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사상가. 그의 철학은 플라톤과 칸트의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비관주의적 세계관으로 유명하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주로 인간의 의지와 욕망이 고통의 근원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인간 존재의 핵심을 ‘의지’로 보았고, 이 의지가 끊임없는 욕구와 충동에 의해 추동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욕구와 충동은 결코 완전히 만족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인간은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인생은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태어났다면 최대한 빨리 죽는 것이 차선이다'라고 했던 쇼펜하우어. 19세기 서양 철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이 책은 마치 쇼펜하우어의 에세이처럼 느껴졌다.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썼던 일기와 생전에 출판되었던 8권의 저서, 괴테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과 주고받았던 편지에서 삶에 대한 정곡을 찌르는 조언들을 모아 만든 책으로 읽는 내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반기를 들고 싶은 마음도 느끼며 천천히 그의 철학에 빠져들게 되었다.
다수는 그저 많은 숫자일 뿐, 많다고 정의가 되는 건 아니다. 적음을 무능력하다는 편견으로 뒤집어씌우는 것에 반대한다. 윽박질러도 따라가지 않겠다. 그것이 ‘도덕!’이라고 외쳐도 듣지 않겠다. 여기가 내 한계라고 한다면, 한계라는 사물을 결정하는 건 오직 나의 인식뿐이라고 가르쳐 줄 테다.
인생에는 진리가 없다. 오히려 오류와 허위가 진실로 둔갑하고 그것이 진리인 듯 과장된 것들이 많다. 다수가 옳다고 해도 그것이 정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쇼펜하우어는 이 세상에 나 이상의 존재는 없다고 했다. 물론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체험해 나가는 것일 뿐이고, 모든 결정은 오직 자신이 한다고 말한다.
행복은 수단을 통해 달성되지 않는다. 어떤 목표를 향해 의지의 실천을 했을 때 길의 중간에서 우연찮게 얻은 물 한 모금 같은 것이다. 깃발이 꽂혀 있는 종점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없다.
행복을 손에 넣고 싶다면 인생 목표가 곧 행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행복은 수단을 통해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 겪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우리는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을 하면서 타인도 함께 행복해지길 원하지만 쇼펜하우어는 그것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했다. 개인의 야심을 채우기 위한 지극히 사적인 노력이라면서. 타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 그 이면에 내가 먼저, 내가 가장 행복하길 원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과 고뇌와 절망에서 가장 빨리 위로받는 방법은 나보다 더 비참한 자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던 평화로운 양 떼가 동료의 잔혹한 죽음을 목격하면서 자신의 생애에 감사하고, 앞으로의 삶에 연연하게 되는 정신의 변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우리도 양떼와 같은 운명임을 망각해서는 곤란하다.
가장 극혐하는 부류 중 하나가 타인의 고통과 나의 행복을 비교하는 사람들이었다. 쇼펜하우어는 불행과 고뇌와 절망에서 가장 빨리 위로받는 방법이 더 비참한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비슷한 연세의 연예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우리 아버지의 건강을 떠올렸던 바로 어제 일이 떠올랐다.
우리 아버지는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 건강관리를 더 잘 해주시길 바라는 마음. 나도 양떼와 같은 처지였다는 걸 부인할 수가 없었다.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삶은 기껏해야 두 종류뿐이다. 권태에 시달리든지,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다. 권태도 반복되다 보면 고통이 되고, 잦은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무감각한 권태가 된다. 어차피 인간은 권태로운 존재다. 고통과 권태에 대한 두려움은 믿음이 약해졌다는 신호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의지밖에 없다. 인생이 두려운 까닭은 나의 의지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고, 사람이 두려운 까닭은 그의 의지가 나를 지배하게 되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고민이 없었던 때가 있었나? 떠올려보면 구체적인 내용들은 기억나지 않아도 마냥 편안하게만 살았던 적은 없었다. 아무리 낙천적인 성격이었어도 그 안에 이런저런 고민은 항상 있었다.
나에 대한 자신감이 차오를 때에는 거리낄 것이 없었고, 한없이 작아졌을 때에는 아주 사소한 일에도 움츠러들었었다. 두려움은 믿음이 약해졌다는 신호라는 말이 너무나 와닿았다.
쇼펜하우어는 비관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문제를 돌파하고 내 인생을 찾을 수 있도록 생각거리들을 던져주었다.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쓴소리를 해주는 인생 선배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모든 이야기에 동의는 하지 못해도 그의 조언들을 읽으며 마음이 단단해짐을 느꼈다.
비극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 그는 인생이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라고 했다. 끝없는 욕구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며, 부족함이 채워지면 또 다른 부재를 느끼는 사람들. 쇼펜하우어가 비관적인 게 아니라 사실 누구보다 정상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