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린 시절에 만난 타인과의 경험과 그들로 인해 구체적으로 겪은 일들을 의식하지 못한 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조지 베일런트(George Vaillant)-
나이 50쯤 되면 사람들은 마음에 주관적 상처의 흔적을 하나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내가 누구에게 피해를 봤다.’라는 피해의식이 같이 붙어 다닌다. 50 이후의 삶에서 피해의식의 무거운 짐은 자신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주범이다. 자신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참지 못한다. 불의와 부당함에 대한 분노는 일어날 수 있지만, 지나치게 민감하면 사회적 관계가 무너진다. 50의 나이는 자신의 마음속에 뿌리를 박고 있는 상처를 들여다봐야 하는 적절한 때다. 사람들은 50 이후에는 마음의 문을 열기보다는 점점 닫는 시기다. 고리타분해지고 자기 주장과 고집을 많이 내세우는 경향을 보이기 쉽다.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열려있을 때가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상처를 알아차리기 쉽다. 알아차리지 못하면 상처를 풀어내지 못한다.
왜 이러는지 모르게 어떤 주제에 집착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맨손으로 일군 사업이 성공해서 잘 유지되고 있는데도 마음은 허전하다.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라고 자기 자신을 더 몰아붙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넘어서는 일을 벌인다. 다행히 자신이 기대했던 성공이 코앞에 다가온다. 이제는 ‘좀 쉬었다 가야지’라는 속삭임이 올라 오지만 여전히 허전함도 같이 올라온다. 몸은 쓸 에너지가 떨어졌다는 경고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 가족도 이제 그만 하라고 말린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런 사전 경고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자신의 심장과 뇌혈관, 암 등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대가를 치르고서야 알아차린다. 자신을 그토록 채워도 허전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일이다.
승진한다는 것은 직장 내에서 통제 권한을 일정 부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실력과 운도 따라야 하지만, 사내 정치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직장인은 승진하면 직장에서 인정받았다는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승진을 위해 끝까지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은 물론 회사 전체적으로도 좋은 일이다.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승진에 목숨을 건다. 승진 시기가 되면 지나치게 긴장하고 초조해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승진을 위해서라면 경쟁자를 음해하고 제거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고속도로에서 다른 운전자들이 위험을 느끼는지 아랑곳하지도 않고 먼저 가겠다고 난폭 운전을 하는 사람과 닮았다. 이렇게 자리를 차지하려고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면 자신의 적을 많이 만들게 된다. 승진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 보면 자신의 몸과 마음도 온전치 못하게 된다. 소탐대실할 수도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고 비교하기 마련이다.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의 삶터에서 남들과 비교는 자기 자신을 더 분발하게 이끄는 동기를 일으킨다. 또한 비교의 심리는 자신을 무기력하게 하고 좌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자신이 가진 것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늘 불안하다. 자신이 살던 터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겨우 버텼는데, 자기만 점점 뒤떨어지는 느낌이다. 남이 자신보다 더 많이 가지는 것에 대해 부럽다는 생각이 올라온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축하의 말은 선뜻 나오지 않는다. 자신은 언제 저렇게 가질 수 있을까? 돈도, 지위도, 명예도, 자식도, 모든 조건이 자신보다 좋게 보인다. 옛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고 했다. 나이 50이 되면 자신의 마음속에 지나친 비교의 씨앗이 자라고 있는지 알아차려야 한다. 시기심과 질투심의 뿌리에 감겨 허우적대지 않기 위해서다.
나이가 들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역할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선택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져야 한다. 나이가 든다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저절로 풀리지 않는다. 특히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삐거덕거린다. 노부모 부양에 대해 배우자, 형제들 간에 생각이 같지 않다. 부모님 재산에 대한 분배로 형제간의 관계가 끊어지기도 한다. 자녀 교육에 대한 나와 배우자의 관점이 달라 머리를 싸매고 끙끙댄다. 사람의 마음은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게 느끼기 쉽다. 자신의 마음과 같을 거라고 기대했던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충격을 받는다. 나이 50쯤이면 이런 관계 갈등에 중심에 서게 된다. 혹시 자신의 마음속에 관계에 대한 상처는 없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50이 되면 자신의 마음속을 꼭 한번 돌아봐야 한다. 무언가에 매달려 시간과 에너지를 헛되이 소비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자신이 정한 목표를 향해 열정을 다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유익한 일이다. 자칫 그 열정이 지나쳐서 삶의 균형이 흐트러지는지 눈여겨봐야 한다는 의미다. 나이 50이 되면 열정만으로 달리기에는 벅차다. 예전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마음만 앞서 나가다가 오래 달리지도 못하고 주저앉을 수 있다. 이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시기다. 앞으로의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는 곳에 쓰이고 있는지, 쓸데없이 얽매인 곳에 소모되고 있는지 점검해보는 것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긍정적 조건이 줄어든다. 그만큼 변화를 위해 치를 대가가 크다는 의미다.
