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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Nov 24. 2018

열정적인 퍼포머의 힘은 강하다 -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열기가 대단하다. 즐겨 듣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나 '한예리의 영화음악'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개봉 즈음부터 이 영화와 음악 이야기로 들떠 있었고, 관객수가 역주행하고 있는 요즘에는 음악이나 영화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왕왕 퀸 노래가 흘러나온다. 평단의 평가가 엇갈리고 퀸 마니아 사이에서 이야기에 대한 불만도 있다곤 하나, 전 세계 흥행 수익은 이와는 상관없이 일반 대중의 선택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국내 흥행은 더 대단한데, 불과 2년 전 열풍을 일으켰던 <라라랜드>의 관객수를 최근 넘어섰고, 퀸의 고향인 영국에 이어 전 세계 흥행 수익 2위가 한국이라고 한다. ('싱어롱' 관람 때문이려나)




고등학생 2, 3학년 무렵 홍대 '드럭'은 일종의 해방구였다. 홍대 클럽이나 락 페스티벌에서 슬램이란 걸 한답시고 겁도 없이 사람들 틈바구니로 몸을 던지기도 했는데 당시엔 그게 묘한 쾌감을 줬다. 주요 장르는 펑크락이었는데, 크라잉넛은 이미 ‘거물급’이었고 레이지본은 그 다음급이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던 밴드였다. 음악을 잘 알지는 못했으니 음악에 엄청 심취했다기보다는 그 해방의 느낌이, 일탈의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막연히 드럼이 배우고 싶었고 수능을 끝내고 엄마의 소개로 교회 아는 분께 드럼을 조금 배우다가, 대학에 입학해서는 아예 밴드 동아리에 들어갔다.


뭣도 몰랐지만 밴드에서 드럼을 쳤고 락페나 공연도 다녔다. 심지어 독일 어학연수 시절에는 무슨 용기였는지 텐트까지 들고 비를 쫄딱 맞으면서, 밤낮없이 맥주병을 들고 돌아다니는 게르만 백인들 사이에서 락페를 즐겼던 걸 보면, 내게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긴 했던 것 같다.


어느 때는 숙제하듯 동아리 기수를 채우기 위해 하는 것처럼 음악을 하기도 했지만, 어찌 됐건 그때 선배들의 권유로 이런저런 외국 음악을 많이 들었다. 미스터빅,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라디오 헤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메탈리카, 핑크, 포 논 블론즈, 익스트림, 에어로스미스...... 음악 덕후 선배들 사이에서 나는 모르는 밴드나 음악이 많은 풋내기였고, 그들만큼 열정이 큰 것 같지도 않아서 뭔가 위축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새로이 알게 되는 음악들이 좋았다. 그리고 그때 좋아했던 명곡들은 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다시 들으면 대부분 여전히 좋고, 알 수 없는 에너지를 받기도 한다.


그 시간 속에서 퀸이라는 밴드는 ‘수학의 정석’, ‘성문기본영어’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 유명하고 당연히 훌륭하다고 인정되지만 자주 꺼내보게 되지는 않는 그런 음악. 밴드 커버곡으로조차 생각해 보지 않은 음악. 그래도 두 시간 동안 흘러나오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의 퀸의 노래가 다 익숙하고 가사도 많이 알겠는 걸 보면 그때부터 줄곧 여기저기서 참 많이도 듣긴 했나 보다, 싶었다.



퀸의 음악을 오랜만에 꺼내 들고서는, 퀸의 이야기, 노랫말과 버무려 듣고, 싱크로율이 실로 대단한 무대를 보고 있자니, '수학의 정석'이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여러 번 전율했고 따라 부르고 싶어서 작게 흥얼거렸고, 슬쩍슬쩍 발을 굴렀다. 그래도 약간 못 참겠다는 느낌이어서, 다음번에 가사를 모조리 외워 싱어롱 상영관에서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근데 막상 그러자니 뭔가 쑥스러울 것 같기도 하고.)


