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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유 컴패니언 Dec 05. 2022

흔들리는 몸과 마음, 4~50년 살았다는 의미는?

      

우리가 피하고 싶은 일 목록의 제일 위에는 ‘앞을 예측할 수 없다 것’과 ‘자신이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적혀 있다.

                                      -로버트 새폴스키(Robert M. Sapolsky)-     


지금은 11월이다. 가로수길을 걷다 보면 길 위에 울긋불긋한 나뭇잎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나는 지나가면서 일부러 떨어진 나뭇잎들을 밟는다. 내 발밑에서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올라온다. ‘어디서 왔느냐? 왜 여기에 있느냐?’라고 나뭇잎과 속삭여 본다. 나뭇잎들은 바로 위에 있는 나무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올 때 불안하지 않았는지 물어본다. 나무와 나뭇잎은 때가 되면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라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다음 삶의 과정을 준비하기 위해 나무와 나뭇잎은 자신을 정리한다고 한다. 한겨울에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내년 봄에 새로운 성장을 위해서라고 한다. 나는 오늘도 나무와 나뭇잎으로부터 배운다. 바로 이것이 ‘적응(適應)이구나’라고. 다가오는 변화에 미리 대비하는 지혜라고.


나무는 자신이 처한 지금의 현실을 직시하고 차근차근 다음을 준비한다. 나이 50이 되면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점검해야 하는 시기다. 자신에게 어떤 손님들이 다가오고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바라봐야 하는 시기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달리는 데에 몸과 마음을 쏟았다. 몸에서 보내는 신호에 민감하지 않았다. 몸은 자신을 늘 힘 있게 끌고 다녔다. 이제 50을 지나면서 어느 순간 자신의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다. 머리카락에서부터 피부, 몸매도 중년티가 난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씹을 수 있었던 튼튼했던 치아도 흔들린다. 눈도 침침해진다. 어깨도 고장이 났나 보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허리와 목이 뻐근하고 통증이 느껴진다. 무릎도 예전 같지 않다. 전국 명산을 누비고 다녔는데 이제 조금 힘든 산을 갔다 오면 무릎이 시큰거린다. 심장도 예전 같지 않다. 부부 관계도 시들해진다. 뱃살이 통통해져 아랫배가 손에 잡힌다. 배우자의 코 고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보다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각방을 쓰는 게 서로가 편하다고 느낀다. 시간이 갈수록 서로 손을 잡고 쓰다듬고 접촉하는 게 어색해진다. 자신도 모르게 몸은 자기 갈 길을 가는 것 같다. 병원에 들락거리는 횟수가 점점 늘어간다. 침도 맞고 뜸도 뜬다. 술도 예전처럼 많이 먹지 못한다. 술 먹은 뒤 숙취가 점점 심해진다. 맵고 짜고 얼큰한 찌개를 좋아하고, 삼겹살을 입에 가득 넣고 씹어도 위장은 잘 견뎌주었는데, 이제는 더부룩하고 쓰릴 때도 있다.    

      

몸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데 아직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도 주기적으로 정비소에 가서 점검을 받고, 부품을 교환하고 엔진오일을 교체한다. 50년을 살면서 자신의 몸에 대해서 주기적으로 점검해왔는가? 50년 동안 사용해 오던 몸 곳곳의 부품들이 부서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관심을 가지기나 했을까? 몸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게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는 잘 버텼는데 이제 조금씩 한계를 벗어난다고 경고한다. 몸에 대한 정기적인 정비는 자신이 스스로 챙겨서 하는 자가 정비이다. 외부에서 누구도 강제적으로 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잘 움직였는데 괜찮겠지!’라고 하면서 그냥 넘어간다. 몸의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이 동시에 삐거덕거릴 때가 자가 정비할 적기(適期)다.  

   

이제 50이 되면 새로운 일을 맡을 때 좀 더 신중해진다. 자신이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위험부담은 없는지부터 이리저리 살피게 된다. 이전에 보였던 패기는 사라지고 직접 혼자서 해낼 자신감도 줄어든다. 누가 자신의 지시를 받아서 알아서 잘 처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올라온다. 50을 맞으면 눈물샘도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강철 같았던 마음도 여려진다. 일터에서 인사하지 않고 지나간 후배의 행동을 보고 마음이 흔들린다. ‘나를 무시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올라온다. 자신은 회사에서 상사로부터 지적을 받으면 이제는 이골이 나서 이러쿵저러쿵 변명도 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인다. 부딪히는 게 더 힘들어 피해 버린다.           

