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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정 Sep 30. 2023

이제 엄마 없어도 괜찮지 않아?

제4차 제주여행

그 후로 제주를 여러 번 오갔다. 몇 번은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다 싶었던 어느 날, 나는 이 녀석들만 데리고도 여행을 다녀올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잘 기억은 나질 않지만, 의지는 확고했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아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의사소통이 될 정도로 성장했으니 아빠가 뜻하는 바와 원하는 방향에 대해 녀석들이 이해하고 따를 수 있을 것이라는 담대한 생각을 갖게 됐다. 아들들에게 호연지기를 심어주는 멋진 아빠가 되는 그림은, 비행기 표를 예매하기도 전에 벌써 서너 장은 그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아내는 그런 계획을 열렬히 응원해줬다.      


엄마 없이 떠나는 첫 여행은, 새벽부터 시작됐다. 아침 7시 30분 비행기를 타야 했던 탓이다. 그래도 통영에서 김해공항으로, 김해공항에서 제주공항으로, 렌트카 인수와 카시트 장착까지 무난하게 진행됐다. 내가 세워뒀던 계획에서 어긋나는 부분은 없었다. 날씨가 조금 흐리긴 했지만, 제주의 날씨는 누구도 제대로 예상하기 힘든 것이니 이 역시 계산 안에 포함된 일이었다. 제주에 왔으니 우선 고기국수를 먹고 본격적인 아침 일정을 진행했다.     


첫 번째 방문지는 아침미소목장. 비록 땅이 좀 질척거리긴 했지만, 큰 녀석은 우유통을 들고 신이 난 얼굴로 송아지들에게 다가갔다. 작은 녀석은 그 뒤에서 점퍼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고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먼 곳으로 왔기 때문일 거라 생각하는 걸로 스스로 의문을 해결했다. 아내에게 전송할 기념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주말 출근을 한 말년 대리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맘에 안 들었지만. 

    

신이 난 건 알밤이 혼자였다.


두 번째 방문지는 김녕 쪽이었다. 마침 예전 회사 동료가 살고 있는 곳이라 바다를 잠깐 둘러보고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메뉴도 정해놨던 터였다. 그 후로는 예약해놓은 호텔에 체크인 후 뒹굴거리다 돼지갈비로 저녁을 먹고 돌아와, 호텔 욕실 욕조에서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면 이른 아침부터 돌아다닌 고단함이 풀릴 게 분명했다. 이어서 노곤한 잠자리에서 꿀잠을 잘 수 있을 테니, 그걸로 첫날은 무사히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운전대를 잡고 검푸른 제주 바다와 맞닿은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큰 녀석이 소리를 쳤다.    

 

“아빠! 호두(작은 녀석 태명) 토해!”     


다급한 외침이었지만, 주행 중이었던 터라 힐끗 뒤를 돌아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사실 굳이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쿨럭 쿨럭. 하는 소리가 몇 번 연이어 들리자 벌써 시큼한 냄새가 차 안에 가득 찼다. 급히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내려 뒷좌석 문을 열어 보니,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이 가능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아침미소목장에서 왜 그렇게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을 깊게 할 시간이 없었다. 우선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했다. 렌트카 회사에서 서비스로 준 물티슈로는 택도 없는 일이니, 트렁크 깊은 곳에 있는 대용량 물티슈와 여행용 티슈를 꺼내야 했다. 서비스 물티슈와 함께 건네준 비닐봉투는 이럴 때 쓰는 거였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대충,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처리를 했다.     


만나기로 한 옛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우리 점심 먹기로 한 식당이 어디냐면 말야”로 시작되는 동료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짧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 집 가서 애 샤워 좀 시킬게. 먹는 건 배달을 시키자구. 아 미치겠네. 어, 오바이트. 어. 미안 미안. 암튼 상황이 그러니까 이해 좀 해줘.”     


다행스럽게도, 그 역시 비슷한 또래의 아들을 키우고 있었기에 이런 돌발상황을 쉽게 받아들였다. 덕분에 나는 그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트렁크를 들고 올라가 작은 녀석과 큰 녀석을 차례로 씻기고 옷을 갈아입힐 수 있었다. 토사물이 달라붙은 옷들은 대충 빤 뒤 비닐봉투에 넣어두었고, 욕실 바닥에 떨어진 잔해들도 모두 씻어냈다.     


밖으로 나가 보니, 작은 녀석은 의외로 표정이 괜찮았다. 속이 좀 편해진 덕분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낯선 집의 낯선 장난감들에 호기심이 생겼는지 이것저것 만지작거리고 싶은 욕망이 얼굴에 한가득이었다. 그건 큰 녀석도 마찬가지였는데, 맘씨 좋은 옛 동료는 아이들을 봐주고 있을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차에서 갖고 오라고 배려를 해주었다.     


다시 자동차로 돌아와 보니, 주니어 시트가 문제였다. 원래의 자동차 시트야 방수처리가 돼 있는 데다 ‘직격’을 피했던 터라 피해 범위가 넓지 않았지만, 주니어 시트에는 아침에 먹은 고기국수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다시 카시트 업체에 가서 바꿔야 할 상황. 업체에 전화를 해 사정을 설명했더니 세탁비만 지불하면 교환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감지덕지.     

 

길가에서의 응급처치보다 좀 더 꼼꼼히 내부 세척을 한 후 집으로 올라갔더니, 아이들이 슬슬 배가 고프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동료는 중국집에 전화를 했고, 우리는 얼마 후 탕수육을 위시한 몇 개의 그릇을 앞에 두고 기진맥진한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아, 작은 녀석은 그 집의 누룽지를 끓여 먹었고.      


