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항, 여성, 노동, 예술의 얼굴들
올해 제 71회 칸영화제. 82명의 여성 영화인 중 한 명으로 레드카펫에 선 아녜스 바르다의 모습은 유독 인상적이었다. 1928년생, 자그마치 9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빛나고 총명해 보였다. '누벨바그의 거장'이라는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이, 사진작가로 데뷔해 장편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그녀의 영화 경력은 이미 60년을 훌쩍 넘었다. 흘러간 시간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여전히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라는 칸영화제에서 세계 대표 여성 감독으로 당당히 서 있었다.
처음 본 바르다의 영화는 대학원생 시절 '아트하우스 영화'와 관련한 발제를 맡으면서 보게 된 <방랑자>(1985)였다. 영화이론에서 60-70년대 주요하게 다뤄 온 이른바 '거대담론', 즉 정신분석, 기호학, 비판이론 등의 방법론을 비판하고, 인간의 지각, 인지적 작용, 서사영화 형식 등을 옹호하는 데이비드 보드웰의 인지주의와 관련한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트하우스' 영화 또는 '모더니즘' 영화라고 하는 것들이 사실은 몇 가지 법칙으로 다 설명될 수 있다면서, 그중 하나의 예로 <방랑자>를 들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방랑자로 살다 죽음을 맞이하는 한 젊은 여성의 모습과 그녀를 기억하는 주변인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지는데, 보드웰은 극영화임에도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을 하는 배우들의 시선이 아트하우스 영화에서 자주 나타난다는 식으로, 영화를 매우 단순화시킨다. 논의가 그뿐만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바르다의 '첫' 영화를 발제를 통해서 만나 이내 스쳐 보냈다.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었고, 6월에 극장 개봉해 아직까지도 적은 수나마 상영되고 있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은 나로 하여금 다시 바르다를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녀의 영화를 모두 본 것은 아니지만 몇 편의 영화를 기억하고 다시 보면서 무엇이 그녀의 영화를 아름답게 만드나, 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녜스 바르다와 그녀의 다른 영화를 모르더라도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그 자체로 유쾌하고 재밌는 영화다. 50년 이상의 나이차가 나는 두 남녀의 '예술적 동행'. 90세가 되어도 여전히 예술적 아이디어가 샘솟은 바르다와 한사코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사진작가 JR의 콜라보레이션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남다른 케미를 보여준다.
하지만, 한 가지 더 보탤 수 있다면 바르다가 사랑하는 얼굴은 결국, 저항 혹은 신념의 얼굴, 그리고 그것을 품고 있는 여성, 노동, 예술의 얼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바르다는 저항하는 이들을, 신념을 가진 이들을 사랑한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서 바르다와 JR은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여러 얼굴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 안에는 수많은 얼굴이 있지만, 탄광 마을에 홀로 살고 있는 여성의 얼굴은 단연 아름답다. 탄광이 폐쇄되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와중에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하는 외로운 여인의 저항. 그녀의 사연이 영화에서 자세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집 앞에 큼지막하게 프린트되어 있는 자신의 얼굴을 본 여성의 붉어진 눈시울은 그간의 투쟁의 외로움을 보여준다.
<순간의 이미지(UNE MINUTE POUR UNE IMAGE)>(1983)는 일련의 사진에 대한 바르다의 주석을 내레이션으로 담은 단편이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알제리전 당시 병사가 찍은 한 늙은 알제리 여성의 사진이다. 바르다는 이 사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단다.
"이 여인과 그 밖의 주민들은 당시 시행됐던 주민등록제에 따라 의무적으로 신분증 사진을 찍어야 했다. 적군 병사 앞에서 여인은 어쩔 수 없이 얼굴 가리개를 벗어야 했다. 그리고 아주 저항적인 자세로 거리낌 없이 적대감을 표시한다. 헝클어진 머리가 솟구치는 비애감을 드러내며 완강하게 찡그린 표정으로 분노에 찬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다. 지시는 따를지언정 결코 승복하지 않을 태도다. 마음에 와 닿는 얼굴이다. 비열한 군사 임무 속에서도 촬영자는 당시 상황의 한가닥 진실을 포착해낸다."
바르다는 저항의 얼굴을 알아본다. 그 얼굴은 투쟁의 선두에 서 있는 어떤 특정 인물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대지에 발을 딛고 있는, 소극적인 저항밖에 할 수 없을지라도 결코 "승복하지 않"는 평범한 저항, 평범한 신념의 얼굴이다. 바르다는 그런 얼굴을 사랑한다. 영화 <방랑자>의 젊은 방랑자의 얼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삶의 무너짐을 감지하면서도 기어코 저항하는 자의 얼굴.
이런 얼굴에는 또한 노동자와 여성, 예술가가 있다. 농부와 공장 노동자 등 한 명의, 또는 여럿의 노동자를 담은 흑백의 사진은 노동의 신성함과 노동을 통한 연대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예술을 일상적인 삶이나 노동과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노동의 현장 한복판에서도 '좋은 것'으로서의 예술을 인정하는 어우러짐이 부럽기도, 뭉클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장면은 항만 노동자들의 부인들을 인터뷰하고 촬영하는 장면일 것이다. 인터뷰에서 "남편의 뒤에서"라고 말하는 여성에게 왜 "옆이 아니고 뒤라고 말하냐"고 딴지를 거는 바르다는, 그들이 단지 누군가의 아내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으로 충분하고 온전할 수 있음을 컨테이너 박스 위에 표현한다. 본인의 심장 부분에 올라가 앉은 여성들의 표정은 충만하고 자유롭다.
영화의 마지막, 바르다는 누벨바그 시대를 함께했던 장-뤽 고다르를 만나러 JR과 함께 열차에 오른다. 하지만 웬일인지 고다르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그들의 만남은 실패로 돌아간다. 오랜 시간 예술을 사랑했던, 수많은 영화 실험을 해왔던 고다르의 어떤 '신념'을 사랑하기에 바르다는 문 앞에서 눈물짓지만 이내 단념하고 돌아서는 것은 아니었을까.
고다르와의 만남의 실패처럼, 예술은 기대를 벗어나고 우연적이며, 바닷가 바위에 담겼다 이내 바닷물에 쓸려가 버린 소년의 옆모습처럼 외롭고 순간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게 더욱 아련하고 아름다운 것으로서의 예술을, 바르다는 사랑하는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동료 예술가와의 작업. 어쩌면 반세기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바르다가 JR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저러한 핀잔에도 끝끝내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신념'의 예술가, 이미지로 함께 삶을 담아내고자 하는 동료 예술가와의 연대를 무엇보다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다르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그가 마침내 선글라스를 벗더라도 바르다는 이제 침침한 눈 때문에 그의 얼굴을 정확히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정확히 볼 수 없어도 바르다는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얼굴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 얼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