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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유 컴패니언 Dec 05. 2022

속마음 풀기로 내 삶의 무게를 가볍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사는 것은 자신에게 고통을 준다.

                                          -프랜신 사피로(Francine Shapiro)- 

    

나이가 50이 되면 이제 자신의 속마음을 살펴봐야 할 시기다. 자신의 속마음을 모르고서는 내 삶을 산다고 할 수가 없다. 속마음을 알면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 수 있다. 남의 삶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책임지는 삶,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자신의 삶의 마지막 순간을 회한(悔恨) 없이 평안하게 맞이할 수 있다. 나이 50은 마라톤에 비유하면 반환점을 도는 시기다. 마지막 목적지에 잘 도착하기 위해 뛰어가면서도 자신의 몸과 마음 상태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자신의 몸의 무릎과 다리에 쥐가 나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마음에 초조함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자신을 점검하지 않고 그냥 달리다가 다칠 수도 있다. 마지막 지점에 도착하지 못하고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다. 사람의 속마음을 알기 어렵다는 뜻이다. 자신이 자신의 속마음도 모르는데 어떻게 남의 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 ‘남의 눈에 있는 티끌만 보았지, 제 눈의 들보는 못 본다.’라는 속담도 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마음 나도 잘 모른다’라고 해야 맞다. ‘조변석개(朝變夕改)’라는 말이 있다. ‘아침에 먹었던 마음이 저녁에는 바뀐다.’라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자신의 삶에 중심을 잡지 못하는 이유다.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려면 우선 자신의 속마음을 아는 게 먼저다. 자신의 마음을 알기 위해 먼저 ‘마음’이 무엇인지, 무엇을 마음이라고 하는지부터 정해야 한다. 마음을 정의하는 관점은 다양할 수 있다.      


필자인 나는 ‘마음’을 매 순간 내 의식 공간에 올라오는 내 몸의 감각 느낌, 생각(기억, 심상), 감정, 욕구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면 이 책에서 말하는 속마음은 무엇인가? 속마음은 자신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마음이다. 즉 자신의 의식 공간에 올라오지 못하고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거나, 의식 공간에 저절로 올라왔지만 자신이 회피한 마음이다. 저장된 기억에는 생각, 이미지, 감정, 욕구, 감각 느낌이 같이 묻어있다. 기억을 의식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어떤 기억이 의식 공간에 올라오면 생각, 감정, 욕구, 몸의 감각들이 같이 올라온다. 자신의 의식 공간에서 회피한 마음은 억제된 마음이다. 그 마음을 마주하는 게 두렵고, 창피해서 또는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겉으로 드러낼 수 없다. 그래서 그 마음을 억제한다. 억제된 마음은 에너지다.   

   

겉으로 드러내는 마음은 겉모습으로 언어적인 말과 글, 비언어적인 행동, 표정, 춤, 그림, 음악 등으로 표현된다. 밖으로 드러내는 자신의 겉모습과 속마음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잘하려고 할수록 속마음을 드러내기 어렵다. 자신의 명예와 지위, 체면, 남의 눈치 때문에 자신의 내면에서 조잘거리며 올라오는 마음을 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산다. 상사 앞에서 웃음을 짓고 상냥하게 행동하던 직원의 속마음은 다를 수 있다. 상사가 자신을 지지해주지 않은 데 대한 서운한 감정이 쌓여있다. 그는 술자리 등에서 긴장이 풀릴 수 있는 분위기가 되면 태도가 돌변한다. 그의 속마음은 밖으로 나와 거리낌 없이 풀어지고 싶은 것이다. 

          

나이 50이 되면 혼자서 속으로 끙끙 앓는 속병이 생기기 쉽다. 나이 50까지 오면서 사람들은 연륜에 따라 여러 가지 상실의 경험을 한다. 상실은 자신의 마음에 상처의 흔적을 남기기 쉽다. 소중한 사람의 자살이나 배우자와의 이혼, 별거, 졸혼 등으로 상실을 경험하는 시기다. 자동차 사고, 정년퇴직, 명예퇴직, 해고, 조기퇴직 등의 상실 경험은 풀지 않으면 고스란히 부정적 기억으로 자신의 기억에 저장된다. 자신이 복권에 당첨되거나 주식 대박의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런 경험은 긍정적 기억으로 저장된다. 긍정적 기억도 풀지 못하면 자신을 속박하는 장애물이다. 오래도록 대박의 결과물을 유지하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그 대박 기억을 잊지 못해 도박에 빠질 수 있다. 일상의 골칫거리도 그때그때 풀지 못하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우리는 지난 일에 대해 자신이 만족했거나 좋았던 일보다는 하려고 했으나 하지 못했던 일이나, 실패했거나 상처받은 일을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우리 뇌의 이런 기억 처리 현상을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고 부른다. 이런 현상은 자신이 좌절된 과제에 대한 기억을 회상해서 해결하려고 애를 쓰면서 매달리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특히 부부 사이에서 갈등이 있을 때마다 문제를 풀지 못하고 더 꼬이게 만드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어느 한 사람은 지난 일에 대해 아주 세세하게 기억을 소환하고, 상대방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언성이 높아진다. 이때 기억을 반복적으로 소환하는 사람은 그 과제에 대해 풀지 못하고 맺힌 무엇이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자신이 기억을 되새김질(ruminination) 하는 이유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울 수 있다.   

