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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Apr 13. 2023

'사회복지사의 복지'는 누가 챙겨줍니까?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실로 완벽하다.

'행복한 사회복지사가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 사회복지사들에게는 꽤나 유명한 슬로건이다. 슬로건을 보는 순간, 사회복지사들은 아이언맨, 슈퍼맨, 헐크처럼 히어로가 된다. 쌀 포대 배송뿐만 아니라, 잡초 뽑기, 회의 장소 준비하기, 행사 진행 MC 등 육체적 노동과 더불어 상담 일지 작성, 프로그램 기획, 후원 사업 프로포절 작성 등 정신적 노동에 지칠 때쯤, 저 슬로건을 보면 없던 힘도 솟아나며 사회복지사는 누구나 히어로가 된다.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반복된, 어떻게 보면 뻔한 슬로건을 보고 사회복지사들은 힘을 낸다. 그 이유는 사회복지사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 또한 눈에 명확히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은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러하다. 사회복지사로 노동하는 것은 돈을 버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어떠한 것도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지금보다 조금이나마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함이다. 확실한 것은 돈보다 가치 추구하는 것에 가깝다. 모두가 행복한 사회, 마치 동화나 영화 속에만 있을 것 같은 것도 상상해 본다.


이를 테면, 기후 위기의 시대에 비건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내가 동물성 단백질을 줄이는 만큼 지구의 온도가 떨어지는 것을 직접 느끼지는 못한다. 1년 간 비건을 했기에 지구의 온도가 0.0000001도라도 내려갔을까? 전혀 알 수 없다. 오히려 내가 사용했던 석유, 전기 등의 에너지로 인해 지구의 온도는 올라갔을 가능성이 더 높다. 또한 내가 비건을 시작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비건에 동참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는 관계없이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비건을 지속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억지로 강요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변화를 이끌어 가는 과정은 쉽지 않다. 이따금씩 나를 보고 비건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그제야 가치가 확산되고 있음을 느낀다. 때로는 조금씩 사회가 변화함을 느끼며 뿌듯해하기도 한다.


물론 가치를 추구하면서 불편함이 생길 수 있다. 비건을 시작한 지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에, 나는 점심에만 비건식을 먹는다. 회사에서는 조리가 불가능해서 샐러드 위주로 먹는다. 그러다 보니 겨울에 샐러드 위주의 식단을 먹으면 으슬으슬 추울 때가 많다. 또한 모든 식재료와 마찬가지로 샐러드 채소는 신선함이 중요한데, SSG(쓱) 배송이라고 이마트에서 주문하지만 간혹 샐러드가 품절돼서 배송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샐러드를 여러 개 주문해서 낭비해서는 안된다. 내가 비건을 통해서 추구하려고 하는 것은 기후 위기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내게 비건을 강요한 적 없다. 그저 내가 바라는 사회를 위해, 즉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서 행동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권, 노동, 세대갈등, 혐오, 평등, 지방소멸, 젠더, 차별, 불평등, 공동체 붕괴 등 내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많다. 당연히 이로 인해 생기는 불편함쯤은 감수한다.


한 번에 내가 바라는 이상향처럼 바뀔 수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꾸준함은 사회복지사라는 히어로가 필수로 가져야만 하는 능력치다.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는 모레가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사회복지사들은 꾸준히 노동한다. 만약에 내가 노동한 대가로 매일 변화를 느낄 수 있다면 그 변화를 성취 삼아서 내일의 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겠지만, 변화는 더디고 직접적으로 느끼기가 매우 어렵다.


조금 변화했음을 느끼다가도, 다시 되돌아가는 것을 보고 좌절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내 노력으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 때면, 당장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변화에 대한 이상이, 그저 이상으로만 끝날 것 같아서 두렵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데, 뜻대로 되지 않음에 스트레스는 누누이 쌓이기만 한다. 나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리도 몸과 마음이 썩어 문드러져 가면서까지 이러고 있나 싶을 때가 있다.


이러한 두려움과 스트레스는 나 혼자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소진이 없는 직업은 없다. 하지만 사회복지사의 소진은 다른 직업에 비해 빈도가 잦은 듯하다. 다른 직업들은 금전적인 보상이 소진을 예방하는 절대적 힘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통장에 쌓여가는 돈을 보며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는 돈을 보고 하는 일이 아니다. 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면, 내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사회복지사라고 밝히면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동일하다. "좋은 일 하시네요".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 전문가로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준하는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오직 헌신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헌신보다는 나를 사랑하는 일에 가깝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일상생활에서도, 내가 하는 일에서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내 일과 내 삶을 분리하지 않고, 일치시킬 수 있다. 비건을 예로 들면 낮에는 환경 파괴하는 일을 하다가, 퇴근하고 삶에서는 환경을 지키는 불협화음이 없다. 더군다나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면서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금전적 보상도 따른다. 단순하게 정시에 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과 일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구조다. 사회복지사에게 어쩌면 워라밸은 달성하기 쉬운 목표다.

ⓒ ELena Mozhvilo of Unsplah. All right reserved.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로 협업했던 파트너가 '사회복지사의 복지'에 대해 고민하는 글을 봤다. 사회복지사가 꿈꾸는 사회 변화를 위한 지원과 사회복지사의 노동을 숭고한 일로 생각하는 진심 어린 마음, 사회복지사의 가치에 대해 공감하며 함께 추구하고자 하는 행동. '사회복지사의 복지'는 이미 그와 같이 몸과 마음을 다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미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복지사들의 처우개선과 같은 노력은 병행해야 하지만, 사회복지사들에게는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일과 삶이 일치되어 즐기는 경지에 오른 사회복지사들은 곧 행복한 사회복지사들이다. 이보다 더 좋은 복지란 사회복지사에게 없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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