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택이다. 여기서 선택은 고통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것이 아니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것이냐 아니냐에 대한 것이다.
-스티븐 헤이즈(Steven C. Hayes)-
나이 50이 되면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의 삶을 정리해보는 시기다.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던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내 인생의 즐거움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필자인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재미있어하는 게 무엇인지 몰랐다. 나는 영화가 좋아서 하루에 영화관을 세 곳을 돌아다닌 적은 있다. 그 외에 내가 특별하게 무엇에 빠져본 적도 없다. 나는 남들 하는 대로 따라서 취직하고 가정을 꾸리고 회사생활 성실하게 한 게 전부였다. 나는 눈과 귀 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그냥 앞으로 달리기만 했다. 나는 ‘내가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 왜 달리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럭저럭 내 삶은 평탄하게 흘러가는 줄 알았다. 나는 40대와 50대에 두 번이나 거센 폭풍우를 만났다. 다시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내가 가졌다고 뿌듯해했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고 헤맬 때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나는 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하면서 다시 내게 물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배가 부르니까, 이제 살만하니까 삶의 의미 타령을 하는가?’ 삶의 의미 그런 골치 아픈 것 몰라도 자신은 잘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돈 걱정 없이, 부부 사이 괜찮아서 편안하다.’ ‘나는 자식들 결혼해서 가정 잘 꾸려가고 있고, 자기 일 잘하고 있어서 든든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좋은 더 행복한 인생이 있는가?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행복의 경험은 조건적이라는 것을 잊고 산다.
50이 되면 굳이 삶의 의미를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 조건적인 행복의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행복의 느낌은 조건적이다. 한 가지 조건이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자신이 경험하는 행복의 느낌은 변한다. 필자인 나도 내 것이라고 믿고 있던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릴 때 정신적 혼란을 겪어봤다. 내 삶의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길을 잃고 헤매었다. 삶의 버스 운전대를 내가 잡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삶의 의미는 특히 자신이 시련을 겪을 때 잡고 일어설 수 있는 든든한 기둥과 같다. 깜깜한 바다 한가운데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자신을 안전하게 이끌어 줄 저 멀리서 깜빡이는 등대 불빛과도 같다.
사람의 삶의 과정은 높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자신이 올라가는 길을 잃었을 때 나침반(방향)과 지도(구체적 목표)가 필요하다. 지도와 나침반이 산에서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주듯이 삶의 의미도 자신의 삶의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자신의 삶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자신이 삶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구체적이고 고유한 것이다. 인디언들은 ‘세상에 잡초(雜草)라는 것은 없다.’라고 말한다. 모든 풀은 그 만의 목적을 갖고 세상에 나온 유일한 모습을 가진 그냥 풀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도 남들처럼 이 세상에 자신만의 목적을 가지고 나온 유일한 그냥 사람이다. 그래서 삶의 의미는 자신만 아는 비밀이다.
한국 가요 중에 “길”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의 가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자신의 길이 있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길이 맞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삶의 의미는 거창하고 고상한 것만이 아니다. 삶의 의미는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향이다. 삶의 방향은 목표가 아니다. 자신이 학위를 따는 것은 삶의 목표지 삶의 방향은 아니다. 학위를 따면 ‘힘든 사람들을 돕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여기서 ‘힘든 사람들을 돕는 것’은 삶의 방향이다. ‘힘든 사람들을 돕는 것’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하더라도 종착점이 없다.
나이 50이 되면 자신이 평소에 꿈꾸고 바라는 삶을 마음속에 구체적으로 그려봐야 한다. 자신의 간절한 소망(所望)과 원(願)이 담긴 삶의 방향 이정표를 세워야 한다. 삶의 의미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 동식물, 자연, 우주와의 관계를 포함한다. 삶의 의미를 그릴 때는 막연한 말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온전히 담겨야 한다. 자신의 마음이 온전히 담긴다는 의미는 먼 미래의 계획을 세우는 게 아니다. 자신이 있는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내면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면에 풀지 못한 응어리를 풀어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연민과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야 한다. 그냥 자신의 마음에서 저절로 올라오도록 기다려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아하! 그렇구나’라고 떠오른다.