  

상대방은 그 당시에 그 과제에 대해 만족스럽게 풀렸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기억에 저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문제를 풀 실마리를 잡으려고 한다면, 자기 기준으로 문제를 보지 않고 상대방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럴 때 적절한 말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일 듯하다. 풀지 못한 과제에 대한 자신의 기억은 자기 자신이 풀어줄 때까지 계속 자신의 의식 공간에 올라올 것이다. 자신의 속마음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기억은 자신이 풀어야 할 과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의 기억체계의 중요한 특징은 이전에 풀지 못했던 과제를 푸는 능력이라고 한다. 자신의 뇌는 열심히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 자신의 뇌에 저장된 기억 중에 해결되지 못한 과제를 풀어달라고 반복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전래 동화가 있다. 누구에게도 자기 속마음을 풀지 못해 속병이 생긴 사람의 이야기다. 죽음 직전까지 갔던 그 사람은 마지막 수단으로 대나무밭에 구덩이를 파고 아무도 모르게 속마음을 실컷 풀고 살아났다는 이야기다. 속마음을 풀지 못하면 몸과 마음에 스트레스와 관련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마음속에 올라오는 생각이나 감정, 욕구를 억제하려고 할수록 그만큼 긴장의 에너지는 증가한다. 스트레스 상태에 놓인다. 자신이 풀지 못하고 저장된 기억도 틈만 보이면, 즉 조건만 되면 의식 공간으로 올라오려고 꿈틀거린다. 속마음을 풀지 못하고 두면 만성 스트레스 상태에 놓인다. 이런 상황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전반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속마음은 마음속에 저장된 기억과 억제한 마음이다. 속마음을 푼다는 것은 속마음과 겉모습을 일치시킨다는 말이다. 이 속마음을 자신의 의식 공간에 의도적으로 적극적으로 불러와서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식 공간에 올라온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하나하나 낱낱이 경험하는 것이다. 비난이나 평가를 하지 않고 그냥 날 것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몸에서 가슴이 꽉 조이는 느낌을 그대로 느껴보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오면 ‘왜 이래?’라고 하지 않고 그냥 올라왔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무시당했다’라는 생각이 올라오면 먼저 그 생각에 이름을 붙여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속마음을 푼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 풀지 못하고 쌓여있는 기억을 풀어내는 작업이다. 그 기억에 묻어있는 생각, 감정, 욕구, 감각을 직면하고 알아차리고 받아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 기억을 떠올리자마자 자신을 배신한 XX의 얼굴과 목소리, 표정이 같이 올라올 수 있다. 보기 싫은 XX이고 그에 대한 적개심이 올라와서 가슴도 조이고 머리도 띵해지는 느낌이다. 힘들어서 그냥 고개를 흔들어 피하고 싶다는 생각도 올라온다. 이럴 때 피하지 않고 마주해야 한다. 단 한 번만이라도 경험해보면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그 기억과 같이 올라오는 모든 경험을 있는 그대로 중계방송하듯이 읊어주면 된다. ‘XX 얼굴이 올라오는구나’ ‘XX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오는구나’ ‘내 가슴이 꽉 조이는 느낌이 올라오는구나’라고.      

     

속마음을 푸는 과정은 자신의 내면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또 일어나는지 내 상태를 중계방송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다가 직면하고 또 중계방송하면 잔잔한 파도를 보게 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그 기억 내용은 더 또렷하게 남는다. 하지만 그 기억에 묻어있던 생각, 감정, 욕구, 감각은 변한다. 이전에는 그 기억을 떠올리면 적개심이 먼저 치고 올라와서 다시 묻어두곤 했다. 속마음 풀기 작업을 하면 그 기억을 떠올려도 적개심에 휘둘리지 않는다. 적개심의 에너지가 정제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기억에 대해 전체 맥락을 이해하고 ‘아하! 그렇구나’라는 통찰이 일어난다.    

