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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Jul 09. 2022

그 와중에도 아기는 하루하루 자라고 있었다


집에서 남편 직장까지는 1시간 반 거리였다. 아침 7시 반에 집을 나서 저녁에 곧바로 집에 와도 7시 반, 8시였다. 12시간을 꼬박 혼자 아이를 돌봤다. 계절은 겨울로 진입하고 코로나는 기승이었다.


육아휴직을 시작하며, 잘 해낼 거라 생각했다. 힘들긴 하겠지만 남편이랑 둘이서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며, 정부에서 지원하는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3주정도 이용하면 이후에 양가 부모님의 도움은 받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었다. 12시간을 내리 집 안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르는, 어설프게 독립심과 책임감이 강한, 무지한 자의 최후는…….




모유수유처럼 마음대로 안 되는 것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시간, 잠을 못 자는 상황 등등 육체적 정신적 피로도가 쌓이던 어느 날인가부터,


마음이 무척이나 불안해지기 시작하고 밤에 전혀 잠을 못 자기 시작했다. 이 모든 걸 해내지 못할 것만 같았고, 지금 그리고 미래가 너무 암울하게만 느껴졌다. 그야말로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상적인 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남편과 둘이 몇 년 간 꾸미고 꾸려온 집이었다. 둘이서는 사는 데 크게 불편한 것이 없었고 서울의 끄트머리 즈음이라 주변에 공원이 많고 천가도 있어 산책하기도 좋은 동네다.

동네 천가


그런데 이때 즈음, 모든 것이 비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집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유모차 외출은 남편이 있어야만 가능했고, 혼자서는 아기띠를 하고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집은 아기 용품으로 점점 비좁아졌다.


둘일 때는 아무렇지 않았던 이곳이, 어느 순간 감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머릿속은 아무것도 나아질 것이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미래가 암울했고 나는 옴짝달싹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은 한 편의 공포영화다. 남편의 권유로 산책을 다녀오는 길에 집에 들어가는 게 너무 버거워서 집 앞에 한참을 서 있다 들어가곤 했다. 저 문을 들어가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몸 안에 에너지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아기의 기저귀를 고르고 주문하는 일, 온라인으로 장을 봐 저녁을 먹는 일이 너무나 버겁게 느껴졌다. 6개월이 되어서야 시작할 이유식을, 그때 가면 왠지 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4개월부터 걱정을 하며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들여다보고만 있는 거였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했다.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았고, 안 좋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너무 이상한데, 그때는 그랬다. 너무 버거웠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었다.


기분전환 삼아 갔던 미술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병원에 갔다(이 때도 병원에 간다고 내 상태가 나아질 리는 만무하다는 생각에 또 불안했다ㅠ). 예약 없이 갈 수 있다 하여 조금은 허름한 정신의학과로. 나이 지긋하지만 의사복이 아닌 편안한 옷차림의 의사 선생님은 꽤 오래도록 내 얘기를 듣고 내 상태를 진단해 주셨다.


우울증이었다. 완벽, 꼼꼼, 책임감이 강한 성격의 사람이 우울증에 잘 걸릴 수 있다고 했다. 불안이 한쪽 면만을 보게 한다고도 했다. 상황은 변하지 않겠지만 내 마음이 변할 수 있다고, 그로 인해 삶에 대한 통찰력이 생길 거라고 했다. 결정적으로는 뇌에서 분비되어야 할 어떤 호르몬(아마도 세로토닌)이 매우 적게 나오고 있다며, 뇌가 많이 지쳐 있다고도 했다. 살면서 이제까지 점점 지쳐왔다고.


그래 맞다, 지쳐왔고 지쳐있었다. 어쩌면 줄곧. 그렇지만 그건 절반의 진실 아닐까. 원인이 나한테만 있다고? 그런 반발심이 들었다. 의사는 출산 후 상황에 대해선 별로 묻지 않고 일반적인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했다(나중에 알고 보니 일반적인 우울증과 산후 우울증은 증상이 비슷하다고 한다). 인정해야 하기도, 인정하기 싫기도 했다.


어쨌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고 약을 먹으면 치료될 수 있다고 의사는 자신했다. 반신반의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잠을 못 자는 게 제일 큰 문제라 마음을 안정시키고 잠을 잘 수 있는 약을 처방받았다.


그즈음 친구가 보내준 꽃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약의 힘을 빌리니 단기간에 마음이 한결 나아져갔다. 상담이랑은 별로 관계가 없었다. 잠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지켜봐야 할 일. 의사는 6개월 정도를 이야기했다.


그나마 끌어올려진 이 힘으로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 와중에도 아이는 하루하루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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