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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유 컴패니언 Dec 05. 2022

내가 나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불행하게도 마음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을 자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내면의 감정, 생각, 감각, 외부 상황에 늘 자동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프랜신 사피로 Francine Shapiro-     


분석심리학자 칼 융(C. G. Jung)은 50대를 심리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엄청난 충격을 경험하고서야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이 든 사람은 자기를 진지하게 관찰하는 데 전념하는 것이 의무적이자 필요’라고 강조한다. 자기 각성을 하지 않으면 건강염려증 환자, 구두쇠, 융통성 없는 원칙론자, 지난 시절만을 칭송하는 자로 되어간다고 한다. 50대는 점점 보수적 성향을 보이기 시작하고, 자신의 뒤를 자주 돌아보게 되며, 50 이후의 삶은 단순한 50 이전의 연장전이 아니라 자신만의 의미와 목적이 필요하다고 한다.   

  

50대는 신체적·정신적 건강 요인이 위협받는 시기이다. 한국인의 건강상태 실태조사 통계에 의하면 주관적 건강 인지율은 20대에 40.9%에서 나이가 들수록 낮아져 50대에는 27.1%로 낮아진다. 또한 스트레스 인지율은 20대에 34.9%에서 50대에는 26.9%로 떨어진다. 걷기 실천율은 20대에 45.1%에서 40대, 50대에 35.1%, 36.3%로 낮아지다가 60대 이후는 42.4%로 높아진다. 이때 건강의 중요성을 알아차리고 건강행동을 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2021년 정신장애 진단을 받은 한국인의 연령대별 분포에서 50대가 31.4%로 40대 28.5%, 60대 29.4%, 70대 27.4%, 20대 23.5%에 비해 가장 높다. 한 연구에 의하면 생애주기별 행복도에서 50 이후부터는 특히 건강, 시간적 여유가 행복에 가장 필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0대는 자본주의 생존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몸과 마음을 오랫동안 사용했다. 사소한 일상적인 스트레스에서부터 충격적인 경험까지 하면서 몸과 마음에 상처가 쌓여 있는 상태다. 겉은 멀쩡하게 보여도 속은 상처로 여기저기 곪아있다. 인생 후반전을 무리 없이 잘 운행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에 고장 나고 닳은 부품을 전면 교체해야 할 시기다. 특히 50 이전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경험한 사람은 삶의 총체적인 점검과 수리를 해야 한다. 큰일을 치르고 나서 한숨 돌릴 때 몸과 마음속에 누적된 상처가 덜컥 병으로 드러난다. 칼 융이 말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음미하면서 먹고 자고 움직이는 생활 습관과 삶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내가 심리 상담이나 개인적인 관계로 만나는 사람 중에는 안타까운 사람의 사례를 자주 마주한다. 직장이나 사업에서 한창 성과를 낼 시기에 주저앉은 것이다. 이제 40 후반이나 50 초반인데, 자신감을 잃고 몸과 마음은 통제력을 잃는다. 일에 대한 열정과 의욕을 잃고 신체적 질병으로 병원에 환자로 등록한다. 일 자체의 어려움보다는 사람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 경우가 더 많다. 안타까우면서도 공감이 간다. 필자인 나도 그들과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막상 한번 이런 일을 당해서 주저앉고 나면 좀처럼 혼자 일어서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굴속으로 숨어 들어가서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붙들고 자책하고 원망하고 분노와 적대감, 무기력함, 절망감의 화살을 쏘아댄다.  

