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 있게 된 이유

제1부 고요히 서 뿌리내리다.

by 순아

결혼 초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넘어갔다. IMF라는 쓰나미는 대기업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퇴사 후 남편은 영업직의 경험을 살려 관광회사를 차렸지만 2년도 채 되지 않아 문을 닫아야만 했다.



빚더미에 앉은 상태에서 8개월 된 둘째 아이가 예방접종을 맞고 부작용으로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다.

가까스로 위험한 고비는 넘겼지만 천식 때문에 병원에 출근도장을 찍다시피 했다.

경제적 궁핍과 둘째 아이의 걱정으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켜켜이 쌓이는 날 만큼 불안과 우울이 나를 깊은 수렁으로 끌고 갔다.



어둠은 더 짙은 어둠을 몰고 온다고 하였던가?

남편이 건축설비 기술을 배우기고 있던 중 2층에서 떨어져

두 발의 뼈가 다 으쓰러졌는 중상을 입었다.

넉 달 이상의 장기 입원은 물론 퇴원 후 2년 가까이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 두 아이는 어렸고, 돈은 생활비는커녕 병원비도 없었다.

다행히 주위의 도움과 보험금으로 병원비와 생활비는 겨우 해결되었다. 하지만 두 아이를 돌보며 남편의 대소변까지 해결해야 하는 긴 간병이 나의 몸과 마음을 무너뜨렸다.



남편이 퇴원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느 날 갑자기 귀가 먹먹해지더니 술 취한 것처럼 어지럽고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동네 이비인후과에 가니 돌발성 난청이라고하며,스테로이드 성분의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약을 한 달 정도 먹었지만 차도는 없고 얼굴은 호빵처럼 붓고 살도 갑자기 엄청 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종합병원을 갔더니 검사결과 이름도

생소한 메니에르병이라고 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완치 방법이 없는 난치병이라 했다.


처음에는 약간 비틀거릴 정도의 어지럼증과 귀먹먹함정도의 불편한 증세였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증세가심해져어지럼증이 한번 오면

온세상이 뱅글뱅글 돌 정도의 심한어지럼증과 구토로 병원에 가서 진정제를 맞아야 겨우 어지럼증이 멈추었다.

그리고 후유증으로 한쪽 귀 청력이 소실 되어갔다.


10여년 동안 나를 수시로 벼랑끝으로 몰고 가 두려움에 떨게 했던 심한 어지럼증은 메니에르병을 깊이 연구하신 어느 명의 선생님의 도움으로 거의 사라졌다.

아직 여전히 한쪽 귀는 들리지 않는다.이명으로 밤낮없이 시끄럽게울어대는 매미 한마리가 귓속에 살고 있어도

어지럼증이 사라지니 살것 같았다.

예전처럼 자유로운 정상인으로 살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한 동안 살았다.


이런 나의 기대는 메니에르병이 어느정도 나은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산산히 부서졌다.

이유없이 화장실에서 2번이나 쓰러졌다.

심장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부정맥 중 서맥이라 심장이 천천히 뛰고 불규칙하게 뛰어 치료법은 인공박동기를 삽입하는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하늘은 내가 자유롭게 다니는 걸 허락하지 않는 가보다.

심장에 인공박동기를 삽입하고 다시 집에만 있어야 했다.


한 곳에 고요히 서 있어야만 하는 나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