모두 지친 얼굴로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와 아이들이 향한 곳은 소아과병원이었다. 추천을 받은 병원은 휴무라 어쩔 수 없이 다시 제주 시내 한복판까지 운전을 해야 했지만, 친절한 진찰을 받을 수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진단은 장염 의심. 내가 “원샷”을 하려 해도 힘들 만큼의 대용량 물약 두 병과 가루약 여러 봉지를 약국에서 받은 후, 카시트 업체에 도착했다.     


운전석 문을 열고 내릴 때부터 한 번도 펴지 않은 허리를 더욱 깊이 굽신거리며 더러워진 카시트를 반납하고 새로운 카시트를 설치한 후 호텔로 방향을 잡았다. 어서 이 고난의 행군을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서귀포가 가까워 오자 “오늘 저녁은 뭘 먹이지?”라는 걱정이 고개를 들었다. 결국 평화로에서 잠시 빠져나와 차를 세우고 서귀포의 죽집을 검색한 후 미리 포장 주문까지 해놓은 후에야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퇴근 시간에 접어든 서귀포에서 급하게 죽을 픽업해 겨우 호텔에 도착했지만, 아빠에게 주어진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프런트에서 방을 잘못 안내해주는 바람에 지금 막 풀었던 짐을 다시 싸야 했으며, 욕조 목욕을 기대하고 있던 아이들은 찬물만 나오는 수도꼭지를 지켜보느라 더욱 지쳐가고 있었다. 게다가 이놈의 호텔은 수학여행을 온 중학생들에게 점령을 당해 모든 서비스가 지체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넋을 놓고 있을 틈이 없었다. 토사물이 잔뜩 묻은 옷들을 모두 세숫비누로나마 빨기 시작했다. 아직 취학 전 아이들이 입은 초여름 옷이라 그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괴로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시 따뜻한 물이 나오자 희망 비슷한 게 느껴졌다. 얼른 욕조에 물을 받고 아이들을 차례대로 씻겼다.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수습을 마쳤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샤워를 한 후 방바닥에 누웠을 무렵, 죽이 얼마나 식었나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다행히 알맞은 온도. 아이들은 허겁지겁 단출한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원래는 호텔 근처에 봐두었던 돼지갈비집엘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죽 한 그릇이 그 무엇보다 필요한 상황. 그렇게 집중해서 먹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긴 하루를 보내 빨아버린 후에야 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다음 날은 비자림을 한 바퀴 돌고 점심을 먹은 후 서귀포오일장을 구경할 계획이었지만, 장염약을 먹기 시작한 호두에게 좋은 일정은 아니었다. 그래서 선택한 프로그램은, 서귀포에서 가장 평가가 좋은 키즈 카페 탐방이었다. 보편적인 아이들이 보편적인 선호를 보이는, 돌발 상황에서 그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 곳. 제주 뿐 아닌 전국 어디에나 있지만, 그래서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었던 장소.      


우리는 그렇게 평일 오전 한적한 키즈 카페에서 두어 시간을 놀고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바깥 활동은 최소한으로, 휴식은 최대한으로 잡아야 안심이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점심 식사는 인근 프랜차이즈 김밥집에서 포장을 했다. 동네에 있을 때와 다를 게 없는 하루였다. 그저 차를 타고 지나가는 길에 검은 바위들이 많이 보였고 바다에 파도가 많았을 뿐, 통영과 다를 게 없는 풍경들이었다.      


숙소에서 점심을 먹고 한동안 뒹굴거리다 올레시장을 건성으로 둘러본 후 백반집에 가서 간단한 저녁을 먹고 욕조목욕을 한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아이들이 잠이 든 틈에 아내가 조용히 우리 방으로 들어섰다. 애초에 둘째 날 늦은 비행기를 타고 합류하기로 예정돼 있었던 터였다. 물론 아이들은 몰랐다. 깜짝쇼를 위한 계획이었으니까.     


그간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던 아내와의 짧은 해후 이후, 나는 호텔 바깥으로 나섰다. 제주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혼자 있던 시간이었다. 잠시 행복했지만, 꽤 오랫동안 씁쓸했다. 내 욕심 때문에 아이들을 힘들게 했다는 후회와 자책 때문이었다. 물론 운이 없던 탓이 가장 컸지만, 아내가 있었다면 호두의 상태를 미리 알아차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목표 지향적인 아빠와 함께였기에 아이가 어떤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다음날 아이들은, 눈을 뜨자마자 엄마의 품 속으로 파고들어 한동안 꼭 껴안고 있었다. 예상과 달리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원래 있어야 할 존재가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아빠라는 존재의 한계를 느끼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다만 어제만큼 우울하지는 않았다. 각자의 역할이 다른 법이니까.      


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분한 템포를 유지하는 아내의 합류 덕분에, 우리의 여행은 금세 안정을 찾았다. 서귀포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중산간의 한적한 카페 잔디밭에서 뛰어놀기도 하며 하릴없는 하루를 보냈다. 아이들은 아빠와 있을 때보다 훨씬 편안한 표정이었다. 모험이 여행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도 그런 분위기에 젖어 할 것 없이 여유로운 시간 속으로 젖어 들었다. 아빠의 도전으로 시작했던 여행은, 엄마의 치유로 마무리됐다.      


엄마가 합류하자 고행은 끝나고 여행이 시작됐다.


그 후로 호두는 “아빠랑 형이랑 셋이서만 여행 갈까?”라는 질문에 세차게 고개를 흔들곤 했다. 같은 질문에 “몰라”라는 대답이 나오기까지 3년은 걸렸다. 물론 나는 여전히 “엄마 없이 떠나는 여행”을 준비하고 실행할 의지가 충분하다. 이제는 아이들의 페이스를 좀 더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니까. 아이들의 체력이 꽤 좋아졌다는 점도, 당연히 염두에 두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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