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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영옥 Apr 13. 2024

뜻깊은 만남

 남편의 직장상사를 만나 점심 먹으러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남편은 함께 가자고 했고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아직 말을 전하기 전이라 불편했지만 간다고 하였다. 왜 였을까?

 10년 전 우리가 결혼할 때 남편의 직속 상사 분이셨기에 결혼 전 한 번 뵙고, 집들이 때 초대하여 뵌 인연이 있다. 말씀도 잘 하시고 놀고 술먹는 거 좋아하신다는 생각에 조금은 결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약간 머뭇거렸지만 그래도 함께 점심 먹자는 제안에 선뜻 거절되지 않았다. 상사 분은 과장으로 높은 직급에 계셨다. 내가 잘 보이려고 하는 마음도 있었을까. 우선 나갔다.

 많이 신경 쓰이진 않았고 날씨 좋은 날, 남편과 점심 먹고 커피 마신다는 마음으로 나섰다. 약간은 오랜만에 뵙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예전의 얼굴이 어렴풋이 비슷했다. " 과장님, 안녕하세요."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너무 과하진 않게, 그렇다고 너무 어렵진 않게 대화를 이어갔다. 예전의 추억을 기억하고 계셨다. 화이트 데이에 사탕 선물을 남편을 거쳐 보냈었나보다. 과장님은 기억하시는데 난 기억에 없었다. (조금 많이 서운해 하신다) 하지만 연포탕 먹으면서 처음 뵙던 기억과 우리 집에 놀러 오셨던 공유 기억으로 10년전 모습으로 잠시 다녀왔다.

 그때 뵙던 과장님의 모습과는 지금 조금은 달랐다.  약간은 삐뚜신 듯한 팀장님 이셨는데 지금은 아주 성숙되고 무엇하나 깨달으신 자신감이 느껴졌고,  얼굴에 빛이 나셨다. 교회를 다니고 계셨다. 교회에서 들으신 말씀으로 자신의 삶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셨다. 머리로만 아는 깨달음이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인 좋은 말씀이었다. 어찌하면 어려울 수 있는 자리에서 본인의 허점투성이 였던 예전 일들을 꺼내신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텐데 아주 편안히 이야기 하셨다.  지금은 너무 좋은 삶을 살고 계셨다. 과장님의 말씀들은 우리 남편이 앞으로 직장생활 해 나가는데 있어서 금쪽같은 말들이었다.
  옳은 방향으로 옳게 가다보면 그때 남들이 틀렸다해도 지나고 나서 나를 돌아보면 바른 길로 온 것이라고.

 인생 살면서도 꼭 필요한 말씀. 밥먹고 커피숍에서도 이어졌다. 말이 언제 끝나나가 아니라 우리 부부에게 최대한 좋고 긍정적인 영향을 줄려는 과장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집중하여 들었다. 그 분의 진심과 성의가 느껴졌기에.
 많은 외로움과 피해의식 속에서 지난 날 남만 탓하던 울그락 불그락 했던 모습을 편안하게 드러내셨다. 하느님 앞에서 울었다고 하신다. 그 순간 하느님의 " 다 안다." 고 하시는 말씀이 들리고 마음 속의 응어리가 싹 풀리는 경험을 하셨다고 한다.
 그 때의 그 마음이 이해가 됐다. 나는 남편이 정신적으로 힘들어 할 때, 왜 그러는지 잘 모르고 이해가 안 됐다. 어느 날, 법륜스님 기도 책을 남편에게 읽어주고 있었다. 갑자기 궁금증이 들어 "근데 남편은 왜 힘들어?" 하고 물었다.
 "내가 못났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 속에 종소리가 울리면서 눈물이 났다. 남편에게 미안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해가 됐다.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때의 그 순간 남편이 그 자체로 이해됐다. 내 마음의 묵혔던 통증도 쏵 내려갔다. 함께 나누고 이해하게 된 후 남편은 나에게 자주 전화해 회사에서 힘든 마음을 터 놓았다. 난 그런 남편의 넋두리를 그냥 잘 들어주었다. 이 사람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해 지기만을 바랐다. 감사히도 지금 남편은 예전보다 덜 괴롭고 자신감도 많이 생기고 주변 사람도 잘 챙긴다.

 과장님이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렸던 순간과 비슷한 경험이다. 진급하는데 15년이 걸리신 과장님, 자신보다 몇 년 늦게 들어온 후배가 계속해서 먼저 진급되고 자신만 제자리를 맴돌면서 얼마나 자신을 탓했을까.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마음이 편해지고 다음 날 회사에 오니 아무도 생각 못했던 승진소식을 들었다고 하신다. 본인도 의아했다고. 진급에 대한 마음을 접고 오늘 일 열심히 하기로 결심하고 나왔던 날이다. 과장님께도 종소리가 들렸고 밝은 빛을 받으셨다. 함께 경험이 공유되니 더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의 경지를. 과장님은 밝은 모습으로 악수를 나누고 직장에 다시 복귀하셨다.

 우리 부부는 마음의 뿌듯함을 안고 든든한 보약한재 먹은 듯이  충만한 기를 받고 돌아왔다. 나오길 잘했다. 조금 부담은 됐지만 진심의 마음 통로가 통한 느낌이다. 이런 좋으신 직장 상사 분이 계신 모습에 남편의 미래가 밝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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