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진실에 머무르는 법을 배우면 우리는 관계적인 이미지나 자기를 한정시키는 집착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자넷 서레이(Janet L. Surrey)-
은퇴와 노후에 대한 전문가들은 돈, 건강, 소일거리와 함께 ‘관계(關係relation)’를 노후 준비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관계는 자신과 남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이보다 더 중요한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포함한다. 더 나아가 자신과 자신이 사는 지역사회, 자연환경, 지구, 우주와의 관계로 넓힐 수 있다. 사람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고 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며 사는 삶에 넌더리가 나서 사람 그림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 수도 있다. 산속에서 자기 혼자 산다고 하더라도 혼자 사는 게 아니다. 자연이 주는 음식과 물, 공기, 흙 등의 도움으로 살 수 있다. 사람은 이 우주의 모든 것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자신이 한 번 쉬는 들숨과 날숨으로 식물과 공생한다. 자신의 몸은 부모로부터 받은 세포와 유전자로 연결되어 있다.
학자들은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약 30조 개 정도라고 한다. 또한 몸의 세포와 같이 사는 미생물 세포도 그 이상이라고 한다.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은 모든 것과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 어디로 달아날 수도 없는 숙명에 놓여있다. 누군가가 그랬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한다고.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자기가 주도적으로 끌고 가고 싶어한다. 자신이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생명체라면 피하지 말고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먼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와 이해타산적인 관계를 가려내어 차근차근 정리해나가야 한다. 같이 살아야 하는 관계는 더 살갑게 친밀하게 다가가야 한다. 그렇지 않은 관계라면 실수하지 않을 정도로만 유지하면서 기대를 서서히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이 나이 들어서 정치에 뛰어들 것이 아니라면, 관계는 재설정해야 한다. 사회생활과 직장 생활에서 요구하는 역할 시기에 맞게 조정해 나가야 한다. 자신이 투자한 돈과 시간, 에너지가 얼마인데 하면서 명함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미련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나이 50부터는 노화에 맞춰 몸집부터 가볍게 유지해야 한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어쩔 수 없이 맺고 가야 하는 사람 이외에는 욕심부리지 않아야 한다. 굳이 직장 관계는 걱정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끊어져 나간다. 이 관계는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만 하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자신의 직장과 관련된 사회적 관계도 거품처럼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은퇴 후에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제부터 관계의 양은 필요 최소한도로 줄이고 관계의 질을 높여 나가야 한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매 순간 관계를 맺고 살고 있다. 이제까지의 오직 관심의 우선순위는 직장과 사회생활에서의 자신의 역할 관계이다. 자신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는 그냥 관심을 기울여 가꾸지 않아도 되는 줄 알고 있다. 또한 자신은 가장 소중한 관계를 소홀히 하거나 관계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의 몸 안의 절친들과 관계를 맺지 못한다. 자신이 쉬는 숨은 저절로 쉬어지는 것이고, 소화는 위장이 알아서 시켜주고, 심장도 알아서 움직여주는 줄 안다. 심장과 위장, 근육 등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자신을 살려주고 있었지만, 자신은 알지 못한다. 자신의 몸은 자기 자신에게 무조건적인 사랑만 주었지만,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몸은 소통하는 관계가 아닌 갑질하는 관계이다. 자신은 진정으로 자신의 몸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자신은 매 순간 자신의 마음에서 올라오는 절친들 만나기가 두렵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생각, 감정, 욕구를 어떻게 대할지 몰라 혼란스럽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절친들은 자신과 관계를 맺고 싶어 손을 내밀지만, 자신은 뿌리치고 달아난다.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의 생존에 꼭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는데도 자신은 거절한다. 자신의 마음에서 올라오는 절친들과 이제 무덤덤한 관계로 지내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믿었던 사람이 나를 서운하게 할 때조차 애써 모른 척한다. 자신의 마음속의 절친들은 이해받지 못하고 온몸 구석구석에 숨어서 훌쩍인다. 이제 자신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친절하게 다가가지 못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 심장에 부정맥이 생긴다. 잠을 잘 자지 못하고 대장에 결핵이 생긴다. 마음에 공포증이 나타난다.
