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던 밤
프런트의 잘못된 방 배정 때문에 한 번의 번거로움을 거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이들을 먹이는 것이었다. 마침 죽은 적당히 식어 있었고, 큰 녀석과 작은 녀석 모두 제주에 도착한 이후 가장 맛있게 밥을 먹었다. 나 역시 녀석들이 남길만한 양을 내 몫으로 먹었다. 아침 나절에 사두었던 물과 바나나가 있으니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가 되었다.
죽을 다 먹은 녀석들은 그제야 몸이 풀렸는지 방바닥에 누우려 했지만, 더 늘어지기 전에 씻겨야 했다. 물로만 헹군 작은 녀석부터 욕조에 세우고 비누칠을 한 후 앉히고 머리를 감겼다. 따뜻한 물에 녀석은 조금 아까보다 좀 더 늘어졌다. 얼른 물기를 닦아내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린 후 미리 깔아놓은 요에 가서 누워 있으라 했다.
큰 녀석은 욕실에 있던 욕조를 보고 아까부터 ‘풍덩목욕’을 하고 싶다던 참이었다. 샤워기와 수도꼭지 양쪽으로 뜨거운 물을 틀어놓으니 욕조는 금세 차올랐다. 큰 녀석에게 목욕 인형 두 개를 쥐어주고는 들어가 앉아 있으라 했다. 그 사이 나는 세면대에 작은 녀석의 젖은 옷가지를 풀었다. 시큼한 토 냄새와 구릿한 설사 냄새가 동시에 올라 왔다. 오백 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큰 비누 하나로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만들어야 했다.
큰 녀석은 다행히 오랜만의 욕조 목욕이 즐거운 모양인지 한참을 그 안에 앉아 있었다. 빨래를 하는 한편으로 욕조의 수온을 확인했다. 그 와중에 작은 녀석이 잠들었는지, 고개를 빼고 점검하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비누가 모두 닳아 없어지기 전에 세탁은 끝났다. 큰 녀석도 빨래를 다 짤 때쯤이 되자 나가고 싶다 했다.
큰 녀석의 머리를 말린 후 밖으로 나오니, 작은 녀석은 축 늘어져 옆으로 누워 있었다. 덕분에 이를 닦이는 게 평소보다 쉽긴 했지만, 안쓰러운 맘은 더했다. 큰 녀석도 이를 닦인 후 집에서부터 가져온 그림책 한 권을 읽어준 후 “이제 자자”라는 말과 함께, 공식적으로 하루가 끝났다는 신호를 보냈다. 녀석들은 금세 잠이 들었다.
희미한 벽면 조명만 남은 방에서 잠든 아이 둘. 밖에서 한창 내리고 있는 비는 내일까지도 내내 이어진다는 예보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출발 과정을 하나씩 되짚었다. 뭔가 잘못된 점을 찾으려는 건 아니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음에도, 작은 녀석이 힘들었을 부분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우선 일찍 일어나는 것부터 쉽지 않았을 게다. 형을 따라 꾸역꾸역 옷을 입고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온 모든 과정을 쉽지 않았을 게다. 녀석에게 오늘 하루는 온통 힘들기만 했을 게다. 이러려고 데리고 온 건 아닌데. 녀석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미안한 건 오늘 하루 뿐이 아니었다.
작은 녀석은 이제 39개월이 되었다. 입이 짧아 또래보다 많이 작은 몸집, 예민한 감각들, 엄마 껌딱지. 아빠와 친해지지 않을 조건들을 많이 갖고 있는 녀석. 사실 우리 부부에게 작은 녀석은 예상하지 못한 존재였다.
11월말이던가, 감기에 걸려 며칠 동안이나 코를 훌쩍이는 아내에게 “병원 좀 가라니까.”라는 핀잔을 줬을 때 내게 돌아온 대답은 “나 지금 약 못 먹어.”였다. 작은 녀석은, 그렇게 아빠에게 소식을 전했다.
당시의 내 상황은 좋지 않았다. 어쩌면 결혼 이후 가장 안 좋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답답하다 못해 모든 일에 대해 화가 날 정도인 때였다. 쉽게 말해 가장 돈을 못 벌던 때였다. 통영에서의 생활에 끝없는 후회만 이어지고 있던 시기였으니, 작은 녀석이 생겼다는 말에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다.
큰 녀석의 태명은 알밤이었다. 단단하고 속이 꽉 찬 아이로 자라라는 뜻이었다. 작은 녀석 역시 같은 특성을 갖고 있는 ‘견과류의 기조’를 이어서 호두라 지었다. 하지만 지어놓기만 했을 뿐 부른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내의 배에 대고 시도 때도 없이 “알밤아, 잘 크고 있지?”라 물었던 것과는 비교하기도 민만할 정도였다. 아니, 그건 미안한 일이었다. 작은 녀석에게 내내 미안할 일이었다.
태어난 이후에도 녀석에게 온전히 신경을 쓰는 게 쉽지 않았다. 큰 녀석이 사고로 오른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아내와 나는 산후조리원에서 깁스를 한 첫째도 함께 돌봐야 했다. 가족 모두에게 쉽지 않은 시기였다.
작은 녀석은 둘째 특유의 질투와 예민한 기질 때문에 엄마 외의 모든 손길을 거부했다. 큰 녀석을 안아서 곧잘 재우던 때와는 전혀 다른 육아가 내 앞에 펼쳐졌다. 게다가 하필이면 계절 역시 내가 가장 우울해지는 여름이었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많이 참고 즐거워지기 위해 애썼지만, 맘먹은 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경제적 사정 역시 큰 변화가 없었다.
큰 녀석이 태어났을 무렵에는 녀석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사는 데에 망설일 일이 거의 없었지만. 작은 녀석 때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가급적이면 아끼고 덜 쓰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내가 스스로 위축될 수밖에 없던 시기였다.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던 시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것은 변명이다. 나는 작은 녀석에게 큰 녀석만큼 애정을 주지 못하고 웃어주지 못하고 놀아주지 못 했다. 어쨌든 나는 아빠가 해야 할 일들을 그리 잘 해주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작은 녀석이 더 엄마에게 매달리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물론 큰 녀석이라고 엄마를 마다하고 아빠를 찾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를 따지면 작은 녀석이 압도적이다.
내가 아직도 이름을 두고 ‘호두’라는 태명을 부르는 것은, 지금까지 녀석이 자라며 아빠로부터 느꼈을 결핍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기도 하다. 녀석에게는 태명을 많이 불러주지도 못 했고 필요한 것을 풍족하게 사주지도 못 했으며 좀 더 참을성 있게 대해주지도 못 했다. 그래서 이 소란스러운 사고뭉치를 볼 때면 어느 순간 미안한 감정이 복받치듯 올라오곤 했다. 하루가 온통 힘듦으로 가득 채워졌을 오늘은 더더욱 그렇다. 녀석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녀석은 기척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긴 하루가 그렇게 까무룩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