    

필자인 내가 40대 중반에 상처의 늪에 빠졌을 때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소환해 본다. “‘이래야만 돼’, ‘이러면 안 돼’라는 내 기준과 규정, 도덕, 법, 정의, 양심, 믿음에 어긋나는 상황을 만나면 내가 공격받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애써 지켜온 안전한 환경이 위협받는다고 받아들였다. 나의 ‘안전함’에 대한 믿음을 깨버린 사람을 응징해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배신감, 분노, 혐오, 적대감, 수치심, 모멸감, 무기력함, 좌절감, 통제력 상실감, 절망감이 올라왔다. 마음속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끝도 없이 재잘거렸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기 위해 내 몸은 24시간 쉬지 않고 최고 수준의 각성상태를 유지했다. 내 몸과 마음은 점점 더 긴장되고 예민해졌다. 이런 상태가 6개월을 넘어가면서 내 몸과 마음에 이상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장 부정맥 진단을 받았다. 잇몸이 녹아내리고 치아가 흔들렸다. 변비로 치열 수술을 했다. 대장결핵 치료를 하고, 불면증에 공황을 경험했다. 비행기부터 시작해서 기차, 터널, 지하실, 엘리베이터, 지하철 등으로 공포증으로 삶의 영역이 좁아져 갔다.”   

  

스트레스 과학자들은 사람의 몸과 마음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자극을 받는 순간 우리의 몸은 뇌와 심혈관계, 자율신경계와 내분비계, 면역계가 신호를 주고받으며 생존 유지 활동을 시작한다. 이때 근육은 심하게 긴장되고 심장은 빠르게 펌프질을 한다. 마음속에서는 당혹, 놀람, 두려움, 불안, 공포, 수치, 화, 격노 등의 감정이 일어난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내외부 자극에 대해 자동적·부적응적으로 반응하는데 습관화되어있다. 따라서 사람은 같은 스트레스 자극을 받더라도 각자의 반응에 따라 스트레스 수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필자인 내가 만약 스트레스 자극을 받고 있을 그 당시에 좀 더 숙고(熟考) 반응을 할 수 있었다면, 내 몸과 마음은 덜 괴로웠을 것이다. 나를 살리고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값비싼 체험을 한 셈이다!      


50대는 자기 자신과의 소모적인 싸움을 그만두는 지혜의 눈을 길러야 한다. 독일의 철학자인 한병철은 현대사회를 ‘성과사회’, ‘피로사회’로 진단한다. 사람들은 노동을 어떻게 할지 또는 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경쟁한다. 끝없이 자기가 만든 기대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초조와 강박에 묶여 있다. 자신을 끝까지 따라다니는 열등감을 뛰어넘기 위해 자기와의 싸움에 더 빠져든다. 결국 자기에게 폭력을 가하고 자기를 착취하는 꼴이 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치고 탈진(burnout)한다. 그래서 한병철은 탈진을 자발적인 자기 착취의 병리학적 결과라고 본다. 50대는 지금까지 지난 50년 동안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자기 착취’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고 성찰할 시기다.    

  

현명한 사람들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구구절절 개인의 조건에 따라 준비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 칼 융이 언급한 것처럼 엄청난 충격적인 경험을 하고서야 정신을 차린다면 위험이 따른다. 상처의 늪에 한 번 빠져보면 생각처럼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빠져나와서 회복되더라도 몸과 마음에 상처의 흔적이 남는다. 치아나 잇몸 손상 등으로 본래의 신체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사람마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영역이 있다. 내게는 엄청난 충격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반대도 있을 것이다. 나의 삶과 남의 삶을 함부로 비교하지 않아야 한다. 모두 각자의 위치와 조건에서 최선의 삶을 살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삶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      


(Tip!)상처의 늪을 건너가는 방법

먼저, 혼자 고민하지 말고, 그 스트레스 상황을 나눌 사람을 찾아라. 다음으로 운동, 식사, 수면 등 생활 습관을 건강행동 방식으로 유지해야 한다. 자극적, 쾌락적, 습관적 대치물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달콤하고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 카페인, 알코올, 담배, 약물, 게임, 도박, 복권, 지나친 취미와 운동 등으로 환상을 채우면 채울수록 상황은 되돌릴 수 없는 더 나쁜 방향으로 흘러간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성장을 위한 기회로 삼아 심리 상담 등 전문가를 찾아 조언을 듣거나, 스트레스 관리, 소통과 관계 훈련, 심리치료를 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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