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인생은 대나무가 자라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아 좋을지 모르겠다. 대나무는 마디마디가 단단히 자라야 한다. 어떤 한 마디가 약해지면 이다음에 그 마디가 병들어 부러지게 된다.
-김형석 철학자-
나는 40대 한 번, 그리고 50대에 한 번 큰 심리적 충격을 당한 경험이 있다. 40대에 받은 충격은 내가 통제 능력을 전혀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경험했다. 마음의 상처를 받고 회복할 면역력이 전혀 없을 때이다. 그냥 하루가 무난하게 지나가던 일상이 한순간에 혼란 속에 빠졌다. 몸과 마음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받았다. 내가 꿈꾸던 평범하고 소소한 삶이 물거품처럼 터져버린 느낌이었다. 벌어진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다. 이 사태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몰랐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상대방 탓으로만 돌렸다. 내가 내 몸과 마음에 독화살을 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나는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데 비싼 대가를 치렀다. 상대방이 내게 한 행동은 분명 못된 짓이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 내가 대응한 방식도 슬기롭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옛말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고 한다. 나는 그 당시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정신을 차린다면 살 수 있을까? ‘정신을 차리면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라고 하는 게 현실적인 대답일 수 있다. 정신을 차린다면 어떤 능력이 생길까? 지금 자신이 처해 있는 조건 또는 상황을 좀 더 전체적인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이 처한 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이 보인다. 모든 상황 속에는 위협과 기회가 같이 섞여 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다. 자신은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상처를 줄일 수 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시냇물이 골짜기에서 큰 바위를 만날 때, 바위를 뚫지 않고 돌아서 흘러간다. 시냇물은 주저앉지 않고 주변을 살피고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시냇물은 바위 주위의 낮은 곳을 찾을 때까지 기다린다. 마침내 길을 찾는다. 시냇물은 앞에 장애물을 만날 때 서투르지 않고 지긋이 지켜보는 힘을 가지고 있다. 통제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자신 안에 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쉽게 통제할 수 있는 일이다. 상황에 대한 통제권을 상대방이나 그 상황에 넘겨주지 않는다. 통제 불가능한 일을 가려내는 일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 통제 불가능한 일이라고 아예 자포자기 상태로 수동적으로 대하라는 게 아니다.
그 상황에 대해 어떤 반응 선택을 할 것인지는 자신의 권한이고 책임이다. 상대는 자신에게 못된 짓을 했지만,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자신의 완전한 통제권 안에 있다. 그 상황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다른 방향으로 풀어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상처를 덜 받을 수도 있다. 50이 되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더 자주 만난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통제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소중한 에너지를 쓸데없는 데 낭비하고는 탈진해서 정작 중요한 일을 망친다. 통제할 수 없음에 대해 자책하고, 자신의 무기력함을 한탄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면서 불안을 느낀다. 이런 괴로운 상황을 자신에게 넘겨준 사람을 찾는다. 그 사람 탓으로 돌려야 자신이 겪는 괴로움이 덜하게 느껴진다. 그 사람에 대한 분노를 퍼붓는다.
나이 50에는 어떤 파도가 밀려올까? 50 이전까지는 바람이 잔잔한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만 경험했다. 이제는 풍랑주의보가 발령된 바다의 파도가 몰려온다. 이 시기는 한꺼번에 많은 파도가 몰려온다. 마주할 파도는 자녀 진학과 취업, 가족 대소사, 부모님 부양, 건강, 경제, 관계, 상실 등이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파도가 있다. 이 시기에 갱년기, 호르몬의 변화가 일어난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교류가 일어난다. 지구로 치면 지각변동에 해당한다. 너무 큰 변화가 몸과 마음을 뒤흔든다. 어떤 사람은 갱년기 앓이를 심하게 한다. 어떤 사람은 생리적 현상의 변화만을 느낀다. 자신의 몸에 나타나는 생리적 변화, 피부, 뱃살, 혈압, 불면, 성 기능 변화에 당황하게 된다.
자신의 마음도 이전 같지 않다. 괜히 불안하다. 짜증도 많아진다. 하루에도 여러 번 몸이 달아오르기도 하고 땀도 나고 답답하기를 반복 경험한다. 미리 갱년기 증상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긴장을 하게 된다. 긴장은 스트레스 반응이다. 기존의 갱년기 증상에 스트레스 증상을 추가로 경험하게 된다. 다음으로는 자신의 몸에 나타나는 질병의 파도다. 암, 심장혈관, 뇌혈관, 고혈압, 당뇨병 진단 등으로 충격을 받기도 한다. 이런 파도를 만나면 지금까지 자신의 삶이 너무 허무하게 보인다. 그때서야 자신의 삶에 무엇이 중요한지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질병에서 회복하고 나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자기 자신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자신의 행동과 태도가 달라진다.
