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스크도 못 벗는데... 놀러도 못 가는데...
지하철이 압구정에서 옥수로 향하면 '지상'철이 된다. 목적지인 충무로까지 유일하게 바깥을 볼 수 있는 구간이다. 컴컴하던 주위가 스르륵 환해지면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다. "거의 다 왔네."
휴대폰이나 잡지를 보며, 피곤하면 눈을 감고 그냥 지나쳐버리기도 하지만, 의식적으로라도 그때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려고 한다. 한강의 색깔도, 강변에 죽 늘어선 건물의 느낌도 날씨에 따라 매일매일이 다르다. 30초는 되려나? 그 짧은 시간이 아침부터 분주한 뇌와 마음을 잠시나마 내려놓게 한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도 그랬다. 명절에 큰아버지댁에 갈 때면 지하철 1호선을 탔는데, 서울을 벗어나 어느 지점 즈음부터 열차는 지상으로 달렸다. 그때도 창문으로 바깥을 보는 걸 좋아해서 몸을 돌려 의자에 무릎을 대고 한참 바깥을 바라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위축되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짓말처럼 하늘이 청량하다. 거의 빠지지 않고 마스크를 쓰고 있는 지하철 안 사람들과 이 쨍하게 맑은 풍경의 대비가 '초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삼한사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겨울이면 춥거나 혹은 미세먼지거나 둘 중 하나라며, 우리에게 온화하면서 맑은 날씨는 한꺼번에 주어지지 않느냐며 한탄하던 건, 귀여운 말장난이었다. 요즘 계속 이어지는 맑은 공기와 따듯한 봄기운에도 봄나들이는 커녕 마스크도 벗지 못하는 이 '비극' 앞에서 말이다.
뉴스에서, 방송에서, 이 사태를 이겨내려 고군분투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크고 작은 손길을 보며 순간순간 뭉클해진다. 기초수급자인 사람들이 돈을 모아 기부를 하고,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유재석은 대구 근무를 자원한 의료진과 인터뷰를 하다 펑펑 울었다. 의연하게 헤쳐나가는 사람들과 그 의연함 이면을 알아보고 응원하는 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저릿하다.
다른 한 편으론 확진자의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고 인터넷 상에서 특정인과 집단을 무섭도록 욕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거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감염에 대한 공포와 이 상황을 끝내기 위한 모든 조치 앞에서는, 평소라면 지켜졌을 어떤 가치들도 쉽게 무시되는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 상황도, 사람들의 마음도 더 악화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뭐라도 하고 싶어 구호단체에 작은 기부를 했고, 카카오톡 기브티콘 구입으로 마음을 모았다.(https://e.kakao.com/t/give-ticon-comforting-words-we-need)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이거라도 한다.
이 시기가 하루 빨리 지혜롭게 잘 넘겨지기를, 마스크를 벗고도 이 쨍한 하늘을 맘껏 바라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