      

필자인 나는 40대에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속마음을 푸는 경험을 했다. 그 당시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잠을 자려고 하면 내 머릿속은 시장통이 되어 번잡했다. 내 가슴은 두근거리고 답답했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나는 헛기침을 자주 했다. 목에 뭔가 넘어가지 않고 걸려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냥 억울하고 분하고 화가 났다. 내 안에서 적개심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내 머리는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는 내 온몸에 갑자기 오한(惡寒)이 와서 얼어붙기도 했다. 대장, 항문, 치아, 어깨 등 내 몸 곳곳에서 탈이 났다. 나는 내 속을 풀지 못하고 화병을 앓았다. 나는 속마음을 풀어놓고 평안함을 느꼈으며 내 몸도 회복했다.  

   

속마음을 푸는 방법은 다양하다. 말하기, 글쓰기, 녹음하기, 명상 방식으로 털어놓기, 그림, 춤, 음악 등이 있다. 사람들은 털어놓을 때 저장된 기억에 묻어있는 생각, 감정, 욕구, 감각을 언어로 바꾼다. 즉 속으로 중계방송하듯이 읊거나, 글로 옮기고, 녹음기에 녹음한다. 그리고 믿을만한 사람에게 말을 할 수도 있다. 저장된 기억에 묻어있는 생각, 감정, 욕구, 감각, 이미지에 이름을 붙이고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심리적 거리두기다. 자신이 생각, 감정, 욕구, 감각, 이미지에 빠지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사람은 저장된 그 기억에 묻어있는 내용물을 갱신해서 다시 저장할 수 있다. 심리학과 뇌과학 연구에서는 이런 기제를 ‘기억 재공고화(memory reconsolidation)’이라 부른다. 하나의 심리치료의 기법으로 개발해서 적용하고 있다.      

나이 50에 미리 자신의 속마음을 풀어내고 정리하면 이후 삶의 무게를 줄일 수 있다. 시기를 놓치면 자신의 속마음에 삶의 찌꺼기들이 더 많이 쌓여 풀기가 더 힘들어진다. 자신은 지금까지 더 잘 살기 위해, 더 잘 보이기 위해 내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 많다. 이제 자신 안에 쌓아둔 것은 훌훌 털어내야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반성할 수 있다. 내면의 상처를 따뜻하게 치유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다. 남의 기준과 평가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체면을 의식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자신의 얼굴에 가면을 쓰기 위한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자신의 삶이 끝나는 시점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 속마음을 털어내 보자!      


(Tip!) 속마음 혼자 스스로 푸는 방법

자신의 마음속에 풀리지 않고 쌓여있는 것은 자신이 알아차리든 알아차리지 못하든 과거 기억과 그 기억에 묻어있는 온갖 생각, 감정, 욕구, 심상, 신체감각이다. 지금까지는 풀지 못했던 것은 그 기억의 무리가 자신의 의식 공간에 찾아오면 자신이 회피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의 무리를 푸는 첫 단계는 그 기억의 무리를 직면하는 것이다. 의식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는 기억의 무리를 놓치지 말고 그에 맞는 ‘이름’을 붙이면 된다. 그 기억의 무리인 생각, 감정, 감각, 욕구, 심상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자신과 그 기억의 무리는 적절한 심리적 거리가 생긴다. 그 기억의 무리에 이름 붙이기 즉 ‘언어화’하는 것이다. 언어화하는 순간 자기 자신이 그 무리와 동일시에서 벗어난다.      


즉 ‘나는 화난 사람’이 아니고, ‘내 의식 공간에 화난 감정이 올라오는구나’라고 이름을 붙이고 관찰하는 사람이 된다. 자신의 속마음에 갇혀 있던 기억 무리는 자신이 직면하면서 있는 그대로 맞이하면 그 무리가 가지고 있던 에너지는 점점 약해진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명상적 방식으로 마음속으로 중계방송하듯이 또박또박 언어로 읊조리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안전하게 풀 수 있다. 다른 방법은 글로 쓰는 것이다. 다 쓴 후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없앤다. 이때 약간의 의례(ritual)를 더할 수 있다. 종이를 불에 태우거나, 파쇄기에 넣고 갈아 없애는 과정을 또렷하게 지켜보면서 자신의 속마음의 흔적이 사라지는 이미지를 내면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내면에 풀지 못하고 저장된 기억의 무게를 줄일 수 있다.     

 

자신의 속마음을 풀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의 사례처럼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을 때 속마음을 풀 수 있다. 혼자서 풀기 어려울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좀 더 안전하게 푸는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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