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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정 Nov 26. 2017

겨울, 스칸디나비아를 여행한다는 것_(3)

헬싱키

헬싱키에 도착한 건 오전 8시쯤이었다.

전날, 배에서 하룻밤을 보내긴 했지만 워낙 컸던 터라 불편함은 없었다.

한눈에 봐도 꽁꽁 얼어붙어 있는 것처럼 바깥을 보니

외려 배에서 내리는 게 싫어졌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바로 옆나라지만 기차로는 오갈 수가 없다.

철로의 폭, 즉 궤간(軌間)이 다르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철로는 러시아의 그것과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핀란드에서 러시아는 기차가 오가지만

핀란드에서 스웨덴으로는 배나 버스 혹은 비행기를 이용해야 한다.

발트해를 가로 지르는 실자 라인이나 바이킹 라인은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운송수단이 되었다.


배가 공해상에 진입하면 면세점이 열리는데, 술값과 담배값 비싼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의 문이 열리는 것과 같다고 할 정도.


한국에서 가져 간 담배가 있었지만, 나 역시 이때 담배를 한 포 샀다.


헬싱키는 추웠다.

스톡홀름보다 더 추웠다.

두 겹의 자켓을 입고 등에는 배낭을 메고 앞으로는 카메라 가방을 둘렀건만

헬싱키는 추웠다.

진심으로 다시 배에 타고 싶을 정도로 추웠다.

유치원 때부터, 눈밭을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돌아다니던 내가

그렇게 춥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배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되돌아가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들은 이미 바이킹의 후예들.


춥다고 서 있다가는 그대로 얼어붙을 것 같아서

삐걱거리는 로봇처럼 시내를 향해 걸었다.

전차를 기다려도 됐지만, 전술한 것처럼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점점 가까워지는 그곳의 풍경은 더더욱 살풍경했다.


젠장, 얼어붙은 바다라니!


부두가, 정확히 말하면 바다가 얼어붙어 있었다.

저 앞에 희게 반짝이는 헬싱키 대성당이 얼음결정처럼 보였다.

내가 뭐하러 비싼 돈 들여 여기까지 왔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두어 달 후, 드라큘라의 성으로 알려진 루마니아의 브란 성에 가려고 하자

당시 여행 중이던 헝가리의 여러 사람들이 "너 지금 거기 가면 얼어죽어!"라며 말리던 순간에도

나는 "얼어붙은 바다도 봤는데 뭘."이라며 이때를 떠올렸다.

하지만 헝가리 사람들이 "드라큘라도 사실은 겨울에 얼어죽은 거라니까!"라며

날 극구 말리는 바람에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부두 왼쪽으로 보이는 옛 시장으로 얼른 들어갔다.

다른 건 생각할 틈도 없는 급박한 순간이기도 했다.


시장은 따뜻했다.

96년 여름, 처음 이 시장을 방문했을 때는 왜 이런 실내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걸까 의문이었는데

겨울이 되니 자연스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배가 고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장에는 먹을 게 많았다.


유럽에서 겨울에 판매되는과일들 중 많은 수는 아프리카에서 온 것들. 덕분에 싼 가격으로 비타민 공급을 할 수 있었다.


가장 만만한 한 끼 식사였던 샌드위치 종류들은, 한국의 것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내용물이 풍성했다.


초밥집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이미 첫 유럽 여행 때 즉석에서 회를 떠주며 "이랏세마세"를 외치던 노르웨이 사람들도 본 적이 있었으니까.


저 훈제 생선 위에 버터와 소스를 발라서 숯불 위에 다시 구워 먹으면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다. 연기가 워낙 심해 야외 노점에서만 팔았던 터라 겨울에는 기대할 수 없는 호사였다.


앞뒤로 무거운 짐을 들었건만, 시장에서는 몸이 가뿐하게 움직여졌다.

새우와 이런저런 채소들이 많이 들어간 샌드위치에 커피까지 한 잔 해서 그랬는지 모를 일이었다.

덕분에 다시 용기를 내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몸이 움츠려드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호떡 같은 주전부리를 팔던 텐트. 안쪽은 18도 이상이라는 문구가 그렇게 유혹적일 수 없었다.


다듬기만 하면 부두에서는 스케이트를 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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