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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정 Mar 30. 2024

죽은 개를 기억하다_(11)

한비두비_01

97년말이었던가 98년초였던가.

추운 겨울이었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하얀 털뭉치 하나가 거실에 있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말티즈였다.

쟤는 뭐야? 라는 혼잣말 비슷한 물음에 동생이 방에서 나오며

"내가 데리고 왔어."라고 했다. 


사정은 이러했다.

IMF 사태가 터지자, 길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들이 두고 떠난 동물들도 증가했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떠돌이 개가 된 아이들도 상당했다.

그리고 충무로에 있는 한 대형 동물병원에서는 그런 유기견들을 모아

무료로 분양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동생은 친구를 따라 그곳에 갔다고 한다.

그런데, 친구가 마음에 든 말티즈를 발견하고 들어올리자

마주 짖어댔다고 한다.

깜짝 놀라 내려놓는 걸 본 동생이 "얘는 왜 이래?"라는 마음으로 다시 들어올렸더니

손을 핥으며 꼬리를 흔들더란다. 

그 순간 운명임을 직감하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는 게 동생의 설명이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는 당장 내일 다시 데려다 놓으라 하셨다.

이유는 두 가지.

첫째, 한비가 해꼬지를 할지 모른다

둘째, 이렇게 작은 개는 덩치 큰 우리집 식구들 틈에 있다 다칠지 모른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두 번째였다. 

우리집 식구들은 작은 개, 

그러니까 반려견이라는 단어가 퍼지기 전 '애완견'이라 불리던 소형견들을 별로 안 좋아했다. 

모름지기 개란 듬직한 맛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 암묵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작은 개는, 한비가 작정을 하고 덤비면 꼼짝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의외로 한비는 그 작은 말티즈에 대해 부정적 경계심을 내비치지 않았다.

낯선 개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왔으니 멀리 떨어져 있긴 했지만

그 표정은 침입자를 향한 게 아니라 이상한 생물을 향한 것이었다.

동생은 "한 번 왔는데 어떻게 다시 갖다 줄 수 있느냐"며 집에서 키우길 원했지만

아버지는 완강하셨다. 

그 순간이 가장 낯선 건 그 말티즈였을 게 분명했다.

누군가를 향해 꼬리를 흔들지도 못한 채 

잔뜩 주눅이 들어 이곳저곳을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던 그 말티즈에게 어머니는

"아무튼 오늘은 우리집에서 자야 하니 이거라도 깔아줘라"며 두툼한 방석 하나를 당신 방에 놓으셨다.

밤새 한비가 그 낯선 개를 물 수도 있으니 어머니께서 데리고 주무시겠다는 거였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동물병원으로 가기로 했던 그 말티즈는 

오줌을 잔뜩 지린 채 바닥에 누워 버렸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 하고 있었고, 한비는 그런 말티즈를 걱정되는 눈으로 바라보며 킁킁 거렸다.

아버지는 동생에게 우선 동네 병원에라도 데려가라는 당부를 남기고 출근을 하셨다.

동생은 동물병원이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말티즈를 데리고 나갔다.

어쨌든 우리집에 들어온 생명이니 죽게 둬서는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뒤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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