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기 평가와 충족되지 못한 느낌 속에서 그는 계속 다른 사람이 그보다 앞서고 있는지 뒤쳐져 있는지 재고, 그가 무엇을 성취했는지 계산하면서 스스로 위축감을 느낀다. 그가 남들보다 더 많이 갖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이 위축된 감정은 위장된, 충족되지 못한 허영심의 표시다.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얼마나 뛰었다고?” 필자인 나는 부동산 뉴스만 보면 배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 내가 20년 이상 살던 집을 2년 전에 팔았는데, 그 집값이 2년 사이에 두 배 올랐을 때다. ‘팔지 말고 그냥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후회와 자책감이 올라왔다. 나는 남들에 비해 졸지에 ‘벼락 거지’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같은 동네에서 내 집을 살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내 마음속에서는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라는 생각이 나를 부추긴다. 짜증도 나고 화난 감정도 올라온다. 남들과 자꾸 비교하면 내 마음만 아프다. 배가 아프다 못해 뒤틀리는 느낌이다. 이런 비교도 하지 말아야 할까? 세상은 불공평한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아픈 내 마음을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요술 방망이로 위로해본다. 2년 뒤 현재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는 것 같다. 세상은 요지경이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두고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부정적인 마음을 막을 수는 없다. 경제 사회 시스템의 불공정과 불의, 부당함에 대한 자신의 ‘공분(公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공분과 달리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있다. 자신에 대한 자책, 분노, 초라함, 창피함, 두려움, 걱정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애써 일군 집을 눈앞에서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이 올라온다. 어떤 사람은 집값이 더 올라 표정을 관리한다. 자신은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한다. 세상이 도박판 같이 느껴진다. 집을 판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그래도 자신은 아직 마음속으로 그 결과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은 남의 집값 상승에 대해 배가 아프기 때문이다.
나이 50이 되면 비교 늪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50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성적표와 남들의 성적표가 서서히 드러난다. 같은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받아 들고 있는 성적표를 보고 있으면 자신의 성적은 초라하게 느껴진다. 아는 지인은 집을 두 채를 가지고도 세금 문제로 열을 올리고 있다. 자신은 그런 집이 있기만 해도 그저 부러울 뿐이다. 주식을 잘해서 노후 자금을 빵빵하게 준비한 지인도 있다. ‘언제 저렇게 재테크를 잘했을까?’ ‘나는 그동안 뭘 했지?’라는 자책감만 올라온다. 마음속에서 ‘내가 참 바보같이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올라온다. 교사와 공무원인 지인은 퇴직 후에 연금만으로도 여유 있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냥 노후 걱정 없어 좋겠다.’라는 생각이 올라오면서 ‘나는 또 뭘 했나?’ 하는 자책을 한다.
사람들은 왜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는 걸까? 자신의 삶의 성적표를 이 사람과 비교하고 저 사람하고 비교한다. 자신보다 잘난 사람만 보이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나이가 20, 30, 40대에는 산 정상을 향해 달리느라 주변을 의식하지 못했다. 누가 어떤 나무를 심고 있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게 이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몰랐다. 50은 자신의 삶을 중간 정산하는 시기다. 남들이 어디까지 달려갔는지, 손에 어떤 것을 들고 있는지 알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온다. 남들이 성취한 것이 궁금하다. 어떤 사람들은 남이 자신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다면 불안함을 느낀다. 재산, 지위, 명예, 학력, 영향력 등에서 자신보다 훨씬 앞선다. 자신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괜히 남의 것을 봤다는 후회가 생긴다.
남들은 언제 저렇게 준비했지? 비슷한 시간이 주어진 삶이었는데 누구는 CEO가 되고 임원이 되었다. 누구는 의사나 변호사가 되어 정년을 염려하지 않고 산다. 자기는 뭐라도 제대로 성취한 게 없는 것 같아 불안감이 올라온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있다. 다른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남이 잘되는 것을 기뻐해 주지는 않고 오히려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을 빗대는 말이다. 또한 사람은 당장 배고픈 건 참을 수 있지만, 남의 잘되는 꼴을 보고 배가 아픈 건 못 참는다’라는 말도 있다. 자신은 이제 남의 성취에 대해 배가 아픈 정도가 아니라 넘보지 못할 벽이라는 걸 느낀다. 이때 자기 자신을 추스르지 못하면 비교의 늪에 빨려 들어간다. 자신의 내면에서 좌절감, 후회, 불안, 위축감, 열등감의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것을 나이 들면서 더 느낀다. 남과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모든 게 불공평하다. 태어난 유전자부터 자란 환경도 차이가 난다. 자신이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지 못하면 영원히 감사함을 느끼지 못한다. 50대에 남과의 비교는 자칫 자신의 열등감을 회복하기 위해 충동적인 행동을 하도록 부추긴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이 있다. 자신을 노리고 있는 남의 사탕발림에 재산을 몽땅 갖다 바칠 수 있다. 50은 지금까지 자신이 거둔 성과물을 잘 갈무리하는 시기다. 자신이 만족한지 행복한지는 남이 만든 잣대가 아니라 자신이 만든 잣대를 충족시켰는가에 달려 있다. 자신은 그 잣대를 다른 방법으로 정할 수 있다. 예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하는 잣대이다. 남과 비교하는 잣대는 저 멀리 던져버려야 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한다. 삶의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비교하고 긍정적 부정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일반적인 심리적 과정이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하는 사회적 비교(social comparison) 경향은 생존과 적응을 위한 중요한 심리적 기능이라고 한다. 연구에 따르면 노인들이 자신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는 ‘상향비교’ 태도는 스트레스를 높이고 삶의 질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한다. 현대인들의 삶의 필수적 도구인 SNS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타인과 비교를 많이 할수록 자존감이 낮아지고, 삶의 만족도가 낮아진다고 한다. 반면에 자신보다 형편이 못한 사람과 비교하면 기분이 나아지고 주관적 웰빙을 경험한다고 한다.