다음으로 마음에 나타나는 심리적 파도다. 자신이 왜 사는지 왜 이렇게 아등바등하며 살아야 하는지 모를 때도 있다. 모든 일에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지나간 실패에 대한 반복적 회상, 가까운 사람의 배신, 사기로 인한 화병이 생기기도 한다. 몸이 약해지고 질병이 생기면 마음도 같이 약해진다. 긍정적인 기억보다는 부정적인 기억이 더 많이 더 잘 올라온다. 그 기억에 묻어있는 원한, 원망, 시기, 질투, 증오, 혐오, 악의, 적개심 같은 부정적 감정이 따라 올라온다. 50 이후에는 겉으로는 너그러운 척하지만, 속으로는 까칠한 마음이 자리 잡는다. 가족들에게 괜히 서운함을 느끼고 버럭 화도 낸다.
50이 되면 사회적 관계의 파도가 몰려온다. 개인 사업을 하거나 전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동안 쌓은 경륜을 펼칠 나이다. 반면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눈칫밥을 먹는 시기다. 조기 퇴직, 명예퇴직, 구조조정, 권고사직, 임금피크제, 직위 상실, 실적 달성의 압박감의 파도가 몰려온다. 언제 그 당사자가 될지 몰라 불안하고 초조하다. 멀리서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면 당당하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깨가 처지고 움츠러든 모습이다. 직장 안에서 꼰대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후배들 눈치를 보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마음속에서 재잘거림이 올라온다. ‘그게 싫으면 회사를 나가면 되잖아!’ 또 다른 마음속의 재잘거림이 훈수를 둔다.
나이가 50이 되면, 자신과 관련된 가까운 가족과 친구와 관련된 파도가 몰려온다. 배우자의 건강이 나빠져 일상생활이 뒤엉켜버리기도 한다. 자신이 좋아하던 등산, 운동, 여행 등 취미생활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부모님의 죽음을 맞이하는 나이다. 옆에 계실 때는 몰랐는데,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된다. 부부간에도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 이혼, 졸혼, 별거의 홍역을 치르기도 한다. 이유는 수만 가지일 수 있다. 같은 집에 살아도 남남처럼 사는 ‘무늬만 부부’이다. 이런 생활에 익숙한 척한다. 어쩔 수 없어 체념하는 게 편해서 자기 최면을 건다. 또한 자식들 교육, 취업, 결혼의 파도를 타고 넘어야 한다. 가까운 사람의 질병, 죽음을 경험하기도 한다. 부모님 간병, 재산 분배, 제사 모시는 문제 등으로 형제간의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을 겪기도 한다.
이처럼 나이가 50쯤 될 때 파도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경험을 한다. 딱 그 나이쯤이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혼란을 겪는 시기다. 사회적 역할도 자신의 기대하고 달라진다. 부부, 자녀, 부모, 형제, 친구와의 관계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한다. 이럴 때 어떤 사람은 미련 없이 도시의 경쟁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자연인의 삶을 선택하기도 한다. 자신의 삶에 서서히 밀려드는 파도를 완전하게 통제할 수는 없다. 파도가 몰려오면 미리 겁을 먹기도 한다. 그러다가 파도에 휩쓸려 넘어지고 만다. 그러나 세상에는 파도를 타고 넘는 사람들이 있다. 서퍼(surfer), 즉 바다에서 파도를 타고 넘는 기술을 연마하는 사람들이다. 나도 내 삶의 파도를 타고 놀 수 있는 서퍼(sufer)가 되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온다!
심리학자들은 일상의 스트레스에 더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조절과 통제를 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적절한 조절과 통제는 무조건 스트레스 자극을 회피하거나 견뎌내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닥친 스트레스 자극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알아차리는 힘이다. 이런 조절과 통제력은 훈련으로 기를 수 있다. “주여,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이것은 미국의 신학자인 라인홀트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가 쓴 ‘평온을 비는 기도(Serenity Prayer) 문이다. 자신의 삶에서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파도가 있다. 파도와 싸우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피하지도 않으면서 넘어지지 않고 타고 넘는 지혜를 갖는다면, 좀 더 평온하고 넉넉한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Tip! 삶의 영역별 파도 점검하기)
○ 먼저 자신의 삶의 영역을 크게 나누어 본다. 예를 들어, 건강(신체, 정신), 부부 관계, 부모-자녀 관계, 부모 부양, 애정·우정(연인, 친구), 일(직업), 재정(돈 재산), 주거·환경·안전, 취미·지식(배움, 학업), 여가·소일거리, 공동체 영역(지역, 동호회), 영적(영성, 종교)의 영역으로 구분한다. 구분의 기준과 숫자는 개인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데 따라서 조정하면 된다.
○ 각각의 영역별로 현재 어떤 상태인지 0점(문제가 전혀 없음)에서 10점(심각한 문제가 있음)으로 점수를 매긴다. 각 영역의 현재 상태를 스트레스, 긴장, 갈등, 위험, 문제 발생, 상실, 부재(不在) 또는 결핍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각각의 영역에서 전혀 문제가 없는 영역이라도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 다른 영역에 사용할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한 경우에도 10점(심각한 문제가 있음)에 표시한다. 삶의 영역에 균형을 잃어 문제가 발생한 상태이거나 문제가 될 위험 요인이기 때문이다.
○ 각각 영역별 점수를 도표나 그래프로 그린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현재 상태를 확인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