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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정 Aug 26. 2018

아빠의 여행_02

의문의 곤충채집

두 아들과의 첫 여행은아이들의 어린이집 방학에 맞춰 가까운 곳으로 짧게 다녀왔다대략 2시간밖에 되지 않는 일정이었고목적지 역시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었다통영IC 근처에 위치한 세자트라숲이 바로 그곳이었는데아마 통영 사람들 중에서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게 틀림없다조금 외진 곳에 있어 갈 때마다 붐비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엄마와도 여러 차례 함께했던 세자트라숲. 꼭대기 부근의 느티나무가 참 좋은 곳이다.


나는 아이들의 방학 첫 날 그곳을 찾았다큰 녀석이 곤충 채집을 해야 한다 했기 때문이었다내가 초딩이었을 때도 하지 않은 게 곤충 채집이었건만방학 직전 진행되었던 숲 체험 프로그램 당시 혼자만 아무 것도 잡지 못한 원통함에 결국 눈물을 보였던 큰 녀석은 꼭 곤충을 잡아야겠다 했다그래서 숙제도 아닌 곤충채집에 나와 둘째가 동원되었다.     


본격적인 채집활동에 앞서서 초코우유를 먹어야 한다.


내가 초딩이었다면아니 중딩만 됐더라도 맨손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잡았을 게다하지만 이제 털이 폭신한 포유류가 아니면 물리적 접촉을 극도로 꺼리게 되었다왜 그런지 몰라도 나이를 먹고 나니 맨손으로 하지 못 하는 게 점점 많아졌다이런 현상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한테서 찾아볼 수 있다그래서어렸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잡던 개구리나 메뚜기 같은 것들도 이제는 굳이 만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는 친구들도 적지 않다나이를 먹으니 겁이 많아진 건가.


어쨌든이런 나의 퇴화와 곤충채집을 계기로 템빨을 맛보고 싶은 첫째의 욕구가 맞물려우리 삼부자는 가장 먼저 마트로 향했다그곳에서 구입한 것은 채집망(내가 잠자리채라 부르던 것)과 칸막이통과 돋보기였다     

채집망과 채집통이야 집에 없으니 상관없었지만돋보기는 안 사도 되는 물건이었다.


똥밤(큰애의 별명이다), 아빠가 돋보기보다 더 좋은 거 갖고 있어.”

?”

예전에 아빠가 쓰던 건데더 잘 보여.”

그래도 돋보기 사고 싶은데.”

돋보기보다 더 좋다니까.”

전에 친구들은 전부 돋보기 썼어.”


필름을 쓸 때만 해도 루페는 참 소중한 존재였다. 


이러면 별 수 없다포지티브 필름 검수용 루페에 대한 호기심보다 트렌드에 뒤처지기 싫다는 맘이 앞서는 거야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친구들이 하는 것들은 꼭 해보고 싶은 맘이이때부터 시작돼 꽤 오랫동안 지속되는 법이니까다만 그런 욕망이 모두 충족될 수 없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엄마 아빠가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돈도 없을뿐더러그게 그리 좋은 일만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 녀석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해줄 수 있을까 문득 걱정이 되기도 했다     


큰 녀석 나이었을 무렵에나는 주위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도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떼쟁이였다고 한다친가와 외가를 가리지 않고 공통적인 증언은 네가 한 번 고집 부리기 시작하면 말릴 사람이 없었다는 거였다명동 길거리 한복판에 드러누워 장난감을 사내라 한 적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다행히 내 어머니의 손아귀 힘이 강해 내 민폐는 금세 제압되곤 했지만그렇다고 해서 나의 의지까지 꺾이진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우리 집 아들들이 말을 잘 안 듣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이나 싶으면 몹시 즐거워 하신다.


