충분히 돈으로 계산할 수 있기 때문에, 줄 서는 시간과 할인 가격을 더한다면 오픈런하는 것이 그리 싼 금액만은 아닐 것이다.

ⓒ SBS News. All right reserved.

오픈런은 뼛속까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넘치는 수요와 바짝 말라버린 공급, 희소성에 따라 폭등하는 가격, 다른 사람의 시간과 인내를 돈으로 팔고 사는 행위 등 정확히 자본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술을 마시는 문화가 전체적으로 바뀌면서 앞으로도 위스키 오픈런이 오랫동안 지속될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성취하고 나면 금세 다른 호기심 거리를 찾기 마련이다. 허니 버터칩과 포켓몬 빵, 버터 맥주 등의 사례를 보며 나는 알고 있다. 결국 다시 맥켈란과 발베니도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이렇게나마 '나는 위스키 오픈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 안에 요동치는 욕망을 잠재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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