50에 삶의 의미를 찾는 이유는, 이제 자신의 삶의 책임(responsibility)을 지기 위해서다. 책임진다는 의미는 자신의 어깨에 짐을 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에게 매 순간 다가오는 삶의 조건들에 어리석은 반응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자신의 삶의 방향에 맞추어 심사숙고하는 반응을 하는 힘을 키우겠다는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의 길을 처음 가본다. 한발 한발 내디디며 가야 하는 길이다. 두렵기도 하고 모르는 길이라 호기심도 생긴다. 나침반과 지도를 가지고 끊임없이 수정하고 방향을 조정하며 가려고 한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왜 가야 하는지 알고 걸어간다면 덜 불안할 것이다. 자기 자신과 매 순간 일어나는 삶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더 많이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나치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살아 나온 사람이다. 그는 자서전 《죽음의 포로수용소》에서 삶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다른 수용소에 간 부인과 어머니를 만나는 희망을 품고 살았다. 부인과 어머니의 죽음을 모른 채 심상으로 만나는 꿈을 꾸며 살았다. ‘부인과 어머니를 만나 예전처럼 사는 것’이 그의 삶의 의미였다. 어떤 사람들의 삶의 의미는 천직(天職)을 이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 ‘즐거움을 주는 사람’ ‘사람들의 고통에 동행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깨달음에 대한 믿음’ ‘성인의 삶을 본받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빅터 프랭클처럼 ‘시련을 겪고 있을 때 그 시련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것’ 일 수도 있다.
심리학에서 삶의 의미는 중요한 용어이다. 한 사람이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자신의 건강 지표와 음미하는 삶, 잘 적응하는 삶에 더 큰 주의(attention)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전반적인 관점으로 보게 된다는 의미다. 모든 사람에게 맞는 유일한 삶의 의미는 없다. 사람마다 각자의 삶이 다르듯이 삶의 의미도 다르다. 심리 치료와 심리적 건강 영역에서는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인식하는 것’을 적응적 대처 및 치유와 성장의 지표로 삼는다.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삶이 의미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덜 우울하고, 덜 불안하고, 덜 스트레스를 받고, 일에 대한 즐거움, 삶의 만족, 행복, 건강 심리학적 기능이 높아진다고 한다.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은 젊은 사람들에 비해 긍정 정서를 더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삶의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고 인식했을 때 삶의 의미는 더 크게 다가온다고 한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으려면 자기 자신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의 의미는 머리로 쥐어 짜내어 찾는 것이 아니다. 지식을 동원해 분석하고 평가해서 세운 계획이 아니다. 삶의 의미는 가슴으로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자기 자신’이라고 증명하던 것들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하던 역할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자신은 이름이 OOO, OO 회사 회장, OO0 의사, OOO 교수, OOO의 남편(아내), OOO의 아버지(어머니)… 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다. 어느 날 이런 타이틀이 없어진다면 자기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가? 아니다. 그대로 있다. 타이틀만 사라졌을 뿐이다. 실제의 자기 자신만 남는다. 이 ‘실제의 자기’가 무엇을 원하고, 재미있어하는지, 즐거움을 느끼는지 알아차리면 그게 바로 자신의 삶의 의미다.
(Tip!) 삶의 의미를 찾는 연습
먼저, 자신의 내면과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 다음은 자신이 성취하거나 좌절한 모든 경험에 담겨 있는 메시지를 성찰하고 재정리해야 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이룬 성과에 대해 스스로 충분히 인정해야 한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일은 ‘애썼다’라고 자신을 다독거려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내면에서 고개를 내밀고 올라오는 욕구를 외면하지 않고 부드럽게 안아주고 받아들인다. 이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삶이 이런 거구나’라고 번뜩 통찰이 일어날 수 있다. 너무 조급하게 머리 굴려서 짜내는 게 아니다. 저절로 솟아나도록 기꺼이 자신의 내면 경험과 소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