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수유를 하고 아기를 다시 재우던 중이었다. 아기를 안고 자장가를 부르고 있는데 갑자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오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단유 마사지를 받고 온 날이었다.
갓난아이에겐 모유나 분유가 유일한 먹거리이자 영양분인 터라, 이유식 시작하기 전까지 6개월은 분유수유와 함께 모유수유를 할 생각이었다. 힘들었지만 아기가 젖을 물고 빠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그 편안한 모습에 덩달아 내 마음도 고요해지는 게 좋았다.
그런데.
제왕절개 출산 후 몸에 소양증이 심하게 오면서 하반신 피부가 오돌토돌 물집처럼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병원과 조리원에서 가려움증으로 잠 못 드는 며칠을 보냈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피부과에 갔고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결국 일주일 정도 약을 먹게 되어 총 열흘 정도 모유수유를 끊게 되었다. 서툴게 초유를 며칠 먹이고 난 뒤였다. 모유량을 유지하기 위해 유축을 하고 아까운 모유를 열흘 정도 버렸는데, 아무래도 이때 모유가 많이 줄은 것 같다. 아니 본격적으로 모유가 나오려고 할 때 수유를 중단했으니, 원래 모유가 적었는지 줄었는지 잘은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먼저 살아야 아기도 볼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약을 먹고 바르고 몸이 나아지니 아기도 더 예뻤고, 열흘 정도 지나서 다시 수유를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이후 모유량은 드라마틱하게 늘지 않았다. 그래도 매번 모유+분유 혼합수유를 했고, 양이 적어도 이대로 6개월까지는 유지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분유 거부 사태. 아기가 분유를 안 먹기 시작했다. 모유만 겨우 먹고 조금만 배가 부르면 젖병을 거부하는 것이다. 수유 패턴은 엉망이 되었고 덩달아 내 마음도 엉망이 되었다. 도대체 아기가 먹고는 있는 건지 모유량을 보건대 완모는 불가능인데 젖병을 계속 안 물면 어떡하지 등등. 예측할 수 없는 시간들을 한 달 남짓 보내고 나니 수유하는 게 너무 힘들었고, 아이도 나도 고생하는 사이, 단유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때 주구장창 모유수유만 했으면 완모의 길로 갈 수도 있다는 말을 나중에 듣기도 했는데, 그때는 이 모유량으로 완모는 불가능이라고 생각했고, 사실 모유만 먹인다는 건 미처 생각을 안 해본 일이었다.
그렇게 결국 단유를 하게 됐다. 6개월보다 두 달이나 빠른 4개월 만에. 처음부터 모유량이 많았다면 젖병을 거부하는 아이의 뜻대로 완모의 길을 갔을까 하는 생각, 다시 모유랑 분유를 같이 먹여볼까, 그러다 또다시 분유 거부 사태가 오면 어쩌지.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하는 사이, 아이는 분유 쪽으로 적응해 갔고 모유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허할 줄은 몰랐다. 단유하면 상실감이 꽤 크게 온다는 말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유를 만끽한다고도 하던데, 나의 경우는 전자였다.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수유를 짧게 끝내게 된 탓일까 그 섭섭함이, 허전함이 생각보다 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젖을 물리고 싶은 마음인데, 지금 돌이키면 혼란스러워할 아기, 다시 도돌이표가 될 상황에 아찔해져 마음을 다잡곤 했다.
더 이상 갈팡질팡 하면 안 되겠어서 상담과 마사지를 받으러 아이통곡을 찾았다. 결론은, 이미 모유량이 많이 줄었고 이제서 양을 늘리기는 어렵다고. 아기가 공갈로 물다가 모유도, 분유도 안 먹게 될 수 있다고, 단유를 하는 게 맞다는 것이 진단이었다.
그렇게 단유 마사지를 받고 돌아온 날, 이렇게도 마음이 서운할 줄이야. 새벽에 아이를 안고 주룩주룩 주룩주룩 울어버렸다.
인생이란 게 왜 다 이모양일까. 원하는대로 좀 되어주면 안 되나. 계획한대로 후회가 남지 않을만큼, 그렇게 여건이 갖춰질 순 없는건가. 왜 꼭 두 가지 중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 건가. 미리 조금 더 고민하고 공부했다면 좀 달랐을까. 내 마음이 이럴 줄 왜 몰랐을까. 수만 가지 생각들.
어쩌면 육아라는 게 아이가 나로부터 독립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아이로부터 독립해 가는 과정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 생각에 또 마음이 아렸다.
육아를 하며 인생을 다시 배운다. 나도, 아기도 이 시기를 잘 넘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때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다. 반갑지 않은 손님, 우울증이 찾아온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