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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유 컴패니언 Dec 05. 2022

나를 따뜻하고 부드럽고 친절하게 보살피기

자각은 자비심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자비심은 자유롭게 친절을 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특징이다.

                                            -디팩 초프라(Deepak Chopra)-     


나이 50! 지금까지 자신은 남들에게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한만큼 자신에게도 그렇게 대한 적이 있는가? 아니면 남들에게는 혹독하게 대하면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는가? 남들과 자신에게 모두 똑같이 냉혹하게 대했는가? 지금도 사람들은 생존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착한 사람, 친절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 반면 자기 자신에게는 무뚝뚝하고 냉정하다.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슬픔, 불안, 두려움, 화남, 외로움, 기쁨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위로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자신은 남들 비위 맞추는 데는 전문가이지만, 자신에게 비위 맞추는 것은 사치로 여긴다. 무관심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무지(無知) 한 상태라고 봐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몸에서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오는데도 자신은 솔선수범의 가면을 쓴다. 자신의 배우자의 심기를 살피는데 전문가다. 배우자의 안색만 봐도 화가 났는지, 기분이 좋은지 알아차리고 적절하게 비위를 맞출 수 있다. 부모님의 전화 목소리만 듣고도 서운함을 알아차리고 바로 부모님의 마음을 풀어 드린다. 집에 들어오는 자식 얼굴에 짜증이 묻어있음을 알고 좋아하는 간식을 내어준다. 가까운 친구들과 만나서 친구가 털어놓는 괴로움을 싫은 기색 없이 다 받아주고 다독여 준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자신이 내주는 친절과 연민의 에너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의 내면에서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한다’라는 서운함과 짜증이 슬슬 고개를 내민다. 남들이 자신에게 친절의 에너지를 달라고 한 것이 아닌데도 다 뺏긴 느낌이 든다.    

 

필자인 나는 40대와 50대에 일터에서 두 번에 걸쳐 상처 입은 경험이 있다. 40대에 상처받았을 때는 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책을 많이 했다. 내가 하는 행동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 당시에 누구도 내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지만, 내 안의 나를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과 더 악착같이 싸우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내가 완벽하지 못하면 더 당할 수 있다고 겁을 주었다. 너무 긴장되고 에너지가 소진되어 내 몸과 마음 곳곳에 이상이 나타났다. 나는 살기 위해 연민과 친절의 에너지를 만드는 연습을 했다. 내 안의 비판자를 잠재울 수 있었다. 나는 50대에 또 한 번 상처를 입었다. 나는 일시적으로 휘청거렸지만, 내 안의 연민과 친절의 에너지로 위로하고 다독여서 바로 일어날 수 있었다.     


나이 50에는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통찰하고 아쉬웠던 부분은 다시 채워나가는 시기이다. 지금까지 자신은 누군가에게 연민과 친절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주었다. 이제 자신에게 쓸 수 있는 에너지가 거의 남아 있지도 않다. 자신의 삶은 한마디로 속 빈 강정처럼 느껴진다. 나이 50까지 열심히 살았다. 삶에 대해 그렇게 고민하지 않고 살았다. 사는 게 다 이런 것이겠지 하고 살았다.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한다는 말은 어색하게 들렸다.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신을 소홀히 하면서도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썼다.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바란다. 행복한 삶은 자신의 내면이 충만하게 채워짐을 의미한다. 내면이 텅 빈 상태에서는 행복을 경험할 수 없다.     

      

50 이후의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채우기 위해 자신의 내면에 연민과 친절의 에너지를 채워야 한다. 지금까지 사용한 에너지는 자신의 내면에서 저절로 우러나온 에너지가 아니다. 다른 용도로 쓸 에너지를 억지로 끌어다 쓴 에너지다. 새로 채울 에너지는 자기 자신을 어루만져주고 보듬어주고 다독거려 주는 에너지다. 지금까지 남들에게 베푼 친절과 연민의 에너지와는 순도와 질이 다른 에너지다. 새로 채울 에너지는 한 번 채워지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자신이 의도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솟아난다. 지쳐 있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먼지를 털고 밖으로 나가도록 격려한다. 지금까지 생존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상처 입은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치유해준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주는 에너지다. 자신을 남들과 ‘비교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심리학자들은 자기 연민(Self-Compassion)과 자기 친절(Self Loving-Kindness)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연민은 자신이 겪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자신이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기 친절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게 따뜻한 사랑의 마음과 이해를 베풀어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린아이 때 엄마가 아기의 기저귀를 찡그리지 않고 기꺼이 갈아주는 것과 같다. 괜찮을 거라며 자신의 엉덩이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토닥토닥 두들겨 주는 것과 같다. 자신의 몸과 마음의 조건 그대로를 남과 비교하지 않고 안아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격려해 주는 것이다.   

   

자기 연민과 자기 친절은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괴로움을 무시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같이 머물며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도 하고 괴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다독거려 주는 것이다. 자신이 실수하거나 좌절을 겪는 그 순간 몸과 마음에서 어떤 경험이 올라오는지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이다. 자신이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사람은 완벽하게 살 수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부족하다고 잘못했다고 몰아붙이는 습관이 있다. 자신 안에 있는 비판자가 발언하기 시작할 때, ‘멈춤’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쳐라. 손뼉을 쳐도 된다. 살갗을 꼬집어도 된다. 그리고 호흡을 한다. ‘이만큼이라도 했으니 다행이다’ ‘수고했다’ ‘애썼다’ ‘내가 그 일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하라. 내가 건강하고, 안전하고, 평안하고, 즐겁게 살기를 바란다’라고 마음속으로 다시 분명하게 읊어준다.


