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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익 Feb 20. 2024

브런치 단상

아픔을 이야기한다는 것...

브런치에는 많은 분들의 아픔의 기록이 있다.

그 글을 읽으며 사람은

기쁨으로도 만나지지만


아픔을 통해서  더 가깝게 만나진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내게도 아픔의 기억이 있겠지만..

난 그 아픔을 좀처럼 말하지 못한다.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할지

말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어서..


그 아픔들의 절반이

오래전... 내가 쫓기듯 떠나온 시절,

공간, 얼굴들 위에 배어 있기 때문일까..


대학교4년 내내

나는 공부대신;;

노동자 야학동아리 활동에 매달렸다.

공단과 벌방과 철거를 앞둔 산동네 자취방들..

나는 학교보다 그 곳에 더  오래 있었다


뭔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누구라도 그 시절, 그 곳에 갔더라면

그렇게 행동했을거라 생각한다..


우리 동아리는

법대 선배들과 졸업한 노무사 선배들을 주축으로

지역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노동법과

근로기준법을 배우는

노동자 워크샵을 진행했는데


8월 땡볕에

배낭안에는 워크샵 포스터 뭉치를 넣고

물풀이 가득 담긴 커다란 페인트통을 들고

공단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늘어선 전봇대마디

끝이 안 보이는 거대한 공단의 그늘진 담벼락마다

포스터를 붙이고 다니다보면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아주머니. 이 물 좀 써도 될까요? ^^;;

그려! ^^


길 옆 구멍가게 앞에 놓인 갈색 다라이의 물을

플라스틱 바가지로 퍼서

세수를 할 때 얼음처럼 차갑던 지하수의 감각이

때때로 목덜미에 선뜻하다.


그 때는

노동자들이 그들의 권리에 관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대부분의 사업장들은

아예 노조를 불허했다.


일년내내 …주말까지;

잔업과 철야에 시달리던

10대에서 20대 여성 노동자들...


다만 토요일 오후라도  잔업 대신

독서토론이나 노래모임을  하고 싶었던

그 작은 바램마저


고용주는 노조설립 공모라며  집단해고를 통보해

희생만 하면 살아온 여성 노동자들을

두 번 죽게하던..그 야만의 시대..

그들에겐 부당해고에 맞서

끝이 안나는 재판을

진행할 경제적 여력도 , 기댈 곳도 없었다..


나는 어렸고…아무런 힘도 없지만 ;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면…

그런 마음으로 갔던 그곳에서  ...

참 휼륭한 친구들을 만났다.


남자형제들의 진학을 위해

고교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으로 왔던

어린 나이에 자신은 물론

한 가족을 부양하고 있던  또래 친구들... .

그들의 빛나던 얼굴과 목소리와 수줍은 미소

그 안에 담긴 여리고도 강인한 영혼......


대학생 친구가 생겼다고 동료들에게 자랑을 했다며

꾸밈없이 웃던 그들 앞에 서면

나는 내가 대학생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한강 다리를 건너며

이제는 호화로운 맨션들이 차지한

그들의 작은 방이 있던 동네를 볼때면

나는 그 이름들을 외워본다..


세월이 지나면.. 시간이 많이 지나면..

잊혀질 줄 알았다..


기억을 더듬을 수록

여전히 아물지 못한 아픔과

처리되지 못한 분노가 몰려와

멈춰버린다..


그 시절, 함께 겪었던 …연대의 기쁨

그리고 아픔을 말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여전히 힘들고... 용기가 나질 않는다


무엇보다 절반의 당사자인 그들에게

말을 해도 되느냐고

허락을 구할 길이 없으므로..;

앞으로도 간직하고만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떤 밤이면...


20대의 내가 떠나온 곳..

진작에 사라져,  흔적조차 없는 공단의 벌방들

산동네로 이어지는

성한 곳이 없던 시멘트계단의 행렬들...

공장 뒷마당의 등나무 벤치...

곤죽이 된 먼지가 뒤엉켜 돌아가지도 않던 환풍기들....


그리고

내가 살면서 만났던, 가장 품위있는 사람들..

햇빛을 받지 못해 늘 파리했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여윈 얼굴위로 번지던

투명하지만 굳은 미소 같은 것들이...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

이제는 머리가 허옇게 세어..

모든 기억들이 흐릿해져만 가는 나를 향해

놀랄만큼 선명하게 달려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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