세자트라숲에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무척이나 더운 날이기 때문이었을까얼핏 봐서는 잠자리 한 마리 날아다니질 않는 것처럼 보였다그래도 풀숲을 뒤져보면 뭐가 보이겠지 싶은 마음에 이곳저곳을 발로 건드렸다

참 오랜만에 해보는 일이었다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로는풀숲에 목적이 있던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거기에 있을 송장메뚜기나 여치방아깨비사마귀 같은 것에는 더 이상 볼 일이 없어졌으니까어쩌면그렇게 작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과 이별하면서 인생은 재미가 없어지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다저 녀석들도 그러겠지 하는 맘에 뒤를 돌아봤다     


아무 것도 잡을 수 없지만 손에는 뭔가를 들고 있어야 맘이 놓이는 법.


아이들은 내 뒤에 조금 뒤떨어져 있었다뭐가 튀어나올지 몰라 조금은 겁이 난 표정이었는데내가 이거 봐 이거 봐!” 하고 짐짓 놀란 척 과장되게 부르면 목을 주욱 빼고 내 쪽을 바라봤다그런 녀석들을 좀 놀려주고 싶다는 아빠다운 욕망이 샘솟기도 했지만그런 뙤약볕 밑에서 애를 잘못 울리면 눈물에 콧물에 땀이 뒤섞여 영 보기 좋지 못한 상태가 된다는 걸 몇 번이나 경험한 터였다이제 목적한 바를 달성해야 한다.  

   


가장 먼저 잡은 건 메뚜기였다아직 다 자라지 않은 놈이었는데당연히 채집망으로 잡았다녀석들은 호기심이 잔뜩 어린 눈으로 메뚜기를 바라보다 내게 채집통에 넣을 것을 요구했다그 말에 따라 메뚜기는 채집통 속에 들어갔고나는 다시 휘적거리며 풀숲을 헤쳐가기 시작했다튀어오르는 건 대부분 메뚜기였는데그 중 방아깨비가 눈에 들어와 또 얼른 잡았다     

방아깨비가 왜 방아깨비인지 알려주려면 뒷다리를 붙잡아 방아깨비가 끄덕거리며 방아를 찧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나는 나대로 곤충을 맨손으로 만지는 게 마뜩찮고 녀석들은 녀석들대로 언제 장난칠지 모르는 아빠가 자기들의 코앞에 곤충을 들이대는 게 못미더워 그냥 채집망 안에서 관찰하고 놓아주는 걸로 합의했다     

마지막으로 잡은 건 호랑나비 한 마리잡자마자 나는 나비는 날개에 가루가 있어서 손으로 만지면 안 돼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큰일 나!”라는 말로 녀석들에게 겁을 주고는역시 채집망 안에 있는 것을 관찰하고 놓아주었다     


작은 녀석은 채집망으로 개미를 잡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이후 아이들은 커다란 느티나무가 만들어놓은 그늘 아래서 잠시 바람을 쐬었다나 역시 그곳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봤다녀석들은 예전에 왔을 때 그랬던 것처럼 돌멩이를 주워 느티나무 앞의 연못에 던져넣었다나 역시 해봐서 알고 있지만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자 그 자체로 너무나 재밌는 놀이였다그 나이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하게 되는채집통 속에 있던 메뚜기는 이미 놓아준 지 오래였다


그렇게 작은 돌도 제대로 쥐지 못 하는 녀석들이 곧 물수제비를 뜨려 할 테고 얼마 후면 그런 일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손을 탁탁 털어낼 것이다그때쯤이면 녀석들은 아빠와 함께 풀밭에 숨어 있던 곤충을 찾으러 다녔던 일 같은 건 기억도 못 할 것이다그것이 엄마 없이 이루어진 아빠와의 첫 번째 여행이었다는 사실을 더더욱 인지를 못 할 게 틀림없다


좋은 계절에는 꽃과 바다를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세자트라숲.


그래도 괜찮다나 역시 그렇게 자라 지금에 이르렀으니까누구나 그렇게 기억하지 못 하는 추억을 통해 자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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