50에는 자기 자신을 좀 더 너그럽게 대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의 마음이 너그러워지면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도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자기 자신의 여러 측면 중에서 선택적인 측면을 면밀하게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에서 이를 ‘자기 비판(self criticism)’이라고 부른다. 자기 비판은 자신을 성찰하는 긍정적인 과정으로 작용할 수 있는 반면에, 지나친 자기 비판은 자기 자신을 반추적인(ruminative) 부정적 정서에 빠지게 한다. 자기 비판은 대부분 습관적이고 자동적인 부정적 대처 반응이다. 자기 비판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비관적 신념을 강화할 수 있다. 또한 대인관계에도 지나친 방어기제로 작용하여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게 한다. 특히 우울과 완벽주의는 강한 자기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좌절하고 괴로움에 빠진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 속에서 상처의 흔적이 여기저기 있을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기 위해 자신을 들볶는다. 자기 자신이 긴장하고 예민해진다. 스트레스를 받고 실수도 한다. 그럴수록 자기 자신은 자신의 행동을 비난하고 자신을 더 몰아붙인다. 남의 비판보다 자기 자신의 비판이 더 자신을 위축시킨다. 자신이 자기 스스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 자신의 내면 비판자가 힘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냉정한 자기 비판의 칼날을 자기 연민과 친절의 부드러운 에너지로 바꾸는 심리치료적 개입법이다.      


바로 자기 연민과 친절의 에너지를 자신의 내면에 불어넣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 남아 있는 상처의 흔적을 연민과 친절의 에너지로 치유할 수 있다. 많은 심리치료 연구에서 자기 연민과 자기 친절의 의도적인 훈련으로 자기 자신을 향한 부정적인 비판과 부정적인 정서가 줄어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훈련을 통해 사람들은 삶의 스트레스를 더 잘 견디고, 우울, 불안, 두려움 등 부정적 정서도 덜 경험한다고 한다. 이후의 자신의 삶에서 맞닥뜨리는 스트레스와 삶의 과제도 연민과 친절의 에너지로 부드럽게 파도를 타고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휘청거릴 때 바로 팔을 내어 잡아줄 것이다. 자신의 내면 비판자는 자신의 마음이 좁을 때 더 잘 싸운다. 자신의 마음의 공간이 커지면 힘을 쓰지 못한다. 자신의 내면 비판자는 숨을 죽이고 한쪽 구석으로 조용히 물러난다.      


(Tip!) 자신의 내면에 있는 비판자를 부드럽게 길들이기

자신의 내면에 연민과 친절의 에너지를 불어넣으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혼자 조용하게 있을 장소와 최소 5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의자에 앉거나 바닥에 앉아 몸을 이완한다. 눈은 정면을 바라보며 지긋하게 감는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의 내면에서 어떤 경험이 올라오는지 알아차린다.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 마음에서 올라오는 생각, 감정, 욕구를 알아차린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가슴이 꾹 눌리고 답답한 느낌이 올라오면 그 감각에 이름을 붙이고 마음속으로 중계방송하듯이 읊조린다. ‘내 의식 공간에 가슴이 꾹 눌리고 답답한 느낌이 올라오는구나, 이런 느낌이 올라오는 것을 나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라고 읊어주면 된다. 다른 생각이나 감정, 욕구도 마찬가지로 하면 된다.      

    

2분 정도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적절한 거리에서 지켜본다. 다음에는 눈을 감은 상태에서 심상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자신이 괴로움을 겪을 때 이미지나 어릴 적 이미지도 괜찮다.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으면 자신의 이름 글자를 한글이든 한자든 한자씩 또박또박 심상으로 떠올리면 된다. 숨은 고르게 천천히 들이쉬고 내쉰다. 자신의 이미지가 떠오르면 그 이미지에 주의를 가져가서 지긋이 바라본다. 얼굴은 웃고 있는지, 옷매무새는 단정한지 알아차린다. 어머니가 갓난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듯이 심상으로 자신의 손을 크게 뻗어 부드럽고 따뜻하게 자신의 이미지를 안아준다.     


‘견디느라 애썼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수고했다’ ‘고생했다’ ‘다행이다’ ‘이제 그만큼 했으면 잘했다’라고 마음속으로 중계방송하듯이 자신의 이미지의 귓속에 대고 말을 한다. 자신의 이미지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주면서 말을 한다. 자신의 마음에 쌓여있는 원한, 억울함, 분노, 슬픔, 배신감, 적개심 등의 부정적 감정을 하나씩 떠올린다. 그리고 ‘내가 그 감정(원한 등)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라고 토닥여주면서 말을 한다. ‘이제부터 건강하기를’ ‘이제부터 안전하기를’ ‘이제부터 평안하기를’ ‘이제부터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즐겁게 살기를’이라고 토닥이면서 말을 한다. 이때 실제로 내 양손을 X자로 교차해서 가슴 위에 올려놓고 너무 빠르지 않게 토닥여도 된다.      


자신의 내면에 연민과 친절의 에너지가 채워진다. 에너지가 채워지는 만큼만 밖으로 나온다. 마르지 않는 에너지다. 지금까지 고생한 자신을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주자. 이보다 더 큰 위로와 격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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