자기 자신이 자신을 알아야 다른 사람을 알 수 있다. 상대방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몸에서 올라오는 감각과 친절하게 관계를 맺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서 지금 이 순간 올라오는 생각, 감정, 이미지, 욕구, 바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속에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는 기억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가장 든든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든든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올라오는 절친들과 거리낌 없이 소통하는 것이다. 모든 관계의 출발은 자ᅟ긱 자신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안에서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고 나면 자신과 가까운 사람,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는 저절로 이루어진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와 자식들, 부모님, 형제, 친구들과 친밀하게 관계 맺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태어나서 누구에게서도 배운 적이 없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깝고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지 못한다. 혹시나 지금의 관계마저 끊어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못마땅하다는 생각과 감정이 올라와도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면서 숨긴다.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생각이나 감정, 욕구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은 좋은 사람, 착한 사람, 원만한 사람,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고 싶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인 척하느라 애를 쓰고 있다. 자기 자신과 진정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내면 경험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면 남의 경험과도 연결되지 못한다. 진정한 관계, 건강한 관계, 든든한 관계는 자신의 내면 경험과 만날 수 있을 때 시작된다.
나이 50이 되면 자신의 일과 직장, 그리고 사회적인 역할 속에서 맺은 관계가 늘어난다. 소위 ‘마당발’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인맥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입만 열면 권력, 재력, 권위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의 이름을 줄줄 쏟아낸다. 그들은 이해관계의 달인이다. 이해관계는 자신과 상대방이 뭔가 서로 주고받을 수 있을 때 유지된다. 이해관계 속에서는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계의 달콤한 유혹에 빠지면 사회적 거간꾼 노릇을 하게 된다. 이런 역할도 하다 보면 중독된다. 나이 50부터는 자신과 주변의 관계를 재점검해야 할 시기이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시간과 에너지가 쓰인다. 이해관계로 맺은 사람에 대해 괜한 기대는 하지 않아야 정신 건강에 좋다.
‘내가 얼마나 챙겨주고 아껴주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고 배신감을 토로하지 않기 위해서다. 상대방은 처음부터 이해관계로 충실히 자신과 역할을 주고받았을 뿐인데 자신이 욕심부린 것이다. 인간은 서로 관계를 맺고 의존하면서 사는 존재이다. 관계를 맺는 것은 자신의 생존에 필수적인 안전장치이다.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지만 건강한 관계, 나아가 진정한 관계를 맺고 싶은 것이다. 자신은 내향적이라서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을 어려워하는 데 회사 동료는 외향적이라 마당발이다.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삶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마당발 관계를 유지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관계의 질을 높이는 데 쓰면 된다. 사람의 삶의 질은 관계의 양이 아니라 관계의 질에 달려 있다.
사람은 관계로 인해 상처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관계로 인해 불행해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50 이후의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관계의 질을 높여야 한다. 관계는 상호작용의 과정이다. 지구와 달은 최적의 상호작용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지구와 태양도 마찬가지다. 조금이라도 한쪽의 힘이 더 세지거나 약해지거나, 거리가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면 관계는 깨진다. 관계가 깨진다는 것은 재앙이다. 자신의 삶에서 만나는 관계도 마찬가지다. 심리학의 연구에서도 서로 간에 적절한 관계, 적절한 심리적 거리(psychological distance)를 유지할 수 있어야만 관계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건강한 관계는 적절한 심리적 거리가 유지되는 관계이다. 자신과 상대방과의 적절한 심리적 거리는 ‘지금 여기(here and now)’의 자신으로부터의 거리다.
적절한 심리적 거리는 자신의 선입견, 기대, 바람, 욕구, 애착, 혐오를 내려놓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거리다. 자신과 상대방의 접촉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의 경험(감각, 생각, 감정, 욕구, 심상)과 관련되는 거리다. 자신의 경험을 판단과 검열, 필터로 거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알아차리는 ‘상위인지적 알아차림(metacognitive awareness)’의 상태다.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경험과 심리적으로 지나치게 가까우면 그 경험 속에 빠져버린다. 반대로 지나치게 거리를 두면 남의 경험인 듯이 지나친다. 모든 건강한 관계의 토대는 자신의 내면의 경험과 맺는 관계의 질에 달려 있다. 심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의존과 집착에 빠질 수 있다. 내 삶과 상대의 삶이 뒤섞인 관계중독에 빠진다. 심리적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데면데면한 사이가 된다.
(Tip!) 건강한 관계 유지하기
심리적 경계를 설정하고 자신이 넘어가지도 말고 남이 일방적으로 넘어오지도 못하도록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해놓아야 한다. 이 방어선을 힘으로 또는 억지로 넘는 사람이 있다면 관계는 깨져도 좋다. 그런 사람과는 관계를 깨는 것이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할 필요 없다. 관계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겉 포장만으로는 관계의 질을 높이지 못한다.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형식적인 대화 기술은 자칫하면 관계를 더 나빠지게 할 수 있다. 대화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지금 어떤 경험이 올라오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면 자기 자신과의 대화도 안 되는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 상대방과 대화가 될 리가 없다. 아무리 고상하고 예쁜 단어를 구사한들 다가가지 못하는 소음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