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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Nov 24. 2016

체스키크롬로프를 걷다2

저렴한 맛집을 소개합니다


맘껏 머물고만 싶은 집을 싼값에 얻었다고 해서

마냥  행복해하며 집안에 틀어박혀 있을 수만은 없겠죠

여행자의 신분이란

꾸준히 이동해야 마땅하니까요


에너지 보충을 위해 우선 식당을 찾습니다


고맙게도 그 흔한 미국산 프랜차이즈 상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수교를 하자마자

가장 몫 좋은 곳에 맥도널드와 스타벅스를 심으려 기를 쓰는 미국에 맞서

지역주민과 우두머리가 굳건히 지켜 내려

노력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할 일이었을 겁니다


집 앞에 스타벅스가 생기면

당장은 행복감을 느끼겠지만

지역주민들이 소비한 재화가

그 지역 안으로 돌아가지 않고

저 멀리 미국으로 흘러들어 갈 때

지역경제는 무너집니다


가 이곳에서 쓴 돈의 일부는 

다시 세금으로 돌아가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쓰이겠지요

기분 좋은 일입니다

아쉽게도 먹고 자는 것 외에는

돈을 쓸 일이 그닥 없습니다

관광객들의 지갑을 호시탐탐 노리는

여느 관광지들하고는 너무 다르게

이곳은 너무 착하고 소박하거든요



그들 간의 약속인지 규칙으로 정해진 건지

체스키 크룸로프의 모든 레스토랑은

메뉴판이 밖으로 나와 있습니다



숙소도 내부의 사진이 건물 밖에 붙어있구


주머니 사정과 컨디션을 저울질한 뒤 선택할 수 있으니

합리적인 선택을 할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좋은 문화라 생각됩


만국 공통으로 여행자들은 늘 돈이 없는 건지

가장 싼 곳을 골랐더니

이름부터 여행자의 식당입니다


체코 전통음식을 6천 원 

스테이크를 7천 원에 먹을 수 있는 착한음식점이죠


게다가 점심특선은 4500원!

오늘은 이것으로 결정합니다



16세기에 지어진 이 곳이 처음에 어떤 용도였는지 가늠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아치형 나무로 제작된 출입문과


위로 난 작은 창


무언가를 묶을 수 있는 고리와

물을 나란히 서서 먹을 수 있게 만든 것을 보아하니

이곳은 마구간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갑자기 말똥 냄새가 나는 듯하네요


예수님이 태어나신 경건한 곳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돈 주고도 못할 경험을

마음의 준비도 없이 얼떨결에 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물려받은 것을 그대로,

최소한의 보수만을 한채 살아왔습니다

옛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기보다는

도심에 밀려 개발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지요

유네스코가 700백 년 전의 모습을 지닌 이곳을 1990년대에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후로는

리모델링 하기더욱 까다로워졌습니다

나의 손주의 손주가 방문해도

이곳은 내가 본 것 그대로 일 것이라 생각을 하면 기쁩니다

주민들은 불편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지만요



체코는 1인당 맥주소비량이 세계 최고입니다

음식점마다 주류를 제공하는 바가 저렇게 따로 마련되어 있


이건 여담입니다만

여기 아가씨들은 늘씬하고 예쁩니다

어쩜 저렇게 마로니 인형 같을까... 생각하며 멍하게 쳐다보게 되죠

하지만 그들의 미모는 출산과 동시에

막을 서서히 내리게 되는지

한국의 날씬한 유모차 부대와 비교해 볼 때

미안하지만 다소 거대해 보입니다

저는 그 이유를

끼니때마다 마시는 맥주와 콜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수분을 보충하는 것보다

칼로리 보충에 더 효과적이죠



체스키 크룸로프에서만 나는 대표 맥주

버그입니다


5분 거리에 양조장이 있어

그날 제조한 맥주를 그날 마실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얻을 수 있었죠

사실 저는 쌍화탕이나 맥콜을 첨가한 듯한

맛이 나는 흑맥주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만

이것은 라거의 청량감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진하고 부드러운 데다가

카푸치노의 씁쓸한 끝맛이 일품입니다

바디감도 묵직해서 입안에 오랫동안 여운이 남지요


3000원짜리 치즈 샐러드는

드럽게 짭니다

웨이터를 불러다가

이거 치즈로 만든 소금인가요

아님 소금으로 만든 치즈인가요 라고 묻고 싶었는데

둘러보니 같은 접시를 다른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비웁니다


나머지 요리는 가격 대비 훌륭합니다

체코를 여행하다 보면 넓은 초지마다 포도나무가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대부분은 그냥 먹지 못하는 와인 생산용 포도라죠

기후가 레드와인을 생산하기엔 적절하지 않아

화이트 와인 생산량이 더 많고 질도 좋다... 고

해서 한잔 마셔봤는데

아... 맥주 마실걸...

똑같은 천오백 원인데

양도 적고

맛도 없고

혀끝을 대는 순간 후회가 밀려옵니다





배를 채운 가족의 표정은 이미 이 동네를 다 가졌습니다


13세기에

지금의 체스키 크룸로프를 설계한 이의 마음으로 도시를 들여다봅니다


거리는

우리가 그림책 속에 들어간 건지

그림이 세상 밖으로 튀어나온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아기자기 하고 사랑스럽게




골목길은

마주오는 사람과 눈이 마주칠 수 있을만큼 좁은 폭으로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띠어 길을 걸을때면

한걸음 뒤에 어떤 장면이 나올지 몰라 두근거림을 유발하도록



디테일한 도시의 소품들은 최대한 유쾌하고 발칙하게



모든 지붕은 오랫동안 보아도 눈에 피로가 가지 않을만한 채도로

한 채의 가옥도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조화롭게



그런 그림 안에 우리 집이 있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는 것이 꿈처럼 느껴집니다



이 그림 속에서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틴에이져는 너무 살가워 지고


모두가 바쁜 일도 없는데

저기 뭐 또 다른 게 있나 싶어

그냥 달리고만 싶어 집니다



여기 오시게 된다면요

질이 엄청 좋은 체코 밀로 만든

50 원에 불과한 빵을 드셔 보세요


추위를 날려줄 은근한 핫와인도 한잔 하시고요


되도록 천천히 장난감 가게를 구경하세요

아이 어른 상관없이 마리오네트 구경은 재밌으니까요


2만 5천 원을 내고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 독일로 가는 셔틀을 타보세요

원하는 곳 바로 앞까지 모셔다 드릴 겁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기어이

맥주 1리터를 처리하고 말았죠

이 나라 모든 성인 매일 평균 1리터를 마신다는데

체코와 수교를 맺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평균을 깎아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남은 맥주로 냉장고를 채우고 나니

긴밤따위는 무섭지 않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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