자신은 50년을 한눈도 팔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친구들은 자신보다 더 잘 사는 것 같다. 사업도 잘되고 재테크도 잘해서 돈 걱정이 없이 보인다. 공직에서 권한 있는 자리에 올라서 명예와 권위를 마음껏 누리는 친구도 있다. 친구들은 자식들도 잘 키운 것 같다. 부러운 마음이 올라온다. 친구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진다. 터벅터벅 걸어본다. ‘나는 그동안 뭘 했지?’ ‘나는 잘 살아 온 건가?’라는 생각이 재잘거리며 올라온다. 가슴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사는 게 자신의 삶일까? 허탈한 느낌도 올라온다. 지금까지 누구를 만나도 마음이 꿀리지 않았는데, 어느새 주변이 큰 벽처럼 느껴진다. 스스로 초라하다는 느낌이 올라온다. 자신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50쯤 되면 대화라는 과제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자녀들과도 필요한 것을 같은 언어로 주고받기가 힘들다. 같은 집에 살지만, 달나라만큼 먼 행성에 사는 외계인과 주고받는 신호로 느껴진다. 대화하자면서 자신의 입에서는 잔소리가 먼저 나온다. 대화의 내용이 산으로 달아나고 길어진다. 꼰대라는 핀잔을 듣기 시작한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고 싶은데 그럴수록 멀어지는 느낌이다. 자신은 배우자와 지금까지 서로 대화를 잘해왔다고 생각한다. 배우자는 아니라고 한다.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해서 건강이 어떠신지 여쭈면 여기저기 아프시다고 하신다. 자식이 걱정할까 봐서 괜찮다고도 하신다. 자신의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부모님의 ‘아프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사람들은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직장에서 높은 위치에 오를수록 자신의 책임감도 늘어난다. 지금 아무 하는 일이 없어도 자신의 어깨에 무거운 과제가 하나씩 올라가는 느낌이다.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자신이 맡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는 것을 안다.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분명해진다. 역할을 포기하든지 받아들이든지 선택을 해야 한다. 그래서 50의 나이는 자신에게 많은 선택을 하도록 요구하는 시기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입고 다녔던 마음의 옷에 묻은 얼룩과 먼지를 훌훌 털어낼 시기다. 자신의 마음을 재정비해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자신은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삶’을 바라지만 삶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50의 나이는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친절하게 안아주면서 중심을 잃지 않는 편안함을 찾아보는 시기다.   

        

50대의 몸과 마음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는 과정에 몸과 마음은 심하게 흔들리기도 했다. 멀미가 날 때도 있었다. 사람들의 몸에는 태어날 때부터 넘어지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복원력(resilience)’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내외부 자극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스트레스 학자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 몸이 초정밀 네트워크 장치와 같이 각 부분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또한 몸과 마음이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뇌에서부터 새끼손가락의 손톱에 있는 세포에 이르기까지 서로 소통한다고 한다. 우리 몸은 바다를 다니는 배와 같다. 배는 파도에 흔들리지만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고 간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몸은 비상 상태에 들어간다. 뇌의 진두지휘로 심장의 박동을 조절하고, 혈액 속의 산소와 당의 농도를 조절한다. 자신이 생존을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몸에서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조절 반응(항상성, homeostasis)이다. 위협이 사라졌다고 느끼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일시적으로 일어난 파도에 배가 한번 출렁거린 다음 잠잠해지는 것과 같다. 이런 위협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있다고 느끼면 몸은 장기적인 방어전략을 사용한다. 몸 안의 모든 세포에서부터 장기, 근육, 뼈, 혈관, 심장, 뇌, 생식기 등이 서로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면서 견뎌내기 위한 대응(신항상성, allostasis)을 한다. 바다에서 풍랑주의보를 만난 배가 항구에 도착하기 위해 파도를 헤쳐나가면서 균형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배가 항구에 안전하게 도착한 다음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파도를 헤치고 오는 과정에서 부서진 데가 있는지 찾아 수리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바다로 나갈 수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50이 된 우리는 온갖 종류의 거센 파도를 만난 경험이 많다. 거센 파도를 견뎌내기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은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했다. 이 과정에 몸과 마음에는 흠집이 난다. 흠집이 났다는 것은 흔들림을 견디지 못해 살짝 넘어졌다는 의미다. 넘어질 때마다 바로 흠집을 수리해야 한다. 권투경기에서 작은 주먹을 자주 맞다 보면 어느새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상처가 난다.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다. 나이 50이 되면 자신이 흔들리는 몸과 마음을 바로 찾아내어 수리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50 이후의 자신의 삶에서 만나는 어떤 파도도 헤쳐나갈 수 있다!    

  

(Tip!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

○ 몸과 마음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움직인다. 자신의 몸과 마음과 친해져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고 싶다면 자신의 몸, 마음과 긴밀한 소통을 해야 한다. 50 이후의 삶은 자신이 어떤 태도로 삶에 참여하는가에 따라 호기심과 불만의 길로 갈린다. 

○ 정기 건강검진을 통해 몸의 상태를 확인한다. 몸에 이상 증상이 있으면 적극적 치료(수술, 약물 복용)와 동시에 자신의 일상생활 양식을 점검하고 바꾸어 나간다.

○ 일 년 중 취미생활과 운동, 사회적 관계 활동 외에 자신과의 만남의 시간을 확보한다. 순례길 걷기, 산사 체험, 명상 등 자기 탐구 프로그램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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