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se Mar 16. 2020

쓸데없이, 하늘이 너무 맑다

- 마스크도 못 벗는데... 놀러도 못 가는데...

지하철이 압구정에서 옥수로 향하면 '지상'철이 된다. 목적지인 충무로까지 유일하게 바깥을 볼 수 있는 구간이다. 컴컴하던 주위가 스르륵 환해지면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다. "거의 다 왔네."


휴대폰이나 잡지를 보며, 피곤하면 눈을 감고 그냥 지나쳐버리기도 하지만, 의식적으로라도 그때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려고 한다. 한강의 색깔도, 강변에 죽 늘어선 건물의 느낌도 날씨에 따라 매일매일이 다르다. 30초는 되려나? 그 짧은 시간이 아침부터 분주한 뇌와 마음을 잠시나마 내려놓게 한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도 그랬다. 명절에 큰아버지댁에 갈 때면 지하철 1호선을 탔는데, 서울을 벗어나 어느 지점 즈음부터 열차는 지상으로 달렸다. 그때도 창문으로 바깥을 보는 걸 좋아해서 몸을 돌려 의자에 무릎을 대고 한참 바깥을 바라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하늘이 얼마나 맑은지!


위축되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짓말처럼 하늘이 청량하다. 거의 빠지지 않고 마스크를 쓰고 있는 지하철 안 사람들과 이 쨍하게 맑은 풍경의 대비가 '초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삼한사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겨울이면 춥거나 혹은 미세먼지거나 둘 중 하나라며, 우리에게 온화하면서 맑은 날씨는 한꺼번에 주어지지 않느냐며 한탄하던 건, 귀여운 말장난이었다. 요즘 계속 이어지는 맑은 공기와 따듯한 봄기운에도 봄나들이는 커녕 마스크도 벗지 못하는 이 '비극' 앞에서 말이다.


뉴스에서, 방송에서, 이 사태를 이겨내려 고군분투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크고 작은 손길을 보며 순간순간 뭉클해진다. 기초수급자인 사람들이 돈을 모아 기부를 하고,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유재석은 대구 근무를 자원한 의료진과 인터뷰를 하다 펑펑 울었다. 의연하게 헤쳐나가는 사람들과 그 의연함 이면을 알아보고 응원하는 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저릿하다.


다른 한 편으론 확진자의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고 인터넷 상에서 특정인과 집단을 무섭도록 욕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거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감염에 대한 공포와 이 상황을 끝내기 위한 모든 조치 앞에서는, 평소라면 지켜졌을 어떤 가치들도 쉽게 무시되는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 상황도, 사람들의 마음도 더 악화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뭐라도 하고 싶어 구호단체에 작은 기부를 했고, 카카오톡 기브티콘 구입으로 마음을 모았다.(https://e.kakao.com/t/give-ticon-comforting-words-we-need)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이거라도 한다.


이 시기가 하루 빨리 지혜롭게 잘 넘겨지기를, 마스크를 벗고도 이 쨍한 하늘을 맘껏 바라볼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 2시간X365일X30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