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모양

양면에 쓰인 단면의 추억

by avg eighty seven


사랑에 대한 기억은 얇고 투명한 기름종이에 써내려간 기록지 같다. 처음 이것을 쓸 당시에 종이는 앞뒤가 구분된 그저 투박한 종이였다. 한 쪽에는 즐겁고 좋았던 기억들이, 그리고 한 쪽에는 슬프고 아팠던 기억들이 적혀 있다. 그래서 만나는 동안 나는 종이의 앞뒤를 살피며 그렇게 그 사람의 어떤 점이 좋기도 했고, 어떤 점이 아쉽기도 했다.


기억에는 향기가 있다. 그 향기가 익숙해 습관처럼 기억이 적힌 종이에 코를 가져다 대곤 한다. 콧등의 기름에 문대져 기억의 종이는 점점 투명한 기름 종이의 모양을 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 종이가 투명해지자 좋았던 기억과 슬펐던 기억들이 마치 한 면의 종이에 써내려간 것처럼 보인다. 어떤 기억은 좋은 기억같기도, 어떤 기억은 슬픈 기억 같기도 하다. 마냥 기쁘기만 한 기억도, 마냥 슬프기만 한 기억도 없다. 그게 어떤 기억이든,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문양 만이 그 때를 상기시킨다.


찢어지지 않는 질긴 종이에 글씨가 공기에 바래져 아무 모양도 없게 될 때, 그래서 문양조차 없는 그저 투명한 종이가 될 때, 다른 기억의 한 페이지가 시작된다. 그래서 기억사전은 얇고 투명한 기름종이가 누적된 모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벚꽃이 피는 4월은 여전히 내게 어떤 문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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