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성큼

고민하던 끝에 내가 패션으로 밥 벌어먹는 사람도 아니고, 등산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내 주제에 무슨 고가의 바람막이냐 하고 생각했다. 과연 올바른 결정인지는 모르나 유니클로 블럭테크 제품으로 검은색 바람막이를 올해 분 마무리 하기로 하였다. 80만원 짜리 아크테릭스 베타를 사지 않은 대신에 8만원으로 그 감성의 절반만 느낄 수 있어도 남는 장사라고 느껴졌다. 어차피 간절기는 금방 지나갈 것이고 약간의 바람막이만 입고 다니면 패딩의 계절이 올 것이다. 한 때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두 가지 옷은 투자할 가치가 있다’ 고 말 하고 다닌 적이 있다. 바로 ‘반팔티셔츠’와 ‘패딩’ 이었다. 패션의 무언가를 지적하기 보다는 대한민국의 뒤틀린 사계절을 비꼬는 말이었다. 여름의 스펙트럼과 겨울의 스펙트럼으로 구성 된 한국의 날씨는 이제 얼추 6개월은 반팔 입고 나머지 6개월은 패딩 입으면 어찌어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옷을 움켜지고 주차장으로 총총 뛰어가면 하루가 다르게 겨울이 성큼 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앙 난방을 이제 틀었대’ 라는 어제 와이프의 말과 달리 방 바닥은 꽤나 서늘했다. 여기 집에는 ‘한랭군도’라고 불리는 방이 있다. 가장 바깥쪽의 방으로 단열도 잘 안될 뿐더러 이상하게 난방이 잘 안들고 해서 창고로 쓰고 있고 추후에 공부방이나 서재로 개조할 생각이 있는 공간이다. 찬바람도 아닌 냉각된 공기가 발 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것이 소름이 돋았다. 다행히 관리사무소와 연락했더니 보일러의 공기를 제거해주고 몇 가지 조치를 취해주니 이제야 좀 나아졌다. 집은 고쳐가며 사는 것이고 부르면 와주는 관리사무소 형님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래서 본인은 혹여나 흰머리 할아버지가 되더라도 단독주택에 가서 살 생각은 없다. 서양 아저씨들 처럼 공구 박스 들고 집 고쳐가면서 사는 것은 취향이 아니더라.



따라서 오늘의 출근룩은 유니클로 바지에 마시모두띠 옥스포드 셔츠를 입고 그 위에 에센셜 후드였습니다. 출근하면 세미정장으로 일해야 하는 직장인일 뿐이지만 출퇴근 하는 그 순간만큼은 제멋대로, 내맘대로 입고 다니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여러 옷을 겹쳐 입고 돌려입고 빼입고 할 수 있는 가을 겨울이 그저 반가울 뿐이다. 양말을 신어야 하는 점은 조금 귀찮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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