사실상 이 영화는 이야기로서 그렇게 훌륭하다고 볼 수 없다. 퀸의 결성 시기부터 각각의 노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선형적으로 보여주는 심심한 구성인 데다가, 프레디(라미 말렉)가 연인이었던 메리(루시 보인턴)나 매니저 폴(엘렌 리치)과 맺게 되는 관계와 상황은 진부하고 설명도 부족하다. 또 영화를 좀 더 극적으로 (혹은 대중적으로) 만들기 위해 실제 사실을 변형하기도, 꾸며내기도 한다. 프레디 머큐리가 자신의 병을 알게 된 시점은 '라이브 에이드' 공연 이전이 아닐뿐더러, 영화에도 나오듯이 모두가 소위 말하는 '엘리트'였던 그들이 영화 속에서 "부적응자를 위해 연주하는 부적응자"가 되는 건 관객의 심정적 공감을 겨냥한 일종의 '영화적 과장'이나 '위선'일 수 있다. 부적응자, 이민자, 성소수자 등등의 설정은 영화에 양념이 되긴 해도 별다른 의미가 없고 오히려 구태의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히려 이 영화의 힘은, 각각의 음악이 탄생하는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장면들, 유명한 곡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에 남는 피아노 반주 구간이나 기타 리프들을 연주하는 순간, 그리고 프레디 머큐리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 브라이언 메이(귈림 리), 로저 테일러(벤 하디), 존 디콘(조셉 마젤로)이 함께 만들어내는 시너지에 있었다. (프레디 머큐리도 그렇지만 다른 세 멤버들의 연기와 싱크로율도 정말 대단했다고 본다.)


돌고래나 낼 법한 말도 안 되는 고음 코러스의 도움으로 희대의 명곡 <보헤미안 랩소디>를 만들어가는 과정, 관객과의 호흡을 고민하다가 떠오른 <We Will Rock You>의 그 유명한 도입부, <Another One Bites the Dust>의 경쾌하게 둥둥대는 베이스 리프.  조금 오그라들긴 하지만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앞두고 프레디가 다른 멤버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장면. 그렇게 어마어마한 세계적 명성을 얻고서도 계속 새롭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내는 힘, 내외부의 갈등에도 어찌 됐건 오래도록 유지되는 밴드 자체가 주는 감동.


프레디가 한 때 사랑했던 메리를 위해 쓴 노래 <Love of My Life>도 아름답지만, 그보다 <We Will Rock You>를 만드는 영화 속 멤버들의 열정 넘치는 얼굴을 보고 나니 따라서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지 않고는 못 배기겠는 마음이었다. 그러니까 내게는 이들의 개인사보다는, 음악에 대한 무한한 열정이 이들의 음악과 노랫말을 더욱 마음에 박히게 했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이렇게도 열풍인 것은 퀸을 잘 아는 세대에게는 향수를 느끼게 하고, 퀸을 조금은 아는 혹은 잘 모르는, 심지어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어필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그건 나처럼 퀸을 알긴 하지만 깊이 알지는 못하는 사람에게 다시 새롭게 퀸의 음악을 만나게 하고, 퀸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했던 퀸의 음악이 주는 감동이 있기 때문이리라. 또한 음악에 대해선 '완벽'했지만 인간으로서는 불완전했던 이들의 삶이 아름답고, 끝내 갈등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을 멤버들의 줄타기도 그 자체로 아름답기 때문에.



예술에 대한 순수와 열정에 빚지는, 그리고 그걸 훌륭하게 재현해내는 배우에 빚지는 영화의 힘은 생각보다 세다. 이야기가 헐겁고 단조로워도, 그걸 커버할 수 있을 만큼, <보페미안 랩소디>에서 퀸의 음악은 빛나고 또 강하다.


음악의 힘, 연주의 힘, 퍼포머의 힘.  

(아.... 음악은 역시, 롹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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