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로워서? 남들이 다 하니까? 본능적으로? 어떤 이유든 사람의 개인사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맞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니, 나는 상경을 한 후, 주말에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아간 뒤 좁은 6평의 집에서 '언제 돈을 모아서 집을 사지.', 혹은 '이렇게 살다가 독거노인으로 살다 죽겠군.', '결혼이 목표인 인생은 아니니까.'라는 생각들을 많이 한 시절들이 있었다. 그럼 난 결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나 지금의 예랑이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간 인생사가 되었다.
매스컴에서의 2030 결혼의 조건은 다들 금전적인 부분이라고 여기고 있다. 나 또한 그랬다. 서울에 온전한 내 집 하나 없는데, 결혼? 자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1인 가구로서의 삶을 5년 간 지내보니 꽤나 나 하나 먹여 살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결혼식을 앞에 두고 있는 예비 신부의 입장에서 결혼의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온전히 '서울', 혹은 서울과 가까운 입지의 '수도권' 내에서 자신의 힘만으로 자가를 소유한 2030 세대가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히려 지금 정권의 흐름으로는 결혼을 생각하는 2030 세대들, '예비 신혼부부' 또는 '신혼부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는 점을 봤을 때 1인 가구의 삶보다 2인 가구의 삶이 '우리 집'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혼의 조건으로는 '집'을 소유한 순간이 아니고, 경제적으로 부를 이룬 후가 아닌. 지금 나와 함께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조건이라 생각이 든다.
내가 '아, 오빠랑 결혼해도 괜찮겠다.'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처음엔 그냥 3년 뒤쯤 결혼하지 않을까? 35살쯤에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는데, 어느 날 내가 오빠 차를 몰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다가 가벽을 박아버리고, 가벽 손상&차 앞 범퍼에 큰 손상을 입혀버렸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내가 낸 첫 차 사고였다. 오빠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안 다쳤어? 괜찮아?'라며 나의 안부와 안전을 먼저 챙겨주었고, 계속해서 미안해하는 나의 마음을 다스르기 위해 '괜찮아, 사고 낼 수도 있지. 돈이 얼마가 나오든지 간에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가장 쉬운 일이야.'라고 오히려 나를 위해 위로해 줬다. 오빠는 보험사에서 최대 30만 원까지 한도가 나오는 것을 알고 있어서 1백~1천만 원 단위와 같은 큰 비용이 안 나올 것을 알고 나를 위로했다고 이후에 말해줬지만 (ㅋㅋ) 그 당시에 나는 '이 사람이라면, 내가 평생을 함께 살아도 든든한 동반자가 될 수 있겠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 밖에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 늘 나의 안부를 묻고, 내가 집에 잘 들어오는지 체크해 주고, 맛있는 게 있으면 나를 먼저 챙겨주는 사소한 모습에서 '가족'이 되는 생각을 심을 수 있었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가족이 된다는 것은 아주 큰 일이면서도 나의 인생의 소소한 부분에 빼곡히 채워지는 일상 같은 일들이었다.
나는 자기계발에 미쳐있던 사람이었고, 시간을 분초로 쪼개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24시간 중 4시간의 수면 시간을 제외하고 일하고, 책 읽고, 운동하고, 그림 그리고, 글을 쓰며 본업 외 부업 4가지를 매일 해결해 나가는 사람이었다. 지금 보니, 요즘 20대들도 나의 20대 시절과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며 매스컴에서 종종 보긴 했는데, 그 시절의 나는 바쁘게 살고 있는 나의 빈틈없는 삶아 매료되었고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서 자존감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그게 정답이고,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을 탓하는 시야가 좁은 사람이었다.
그러다 굉장히 평화로워 보이고, 평온함을 추구하는 오빠를 만나게 되면서 나의 시야는 점점 넓어져만 갔다. 내가 조금 더 고생해서 푼돈이라도 아끼는 나의 라이프 스타일과 편리함과 시간을 벌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오빠의 라이프 스타일은 정반대였다. 처음엔 오빠가 답답하고 내가 '정답'이다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늘어날수록 오빠가 선택하는 순간들의 편리함에 내가 매료되고 있었다. 그리고 분초사회로 살아가는 나의 삶에 숨통을 불어넣어주었다. 내가 변해가고 있었다.
변한 나의 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로워지고, 착해졌다는 소리를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한다. 늘 바쁘고 쫓기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은 예민하고, 조금은 이기적으로 계산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제는 내 분위기에서 '여유'라는 단어가 보이기 시작했다. 경제적이든, 심리적인 든 나는 오빠를 만나면서 나의 변한 모습이 만족스러웠다.
서로를 항상 우선시 여기는 사람을 만나는 것.
결혼을 위해서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만나다 보니 결혼을 생각하게 되는 것.
그 사람을 만나면서 변해가는 내 모습이 만족스러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