사람의 몸과 마음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젊을 때는 다양한 삶의 경험을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이곳저곳에 쓴다. 이 시기에는 몸과 마음에서 소모된 에너지는 마음만 먹으면 바로바로 충전된다. 나이가 들면 특히 50 이후에는 몸과 마음의 에너지 충전이 쉽게 되지 않는다. 실익도 없이 밖으로 새는 에너지가 더 많기 때문이다. 자신이 에너지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밖으로 새는 자신의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찾아내는 게 쉽지 않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잘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에 에너지를 지나치게 많이 쏟아붓거나, 자신의 삶에 도움이 안 되는 데에 쓰고 있을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람들은 두 부류로 갈라지는 경향이 있다. 좀 더 너그럽고 넉넉한 마음을 쓰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점점 더 고리타분하고 조급하고 예민하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사람도 있다. 50이 되면 10년 뒤 20년 뒤의 자신을 어디로 끌고 갈지 중요한 갈림길에 선다. 한 분야에 일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일터에서의 행동이나 말이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밴다. 일터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집에서도 친구 간 모임에서도 하고 있다. 회사에서 사장이면 집에서도 사장으로 대우받으려고 한다. 특히 외부에서 다른 사람들과 종속관계에서 대접받던 사람일수록 자신도 모르게 그런 습관이 생기기 쉽다.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조종할 때 만족감과 우월감이 올라온다. 그런 감정을 반복 경험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좀 더 철이 들겠지’라고 생각한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적절한 때에 맞게 드는 단풍이 생생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철이 든 사람은 때에 맞게 자신의 위치와 상태를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내면의 매듭을 알아차리고 하나씩 풀어가는 사람이다. 자신 안의 매듭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철이 든다고 할 수 있다. 무르익는다고 할 수 있다. 멋있는 말로 자기 자신의 내면 성숙이다. 50을 위한 조언에 귀 기울이는 것은 ‘그때 그랬더라면…’이라고 하는 후회를 덜 하기 위해서다. 자신보다 한 발자국 앞서가는 사람의 발뒤꿈치를 보면서 자신의 발걸음을 좀 더 가볍게 하기 위해서다.
심리학에서 심리적 성숙(psychological maturity)은 자신의 긍정적 기분, 공감, 경험에 대한 개방, 자율성, 삶의 만족, 웰빙, 자기 실현, 진정한 자기 되기(human beings) 등과 연계된다. 연구에서는 나이가 든 사람이 젊은 사람보다 더 큰 심리적 성숙을 보여준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다양한 삶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자신들의 욕구를 조절해서 만족하는 법을 안다고 가정을 하는 것이다. 심리적 성숙은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내 삶의 경험에 묶여 있는 두려움과 좌절감, 수치심과 열등감, 분노 등의 감정을 직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매 순간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경험(생각, 감정, 욕구, 심상)을 있는 그대로 완전히 열린 마음으로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힘을 길러야 한다. 자기 자신의 삶의 의미를 숙고하면서 삶의 방향을 잡고, 강점을 찾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행복은 그런 과정에 경험된다!
(Tip! 심리적 성숙을 위한 사회적 역할 가면을 알아차리기)
○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대상을 글로 적는다. 직장의 명함과 명패에 적혀 있는 지위, 역할, 사진, 이름을 글로 적는다. 선배, 후배, 상사, 부하, 간부 등 직장 내에서 불리는 호칭도 적는다. 가정에서 아내, 남편, 어머니, 아버지, 장모, 장인, 시어머니, 시아버지, 장남, 장녀, 막내, 오빠, 누나, 동생의 호칭을 적는다. 친구 관계, 연인 관계의 호칭을 적는다. 주민등록상의 주민번호, 공인인증번호, SNS의 아이디와 비밀번호 등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것도 적는다. 학생, 군인, 교수, 사업가, 직장인, 프리랜서, 예술가, 체육인 등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을 증명하는 호칭을 적는다.
○ 각각의 역할 호칭을 글로 적으면서 ‘이게 나인가?’, ‘영원히 변치 않는 나인가?’, 각각의 호칭에 집착하거나 부담을 느끼지 않는지 마음속을 살펴본다. 어떤 생각과 감정이 올라오는지? 어떤 욕구와 충동, 갈망이 마음속에 올라오는지 알아차린다. 이 호칭이 없어진다면 자기 자신은 어떻게 되는지 숙고(熟考)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