집값이 너무 올라 이 지역을 떠나야 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그 반대의 상황도 상상해 볼 수 있다. 남들은 집값이 올라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을 텐데(반대로 집값이 내리기 전에 팔아서 다행이다). 세상은 요지경으로 불공평하게 보인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방향을 알려준다. 세상은 공평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삶은 새옹지마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물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무엇이 더 소중한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고 알려준다. 연구에 의하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하는가에 따라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눈만 뜨면 온통 잘난 사람들만 보인다. 인터넷, SNS, 스마트폰, TV에 나오는 사람들은 자신을 주눅 들게 한다. 비교의 늪으로 자신을 끌어당긴다.
자연인처럼 비교의 늪을 메워버릴 수도 있다. 남과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도시의 삶의 환경을 아예 차단해버리는 것이다. 삶의 주인은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방식으로 살 수 있다. 한적한 곳에서는 비교할 대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보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자연인은 불편할 것이 많을 것 같은데도 행복하고 만족하다고 한다. 비교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신의 내면에 있는 물질만능주의 잣대를 버려야 한다. 그 잣대를 사용하는 한 자신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물질만능주의 잣대는 강을 흐르는 격류와 같다. 자신이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이 격류에 휩쓸린다. 물질만능주의 잣대를 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욕구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의 인정 욕구, 안전 욕구, 안정 욕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욕구에 끌려가지 않고 그 욕구를 바라보면서 자기 자신을 다독여 주면 된다. ‘그래, 그렇구나, 돈에 쪼들리지 않고 살고 싶은 거구나’라고 중계방송하듯이 마음속으로 읊어주며 자신의 가슴을 안아주면 된다. 자신이 50까지 이룬 성과를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우월감도 열등감도 알아차리고 인정해야 한다. 어떤 감정이나 생각, 욕구도 따뜻하고 친절하게 자신이 보듬어야 한다. 자신과 남을 비교하는 늪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있다. 어떻게 말대로 쉽게 될까? 자신이 비교하는 생각을 관찰하면 된다. 비교하는 생각이 올라오는 것을 알아차리면 된다. 그리고 ‘비교하려는 생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중계방송하듯이, 시냇물 위를 떠내려가는 나뭇잎을 바라보듯이 거리를 두고 마음속으로 읊어주면 된다.
나이 50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적절한 시기다. 50년을 살면서 경험한 노련함과 배짱도 두둑하다. 당장 자신 앞에 닥친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남과의 비교는 주변의 눈치를 보게 하고 체면을 의식하게 된다. 후회하지 않는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모든 경험을 샅샅이 관찰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과 완전한 소통이 될 때까지 섣부른 결정은 미루어야 한다. 자신의 삶은 자신만이 평가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데 왜 남의 눈치를 봐야 할까? 이광형 KAIST 총장은 취임사에서 “친구들과 경쟁하지 말고 나 자신만의 고유한 빛깔을 찾으라”라고 했다. 하늘에 수많은 별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각자의 별들은 각자의 빛을 내고 있다. 그것들이 한데 모여 하늘을 수놓는다. 자신의 삶은 저 하늘에 빛나는 유일한 하나의 별이다!
(Tip) 스트레스 받지 않는 비교의 방법(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해 보기)
남과의 비교는 생존을 위한 본능적 반응이다. 주변의 대상이 자신을 위협하는지 아닌지 민감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반응해야 한다. 자신을 위협하는 대상이라고 판단되면 비상사태를 발령하고 신속한 생존 반응을 해야 한다. 지나치게 예민한 비교는 자신을 불안하게 만든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 비교가 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것을 비교하는 것이다. 자신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자신이 어려움을 딛고 지금의 성과를 낸 것을 비교하는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대견해 보일 수가 없다. 그리고 자신의 통제 밖에 있는 것은 받아들이자. 자신의 통제 밖에 있는 남의 것을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 잣대와 상대방의 잣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 순간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내면 경험을 알아차리면 남과의 비교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